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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 Oct 05. 2021

003. 고요한 마음이 있다



매일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일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선입니다. 너무 바쁘거나 흥분되어 있으면 마음이 소란스럽고 지칩니다. 이런 것은 좋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면 고요하고 즐거운 마음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자극이나 흥분에서 여러분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 선은 흥분의 대상이 아닙니다. 단지 호기심에서 선 수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이전보다 더 바빠지기만 합니다. 만약 수행이 여러분을 더 바빠지게 만든다면 그것은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일주일에 한 번 좌선을 하려고 한다면, 아마 제 생각에는 여러분은 훨씬 더 바빠질 것입니다. 선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지 마십시오.

- 스즈키 순류 <선심초심>




수행은 지금 이 곳, 나를 둘러싼 물리적 공간과 시간 그리고 관계된 모든 인연실 타래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선심초심의 2장 바른 태도에 들어 스즈키 순류 선사도 이를 강조한다. 수행의 무대는 일상이며 일상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 진정한 선이라는 말씀을 들은 나는 낙담과 동시에 단단한 결의의 매듭을 한 번 더 동여맨다. 


어떻게 살 것인가. 철학의 주제이자 모든 인간의 사유가 향하는 이 거대한 담론은 실제 개인의 삶에서는 잘게 나눠진 하나의 질문으로 존재한다. 나에게 그 질문은 "어떻게 일상을 잘 보낼 것인가"이다. 일상을 보내는 것은 나에게 늘 힘든 일이었다. 무의미와 공허의 망망대해를 표류한지 몇 해 '삶의 의미'라는 부표를 간신히 쥐고 연명한 나날들이 있었다. 그렇게 평생 살 수는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외부의 것에 내 무게를 의탁하는 행위는 늘 긴장을 낳는다. 그것이 결국에 자신이 안정에 목이 말라 자신의 것도 아닌 다른 사람이 만들어낸 생각과 가치를 '억지로' 붙잡고 위안을 하는 것임을 알게된다. 그러고는 결국 누구나 이 바다를 자연스럽게 헤엄칠 수 있는 용기와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일상을 열심히 보내기 위해 많은 책과 말씀들을 들었다. 그렇게 그것들을 원했던 이유는 나에게 일상이 무의미하고 공허했다는 것의 반증이다. 이제 그 지식들을 발판삼아 올라간 곳에서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세계라는 바다 한 중간에 자신의 상반신만 간신히 기댈 수 있는 부표를 낑낑거리며 안고있는 내 모습이었다. 


일상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 중 하나는 불안함이다. 오늘 내가 온전히 이 일에 전심을 다하기에는 일의 가치를 신뢰할 수 없고 이로 비롯된 불안으로 미래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못한다. 불안함 외에도 우리가 '괴롭다'고 묘사하는 대부분의 일은 현실 그 자체인 일상에서 자기자신을 분리한다. 


일상에서 온전함을 느끼기 위해서 해야할 첫 번째 일은 우리가 일상에 온전히 집중하고 행동해도 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저 고요하고 일상적인 수행을 계속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품성이 닦여 나갈 것입니다. 마음이 항상 분주하면 품성이 닦일 틈이 없습니다. 특히 수행을 통해서 품성이 닦인다고 거기에 지나치게 매달리면 성공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 여러분의 수행이 고요하고 일상적인 것일 때, 일상적인 삶 그 자체가 깨달음이기 때문입니다. 

- 스즈키 순류 <선심초심>


나의 경우, 그동안 삶의 의미를 창조해내는 대열에 함께하는 대신 그저 인연의 고리들이 움직이는 모습들을 두려움에 떨며 관찰하고 소극적으로 행동했던 이유는 작은 것에도 흔들렸기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틈만 생겨도 마음은 불행의 예언자 카산드라처럼 미래를 점치고 그것을 실재의 이미지로 보여준다. 그 말도안되는 영화를 관람한 마음은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움츠러든다. 감정은 세차게 요동친다. 불안이 주는 불쾌를 다시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안전한 선택지를 택한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 괴리는 온전한 마음을 거부한다. 



그래서 오늘 나는 선택을 했다. 내가 더 온전하게 살아갈 일상을 창조하기로 말이다. 지난 8개월 간 일한 직장을 그만둔다고 전달을 했다. 지난 주말 마음을 먹었고, 마음을 먹었으니 바로 실행에 옮겼다. 물론 두려웠다. 퇴사 이후의 모험도 불확실했지만 그보다 두려운 것은 퇴사를 말씀드리는 그 상황이었다. 하지만 오늘 퇴사를 말씀드리며 이야기를 할 때 내 마음은 어느때보다 단단하고 자연스러웠다. 당연히 안된다고 하셨고 잡으시기도 했다. 이전같으면 그런 상황에서 움츠러드렀을 마음이 이제는 오히려 상대를 이해하고 설득하고 안심시키고 있었다. 불과 두 달전 쓴 일기와 정말 대조되는 상태였다. 



고요한 마음은 있다. 어떤 극한의 상황에서도 고요함은 존재한다. 

그 고요함의 감각을 유지하자. 우아한 균형을 사랑하자. 

거친 파도와 서핑 보드위 평온. 물론 가능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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