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르듯, 고양이마다 소리도 다르다는 걸 고양이와 함께 살며 알게 됐다. 고양이와 살기 전에는 고양이 소리는 모두 엇비슷하게 들렸다. 그러나 고양이와 관계를 맺으니, 소리도 저마다 달리 들렸다. 마치 내가 아는 누군가를 떠올리면 그 사람의 목소리가 같이 떠오르듯, 내가 아는 고양이를 떠올리면 그 고양이의 소리도 같이 떠오르게 됐다.
우리가 관계를 맺는 순간, 고양이는 추상에서 실재(實在)로, 그리고 나만의 고유한 존재로 바뀐다. 아이들의 소리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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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속에서 미적대고 있던 나에게 고양이 순희가 다가와 아침부터 야옹야옹한다. 내가 순희의 성화에 못 이겨 이불에서 나오면, 순희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계속 야옹댄다. ‘놀아달라는 건가’,라고 생각하며 앉아서 순희의 뺨을 여기저기 쓰다듬는다. 그제야 순희는 기분이 좋은지 가볍게 점프하여 자기 이마로 내 턱을 비빈다. 순희의 보드라운 털과 피부, 그 아래 딱딱한 머리뼈가 내 얼굴에 느껴진다.
고양이가 집사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 주로 소리를 이용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고양이가 내는 소리에 신경을 집중한다.
물론 고양이들 사이에서도 소리를 사용한다. 아기 고양이가 엄마를 찾을 때 내는 소리, 상대를 경계하거나 위협할 때 내는 소리, 발정기 때 내는 소리 등. 하지만 평소 자기들끼리는 잘 쓰지 않는다. 고양이의 야옹은 대체로 집사를 향한 말이다. 밥 달라, 문 열어라, 기대자, 쓰다듬어라, 건드리지 말라…. 그때그때 다르지만, 그 해석은 언제나 집사의 몫이다.
말을 배우기 전 아이의 옹알이를 해석하는 부모의 궁금증 같다고 할까? 말이 생기기 이전의 세계로 잠시 빠져든다.
내가 자기 이름을 부르면 고양이가 응답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뭉클해진다. 비록 고양이가 나에게 야옹야옹하는 의도를 정확히 간파는 못하더라도, 서로 소통하려는 감각이 나에겐 좋다. 해석 이전에 만들어지는 그 세계가 좋아진다.
언어를 넘어서 관계가 연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