“치치는 이제 집에 안 오려나 봐.”
내가 걱정스레 아내에게 물었다.
“모르지, 뭐.”
아내가 덤덤하게 답했다.
아내는 태연한 반응이었지만, 나는 마음이 쓰였다. 마당 고양이가 집에서 안 보이는 건 흔한 일이지만, 왠지 이번엔 달랐다.
치치는 우리 집 마당에서 지내는 다섯 남매 고양이 중 하나다. 이 다섯 남매가 마당에서 주로 지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자기들 마음대로다.
언제든 집 울타리를 넘어 동네 주변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하지만 잘 때는 별채로 들어온다. 밥 먹고, 물 마시고, 화장실 가기 위해 집에 머문다. 기존에 우리와 살았던 다른 고양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대한다. 그러니 우리가 돌보는 가족인 셈이다.
치치는 다른 남매보다 바깥을 좋아했다. 하루 이틀 외박도 잦았지만, 언제나 돌아왔다. 그런데 치치가 사흘째 보이지 않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사고라도 난 거 아닐까, 걱정이 됐다. 그리고 걱정은 기다림으로 바뀌었다. 집 마당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치치가 돌아오지 않았는지 습관적으로 거실 창을 내다봤다.
길고양이 같기도 하고, 집고양이 같기도 한 꼬맹이 남매들에게 나는 어느 선까지 방임하고 간섭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마음을 주는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에 대한 애착이 애정인지 소유 의식인지 헷갈렸다.
치치를 기다리며, 나는 어떤 관계들을 떠올렸다. 졸업 후 소식이 끊긴 친구나, 직장을 떠나면서 자연스레 멀어진 동료처럼, 한때 서로 인연을 지속했으나, 이제는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만날 일이 없는 관계들을 생각했다. 치치를 기다리는 마음이, 마치 중단된 인연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유사한 게 아닐까 자문해 봤다.
치치가 집에서 사라진 지 나흘째 되던 날, 치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해맑게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제야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반가우면서도 야속한 마음이 한쪽에 돋았다. 치치가 치켜든 엉덩이를 손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걱정했던 마음을 대신했다.
이제 다섯 남매가 집 안팎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에 익숙해졌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인연은 내가 어쩌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 흐르는 대로 둘뿐이다. 다만, 이 순간 함께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