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한 걸음, 한 걸음

by 김주영

요즘 나는 걷는 걸 즐긴다. 가까운 거리는 가급적 걸어서 다니려고 하며, 여행할 때는 걷기에 편한 여정을 선택한다. 일부러 시간을 내 정처 없이 걷기도 한다.


걷기를 좋아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전까지 나는 걷는 행위 자체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걷는 건 이동 외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내 나이가 오십이 되자, 몸 여기저기에서 이상 신호가 왔다. 걷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주변의 말에, 일부러라도 걷기 시작했다.


자주 걷게 되자, 걷는 거 자체를 의식하며 걷게 됐다. 감각에 집중하게 됐다.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땅의 촉감을 느낀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의 기운을 반긴다. 어디선가 맑고 청아한 새소리가 들린다. 몸의 감각이 열린다. 걸을 때, 도착할 목적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가는 과정이 중요해졌다.


리베카 솔닛은 <걷기의 인문학>이라는 책에서, 인류가 걷기를 통해 이룩한 위대한 성취를 파노라마처럼 펼친다. 사유를 동반한 ‘산책’, 영성을 찾아가는 ‘순례’, 끝없는 도전인 ‘등반’, 사회의 변화를 도모하는 ‘행진’ 등. 인간의 걷기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나의 걷기도 그 어딘가에 발자취로 남겠지.


무엇보다 나는 걸을 때,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좋아한다. 마치 한 권의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과정과 유사하다고 할까.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어느새 종착지에 다다라 있다. 걷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나 자신을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걸을 때는 땅과 하늘을 온전히 마주한다. 눈앞에 넓게 트인 하늘, 끝없이 펼쳐진 땅. 태양과 산이 나와 동반한다. 사람은 하늘과 땅 사이의 존재라는 걸 실감한다.

잊지 말라는 듯이.


혼자가 아니라 둘이 걸을 때, 나란히 걷는 광경은 언제나 아름답다. 걷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는 사람조차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아내와 손잡고 걸을 때, 행복이 밀려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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