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이었다. 곧 새해도 되고, 마음도 새로이 할 겸, 방 배치를 바꾸기로 한 날이었다. 그래봐야 침구와 서랍장, 나무로 된 좌식 책상을 옮기는 정도였다. 왠지 평소보다 마음이 들떠있었다. 동작도 급했다. 방 배치를 바꾸는 일이 나의 새로운 결심을 보여주는 결기 같았다고 할까? 책상에 묵은 먼지를 닦아내려고, 물티슈로 책상 이곳저곳을 닦았다. 나뭇결을 따라 물티슈를 문질러 댔다. 몇 번 문질렀을 때 갑자기 손가락이 따끔했다. 손바닥을 펴 통증이 있는 곳을 살폈다. 왼쪽 검지 둘째 마디 안쪽에 나무 가시가 박혀있었다. 1센티미터 남짓 길이의 실 같은 가시가 손가락 피부를 뚫고 손금처럼 가로질러 있었다.
손가락에 가시가 박히는 일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가시가 박히면 으레 그랬듯, 족집게로 집어 가시를 빼내려 했다. 생각보다 가시가 깊게 박혔는지 족집게로 가시가 집히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했으나 헛수고였다. 방법을 바꿔 손톱 손질 가위로 가시가 박힌 피부 부위를 살짝 째 가시를 빼내려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피부를 살짝 째는 정도로는 가시를 빼내기가 힘들어 보였다. 족집게와 가위를 번갈아 가며 10분 넘게 셀프 집도를 시도했으나 소용없었다. 포기하고 의료 기술의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시 하나 빼려고 병원을 가야 하나? 가더라도 어디로 가야 할까?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그냥 가시가 박힌 상태로 두기로 했다.
그다음 날, 가시가 박힌 부위가 콩알만큼 부풀어 올랐다. 그 부위에 무언가 닿을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다. 통증이 그리 심하진 않았으나, 이대로 뒀다가 상처가 더 커지는 게 아닐지 걱정이 됐다.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검지를 쓰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쓸데없는 염려를 물리치고, 더 두고 보기로 했다.
며칠이 더 지나고 나니 부풀어 오른 부위에 물집이 잡혔고, 시간이 흐를수록 물집은 점점 굳어갔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지났을까. 아침에 샤워를 마치고, 가시가 박힌 손가락을 봤는데 피부 바깥으로 가시 끝부분이 슬쩍 삐져나와 있었다.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가시를 집어 빼냈다. 가시가 부드럽게 빠졌다.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후련했다. 한 손에 가시를 집은 채 가시가 박혀있던 손가락을 멍하니 바라봤다.
가시를 휴지로 감싸 테이블 위에 고이 뉘었다. 한 달 가까이 내 몸에 함께 있었던 녀석이라 바로 버리기가 망설여졌다. 하얀 휴지 위에 놓인 갈색의 나무 가시를 오래된 마음의 상처인 양 바라봤다.
손가락에 박힌 가시가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피부 밖으로 밀려 나오는 것을 보며 몸의 치유력에 대해 생각했다. 병원에 갔으면 바로 해결되었을 사소한 일이었으나, 병원에 가지 않음으로 몸의 치유력을 믿는 계기가 되었다.
마음의 상처도 이와 같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치유될까?
몸이 스스로 박힌 가시를 밀어내듯, 마음도 스스로 상처를 밀어낼 힘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이미지는 AI로 구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