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만난 빈센트 반 고흐》

-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전시회를 보고-

by jskim


빈센트 반 고흐 전시회가 대전에서 열리고 있다. 마침 지인이 초대권을 보내줘서 모처럼 부부가 미술관 나들이를 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과 고흐가 마지막 생을 살았던 프랑스 북부의 소읍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방문했었지만 정작 암스테르담에 출장을 갔으면서도 오털루의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시간 관계상 못 가봐서 늘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뮐러 미술관 소장 고흐 작품이 한국에 와 대전에서 전시를 한다고 하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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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근데 사진 촬영이 안된단다. no flash도 안된다고 하니 아쉽다. 간혹 얼른 찍는 관람객도 있지만 나는 그래도 문화인이니 차마 그럴 수는 없고. ^^
고흐의 작품은 수백억을 호가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 되었지만 정작 생전에 팔린 그림은 딱 1점 <붉은 포도밭>이란 유화가 400프랑(한화 50만 원)에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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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하게 팔린 <붉은 포도밭>

반 고흐(1853~1890)는 37년의 삶을 살다 간 화가이다. 보통 유명한 사람들에겐 '천재 또는 위대한'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전시회 제목은 불멸의 화가 반 고흐이다.
아무리 봐도 고흐는 천재 화가라고는 하기 어렵다. 그저 지극히 평범한 생활화가의 길을 살다 간 무명화가쯤 생각된다. 네덜란드의 목사 아버지 아래서 태어났는데 형제가 6명이고 그나마 형이 죽는 날 태어나서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아 빈센트 반 고흐가 되었다. 어쩌면 형의 이름으로 인생을 산 것이다.

고흐는 26세까지는 평범한 일상인의 삶을 살았다. 아버지가 목사이니 자신도 목사나 전도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목회자의 길을 가고자 했던 그저 그런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장남이니 취직을 해야 했으므로 구필화랑에 들어가 그림 판매일을 하였다. 동생 테오도 畵商인 걸 보면 같은 일을 해서 두 형제의 우애가 남달랐는지도 모른다. 테오는 18년 동안 월급의 일부를 떼서 형 고흐의 생활비로 주었다. 지금도 안 그러는데 당시 적은 급여를 떼서 형에게 준 것은 형제가 얼마나 우애가 깊었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고흐는 세상의 외톨이였지만 오직 딱 한 사람 동생 테오만은 형을 사랑하고 인정해 주었다. 고흐는 외로울 때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마다 테오에게 편지를 썼다. 그 편지가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고흐는 구필화랑 런던 지점에 발령받아 영국에서도 근무를 했다. 그림 판매업을 하다 보니 짬 날 때마다 취급하는 그림을 놓고 모작을 그리기도 했다. 특히 목회자풍의 경건한 전원 풍경을 그렸던 프랑수와 밀레를 좋아해서 그의 씨 뿌리는 사람을 흉내 내 그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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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 뿌리는 농부


고흐는 27세에 화가가 되어 37세에 사망했으니 꼭 10년간 화가생활을 한 셈이다. 남긴 작품은 900여 점.
그의 생애 활동기를 시기별로 구별해 본다면,


1기는 네덜란드 시기 : 이때는 본업으로 화가가 되기 위한 습작시기이다. 이른바 드로잉 시기로서 데생을 통한 끊임없는 훈련과 수련의 과정이었다. 이때 1천여 점의 데생과 습작을 남겼다. 주로 종이에 인물화를 데생으로 그렸다. 이번 전시회 출품작 중 상당수를 차지했다.

2기는 파리 시기 : 빛의 발견.
1886년 3월 파리로 오면서 파리에서 2년간 머물렀다. 파리에서 점묘파라는 신인상주의 화풍을 접하면서 색채 효과로서 빛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점차 고흐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게 된다. 네덜란드 시기 어둡고 검은 톤의 데상에서 파리시기에는 빛에 의한 밝은 색채의 유화작품을 그렸다.

