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아내가 별채 거실에서 고양이와 춤을 췄습니다. 고양이 삐삐가 아내를 향해 뛰어오르기도 하고, 돌기도 하고, 깡충깡충 뛰기도 했습니다. 삐삐가 아내의 몸짓을 따라 우아한 곡선을 만들었는데,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듯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 만드는 율동은 아름다웠습니다. 그 순간, 다른 세상에 있는 듯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아내에게 살짝 샘이 났습니다. 나로선 흉내 낼 수 없는 어울림이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산 지 15년이 지났지만, 고양이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시골에 와서입니다. 4년이 채 안 됐죠. 그래서 그럴까요? 아내와 달리 저는 여전히 고양이와 지내며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고양이들이 이불에 쉬를 하거나, 내 일을 방해하면 아이들에게 차갑게 대합니다. 서로 해코지라도 할까, 아이들의 기색을 살피며 괜히 마음을 졸입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노는 모습을 보거나, 내 품에 들어와 잠을 청하면 마음이 그렇게 따뜻해질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해도 즐거워하는 아내와 비교하면 나는 아직도 초보 집사인 모양입니다. 아이들의 발톱을 깎고, 아이들에게 수액주사를 놓고, 털을 다듬는 일은 여전히 아내의 몫입니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아내만큼 고양이를 사랑하진 못할 겁니다. 고양이를 좋아한 세월의 길이뿐만 아니라, 타고난 성정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고양이와 살아갈수록, 아내와 고양이는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낍니다. 낙천성과 자유로움, 내가 고양이에게 닮고 싶은 태도이자 아내가 가진 모습이기도 합니다. 아내와 더불어 고양이와 살게 된 이유일 겁니다.
동물과 살아본 적 없는 초보 집사가 고양이와 살며 경험하고 느낀 이야기를 그동안 썼습니다. 아이들이 우리와 함께한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도 싶었습니다. 돌아보니 고양이를 돌보는 일처럼, 글도 미숙했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고양이와 살면서,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주변의 길고양이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삶이 내면에 채색되어 갔습니다. 앙상한 몸으로 길거리를 배회하는 고양이를 보면 가슴이 아팠습니다. 형편이 닿는 대로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챙겼습니다.
우리 고양이들을 처음엔 그저 귀엽게만 바라봤지만, 이제는 그 눈빛 안에서 생명을 봅니다. 생명에 대한 근원적인 연민을 알게 됐습니다. 아마 고양이와 살지 않았다면 몰랐을 진실입니다.
연재는 여기서 마치지만, 고양이들은 여전히 나에게 영감을 줍니다.
다른 종(種)과 살면서 나는 더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