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령묘
이제 우리 집 고양이들도 하나둘 나이를 먹어간다. 고양이 룩희가 15살, 옥희는 14살, 사람 나이로 치면 70대다. 그 아래 믹희가 11살, 60대다. 그 밑으로도 10살에서 5살까지 다들 차차 늙어갈 것이다.
제일 나이가 많은 룩희는 이제 활동량이 현저히 줄었다. 털에 윤기가 사라지고 듬성듬성 빈 곳이 많아졌다. 바람에 민들레 홀씨 날리듯 털이 빠질 때가 있다. 근육도 더 이상 붙지 않아, 예전과 다르게 몸이 작아졌다. 룩희의 얇아진 살이 손끝에 닿을 때마다 마음이 아릿하다.
반려동물과 함께 산 지 15년, 나는 여러 고양이의 죽음을 지켜봤다.
내가 처음 만난 고양이 ‘아카’와 ‘시아’는 범백에 걸려 네 살을 넘기지 못했다. 시아가 먼저 떠나고 2주 뒤, 아카가 그 뒤를 따랐다. 처음 마주한 반려동물의 연이은 죽음에 가슴이 미어졌다. 아내와 나는 굳어버린 아이들의 몸뚱이 앞에서 솟아나는 슬픔을 가눌 길이 없었다.
둘의 유골은 거실 장식장에 오랫동안 보관되어 있다가 시골에 와서야, 가까운 산에 뿌려줬다.
어린 고양이 ‘배트맨’은 6년 전 혈액암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건강하게 잘 지내던 아이였는데, 구운 소고기를 콩알만 하게 잘라서 주면, 노래를 부르며 먹던 아이였는데. 떠나던 날, 따스한 햇볕 아래서 마지막으로 넘기던 숨을 기억한다. 세상에 마지막으로 내뿜던 한숨과 같았던 소리.
그렇게 우리와 함께 살던 아이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지금 살고 있는 아이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아이들의 죽음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에 일손이 멈춰지곤 한다.
아이들이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 또한 나이를 먹었다.
고양이와 함께 살며 나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나도 자연의 일부인 동물임을 알았다. TV를 없애고 그 자리에 캣타워를 놓았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왔다. 집 앞마당에 뛰노는 고양이들을 매일 영화 보듯이 본다. 고양이와 함께 늙고 변화하는 삶. 한 존재가 다른 존재로 인해 변하는 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반려동물과 이별을 미리 앞당겨 걱정하기보다 지금에 더 충실해지려고 한다. 아이들과 기쁨만 쌓고 싶다. 그래야 앞으로 다가올 이별의 슬픔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양이와 잘 산다는 것, 그것은 삶을 잘 사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아직 두 살밖에 안 된 어린 고양이 남매들과 노년의 고양이들이 한 마당에서 어울리는 모습이 더욱 눈부시게 다가온다. 노년과 청춘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은, 생명의 춤을 보는 듯하다.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