제3기는 남프랑스의 아를 시기 : 색채의 발견
1888년 고흐는 프랑스 남부의 아를로 왔다. 아를에서 1년 남짓 시간을 보내면서 삶의 가장 격정적인 시기를 보내게 된다. 남프랑스의 뜨거운 태양아래 모든 정열과 재능을 쏟아부으면서 그의 화가 인생의 가장 뛰어난 작품들을 남긴다. 그러나 이 시기에 정신적 질환을 얻게 된다. 187점의 유화를 작품으로 남겼다. 그 유명한 7점의 해바라기 작품도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제4기 생 레미 시기 : 자연으로 돌아가라.
생 레미에서의 1년은 위대한 자연의 발견인 동시에 색채회화의 완성시기이다. 자연의 빛과 형태를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 방식으로 발전시킴으로써 회화를 통한 구원의 길로 접어든 시기이다. 생레미의 정신요양원에 머무르는 동안 반 고흐는 여섯 번의 발작을 경험한다. 정신적 고통을 작업에 대한 의지로 이겨내면서 예술가적 사명에 충실했던 그는 거칠고 강렬한 붓터치를 통해 응어리진 현실의 고통을 더 깊고 강하게 표현하였다.

제5기 오베르 쉬르 우아즈 시기 : 별을 따러 가다.
파리에서 북쪽으로 50킬로 떨어진 오베르는 조용한 소읍이다. 1890년 5월 20일 고흐는 오베르에 왔다. 라부 여인숙 다락방에 기거하면서 의사 가셰의 보호를 받으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2달 동안 70점의 작품을 남겼다. 생의 마지막 열정을 쏟아부은 것이다.

2013년 3월 비가 내리는 날, 나는 잿빛 하늘을 보며 파리에서 오베르로 차를 몰았다. 라부 여인숙 2층의 고흐 방에는 노후된 철재 침대와 벽엔 1890년 7월 29일의 신문이 붙어 있었다.
이윽고 그림에 나오는 오베르 시청과 성당을 들러서 고흐의 마지막 작품의 무대가 된 <까마귀가 나는 밀밭>
을 보러 갔다. 밀밭가에는 이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이 걸려있었다. 미끄러워 더 이상 들어가기 어려워 나와서 묘지로 올라갔다. 천둥이 치고 비가 내려 하늘은 어두운데 혼자 공동묘지를 올라가는 것이니 으스스하였으나 워낙 고흐 마니아라 참고 드디어 묘지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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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귀가 나는 밀밭. 마지막 작품이고 이곳에서 권총을 가슴팍에 shot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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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와 동생 테오의 무덤. 고흐가 죽은 후 테오도 6개월 뒤 죽었다. 지금은 두 형제가 나란히 누워있다.


그런데 내가 오늘 고흐 전시회에 온 이유는 고흐의 초기 작품인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보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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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게 아닌데 웬일이지. 그림이 다르다.
표제를 보니 1885년 4월 직조지에 석판화라고 쓰여 있다. 크기는 가로 28센티 세로 34센티. 아주 작다.

그런데 <감자 먹는 사람들> 은 유화 두 점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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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자 먹는 사람들. 1885년, 82 cm×114cm,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나는 램프의 불빛 아래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의 접시를 향해 내민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파고 농사를 지었는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려고 했어. 그 손이야말로 자신의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한다. 언젠가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진정한 농촌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거야."(1885.4.30. 테오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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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자 먹는 사람들. (1885.4~5), 74 cm×95cm,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

위의 그림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크뢸러 뮐러 미술관 그림이 먼저 그린 것이다. 석판화 하고 유화는 인물 배치가 반대로 되어 있다. 유화 두 점도 약간 다르다. 숨은 그림 찾듯이 다른 점을 찾아보기 바란다.


이 <감자 먹는 사람들>은 많은 습작이 있다. 그만큼 고흐의 초기 작품이라 광산촌에서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세심한 관찰을 하고 습작을 거쳐 탄생한 역작이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삶의 리얼함을 보는 듯해서 경건함을 느낀다. 이 그림에서는 화가 지망생으로서의 고흐의 습작이어서 독특한 고흐 스타일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인생을 살면서, 좋아하는 예술가나 작가 한 사람쯤은 가지고 있으면 즐거운 일상을 누릴 수 있어서 좋다.

그 사람을 주제로 작품의 배경을 찾아가거나 역정을 탐구하는 것은 인문기행으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내년에는 고흐 작품의 절정을 맞이했던 남프랑스 아를에 가려고 한다. 일상에서 꿈꿔 볼 수 있는 작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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