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떨이가 된 양은 냄비

by 김주영

동네 편의점 앞에 놓인 재떨이가 눈에 들어왔다.

양은 냄비를 재떨이로 사용하고 있었다.

재떨이의 쓰임에 나름 공을 들였는지,

냄비 안에 흙이 평평히 깔렸다.

군데군데 흙에 박혀있는 꽁초가 화분에서 자라는 모종처럼 가지런하다.

구태여 흙까지 깔아 평평히 다져놓은 걸 보니, 그는 아마 담배를 피우는 순간에도 어딘가 단정함을 놓지 않는 사람일 것 같다.

편의점에 손님이 없을 시간에 잠깐 나와 담배를 피워 무는 시간.

그렇게 하나둘 재떨이에 꽂힌 꽁초가 작은 풍경을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물건의 쓰임이라는 게 생각보다 유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모는 꼭 한 가지로 규정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참신하게 쓰일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다 쓴 종이컵이나 빈 깡통, 깨진 사기그릇처럼

다 쓰인 뒤에도 새로운 쓸모를 찾는다.

연필꽂이가 되기도 하고, 작은 화병이 되기도 하고.


한때 라면을 끓여 누군가의 허기를 채웠을 양은 냄비가

이제 재떨이로 다시 쓰이고 있다.


물건이라는 게 본디 정해진 쓸모만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러므로 쓸모의 유통기한은 없다. (*)


/이미지는 AI를 사용해 재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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