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순희

고양이의 사랑

by 김주영


순희를 낳은 어미는 아직 그 동네에서 잘 살고 있을까?

우리 집 고양이 순희를 보며, 도시에서 살던 때, 우리 집에 자주 오던 길고양이 묭묭이를 떠올린다.


시골에 오기 전 도시의 오래된 단독주택에 살았었다. 10미터 남짓 길이의 진입로와 족구장은 거뜬히 넘는 크기의 마당이 딸린 주택이어서, 매일 집 진입로와 마당에 길고양이를 위해 사료 그릇을 채워줬다. 순희 어미는 우리 집에 밥을 먹으러 오는 서넛 고양이 중 하나였다. 우리 부부는 그 고양이를 ‘묭묭’이라 불렀다. 묭묭이는 주로 옆집 담을 타고 장독대로 와 사료를 먹곤 했다. 볼 때마다 피곤한 모습이 역력했다. 모험심이 많은 아이 같았다.


여느 날처럼 묭묭이가 밥을 먹으러 왔는데, 배가 불러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임신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날이 갈수록 배가 점점 불러왔다. 묭묭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평소 우리와 눈도 잘 안 마주치던 아이가 자꾸 눈을 맞췄다. 우리 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았다. 보다 못한 아내가 두 팔을 걷고 나섰다.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게 한두 평 남짓한 창고에 울타리를 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묭묭이는 군말 없이 그곳에 자리를 잡았고 며칠 뒤, 두 아이를 낳았다.


묭묭이가 출산할 때 아내가 직접 아이들을 받고 탯줄을 잘라 줬다. (아내는 동물병원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하나는 고등어 무늬였고, 하나는 하양 바탕에 검은 얼룩무늬였다. 묭묭이와 아이들 모두 건강했다. 출산 후 묭묭이는 창고에서 지내며 두 아이에게 젖을 먹였다. 그렇게 어미와 아이 둘의 온기가 매일매일 집 마당에 번져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미가 창고를 지킨 지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창고에 묭묭이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을 두고 떠난 것일까? 묭묭이가 돌아오길 기다렸지만, 3일이 가고 4일이 가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어미로서 자기 할 바는 다 끝났다는 것일까? 그렇게 묭묭이는 우리 부부에게 아이 둘을 맡겼다.


우리는 아이 둘을 집 안으로 들여 임시 보호를 했다. 우리 집에 이미 다섯 마리의 고양이가 살고 있었으므로 여기서 더 고양이를 늘리는 건 무리였다. 두 아이를 입양 보내기 위해 고양이 커뮤니티에 공고를 냈다. 그즈음 어미가 우리 집에 나타났으나, 자기 아이들을 봐도 그냥 남 보듯이 했다. 이제 아이들에게 더 이상 관심이 없는 듯했다.


아이 하나는 며칠 뒤 입양을 갔다. 반면 순희는 입양을 가지 못했다. 그렇게 순희는 우리의 품에 남게 되었다. 5년 전 일이었다. 이제 우리 집 고양이는 여섯으로 늘었다. 우리 집 고양이들 이름에 ‘희’ 자 돌림을 쓰던 우리는, 새 식구가 된 아이가 여자인 점을 감안해 이름을 ‘순희’라고 지었다.


순희는 하얀 털에 검은 무늬가 등을 덮고 있다. 마치 깻잎 머리처럼 팔자 모양의 검은 무늬가 눈 위부터 얼굴을 감싸고 있다. 순희 얼굴에 인장과 같은 검은 점이 하나 있다. 애교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코와 입 사이에 마치 붓으로 찍어놓은 것처럼 생겼다.


순희의 성격은 까칠하다.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 홀로 시간을 즐기는 편이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아침, 저녁으로 나를 귀찮게 한다. 한때는 나를 외면하던 순희가, 이제는 아침마다 내 알람이 되고 밤마다 내 팔베개가 된다. 그전까지 볼 수 없었던 행동이다. 내가 노트북 앞에 앉아 있으면 놀아달라며 살갑게 치댄다. 내 몸 하나를 두고 다른 고양이 옥희와 경쟁이 붙었다. 참고로 옥희도 암컷이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 순희가 내 품 안으로 냉큼 들어온다. 내 팔뚝에 자기 얼굴을 묻고 잠든다. 나는 아내에게도 해 주지 않는 팔베개를 순희에게 한다.


사람을 향한 반려동물의 애정은 사람 사이의 애정과 무엇이 다를까? 근원적으로는 같은 것이겠지? 어차피 인간도 동물이므로. 동물도 사람에게 사랑이라는 걸 느끼겠지? 내 품에 안겨 잠든 순희를 바라보며 궁금해지는 밤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사랑을 느끼는 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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