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양양이와 평소처럼 산책하던 어느 날이었다. 마을 논길을 따라 걷는데 어디선가 다급한 강아지 소리가 났다. 주위를 둘러봤으나 소리의 정체는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두리번거리다 콘크리트로 된 수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바로 그곳에 흰색 강아지 한 마리가 허공을 향해 짖어대고 있었다. 수로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수로의 높이는 어른 키를 훌쩍 넘었고, 폭은 2미터에 가까웠다. 수로 바닥은 물이 발목 높이로 차 있었다. 수로에 빠진 강아지는 물 위를 첨벙 대며 이리저리 분주히 오갔다. 갈 곳을 잃은 발놀림과 눈동자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강아지가 낯이 익었다. 양양이와 산책할 때 몇 번 마주친 기억이 있다. 한 주택가 앞 도로를 지날 때, 어디선가 흰색, 갈색, 검은색 강아지 셋이 한꺼번에 뛰쳐나와 짖어대곤 했었다. 그중 흰색 강아지가 바로 지금 수로에 빠져있는 강아지였다.
서둘러 집으로 와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아내와 나는 장화로 갈아 신고, 강아지가 빠진 수로로 다시 갔다. 우리는 조심히 수로 벽을 딛고 강아지가 있는 쪽으로 내려갔다. 강아지를 잡으려 했으나, 녀석은 우리를 피했다. 다가갈수록 멀찍이 달아났다. 그렇게 십여 분이 넘게 수로 안에서 강아지와 술래잡기하듯 서로 거리를 좁혔다가 다시 벌리기를 반복했다. 도저히 이래서는 강아지를 수로에서 구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점점 지쳐갔고 초조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을 궁리하다가, 강아지의 보호자 집을 찾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 강아지의 집이 어딘지는 알지 못했으나, 무작정 그 강아지와 마주쳤었던 주택가로 향했다. 수로에서 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 대여섯 채의 집이 모여 있었다. 그중 한 집의 문을 무작정 두들겼다. 중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빼꼼히 현관문을 열었다. 혹시 강아지를 잃어버리지 않았냐고 묻자, 여자는 놀란 표정으로 강아지를 찾았냐며 현관문 밖으로 성큼 나왔다.
여자와 함께 강아지가 있는 수로로 향했다. 가는 길에 여자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강아지를 찾았다고 알렸다. 여자가 전화를 끊고 나서, 어젯밤부터 그 강아지가 보이지 않았다고, 날이 밝자마자 동네방네 강아지를 찾아다녔다고, 울먹일 것처럼 이야기했다. 입에서 나오는 불규칙한 말로 보아 아직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수로에 도착했을 때, 한 자동차가 도착했다. 그 차에서 한 남자가 내렸고, 그와 동시에 갈색 강아지와 검은색 강아지도 함께 뛰어나왔다. 산책할 때 마주쳤던 바로 그 강아지들이었다. 차에서 내린 남자가 서둘러 수로로 내려갔다. 그러자 십여 미터 떨어져 있던 흰색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남자에게 달려와 안겼다. 그 모습을 수로 위에서 지켜보던 갈색과 검은색 강아지들도 꼬리를 연신 흔들어댔다. 나는 극적인 상봉의 장면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여자는 조금 전까지 초조했던 얼굴을 활짝 펴며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우리는 다행이라며 함께 얼굴을 활짝 폈다.
그 뒤로 그 세 강아지와 산책하는 여자를 만나면 서로 인사한다. 그런데 그 흰 강아지는 여전히 나를 향해 짖어댄다. 하지만 그 강아지를 보면 괜히 뿌듯해진다. 수로에 빠진 강아지의 안위를 걱정하던 그날을 떠올리며.
그 세 강아지 이름은 각각 쌀, 보리, 콩이다. 강아지 털색에 따라 대표적인 곡식의 이름을 지어준 것이라 한다.
이날 나는 생명을 구하는 기쁨을 만끽했다. 더불어 우연과 우연이 쌓여 생명이 이어지는 인연의 끈을 느낀 하루이기도 했다. 앞으로 내 앞에 또 어떤 인연들이 펼쳐질까? 이런 일의 경험을 떠올리고 나면, 세상이 유난히 신비롭게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