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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skim Aug 25. 2024

악양 평산리에서

하동 문학기행 1편 

  난생처음 문학기행을 가는 것이니 어찌 마음이 설레지 않겠는가? 더구나 가는 곳이 하동 토지문학제이니까. 河東. 왜 하동일까. 섬진강의 동쪽이라 하동일까.

  분명한 것은 강을 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강만 끼고 있다면 50점일 텐데 지리산 깊은 골에서 흘러나온 샘물 같은 맑고 시원한 물줄기를 끌어다 찰진 악양 평야를 기르고 섬진강에 합류하여 남해로 흘러가니 이곳 하동 악양은 가히 어머니의 땅이라 할 만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이름이 악양일까? 그럼 동정호도 있을까? 있단다. 중국 호남성에 있는 동정호와 악양루가 한국의 하동 땅에 있을 줄이야. 하동 악양은 중국의 악양루(岳陽樓)의 이름을 옮겨 놓은 것이다. 지리산 계곡물이 섬진강으로 흘러들면서 보기 드물게 큰 평야를 이루었으니 중국 양자강 중류의 악양과 동정호(洞庭湖)를 연상하여 붙인 이름이리라. 동정호 남쪽에 소상이 있다. 소수와 상강의 물이 합류하여 양자강으로 흘러가는데 이 합류지점인 소상의 경치가 빼어나 이를 瀟湘八景이라 한다. 이 소상팔경은

중국에서도 풍광이 뛰어나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그런데 이 소상팔경이 하동에도 있단다.

  나는 박경리 토지의 무대인 하동 악양의 평사리라는 지명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平沙里. 어디서 본 듯한 낯익은 지명이다. 평사리. 平沙落雁? 우아! 바로 소상팔경 중의 하나인 평사낙안이 평사리였구나. 하얀 모래뻘에 사뿐히 내려앉은 기러기. 이 얼마나 운치 있고 아름다운 정경인가.

  동정호가 있으니 소상팔경의 洞庭秋月이 있는 것은 당연지사. 동정호의 가을달. 설명이 더 필요 없는 가을의 정취이다. 소상팔경 중에서도 백미인 평사낙안과 동정추월이 있는 하동 악양의 평사리는 고스란히 문학적이다. 박경리 토지의 무대가 왜 하동 평사리였는지 궁금증은 오늘 평사리에 발을 내딛는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악양 평사리이기 때문에 토지라는 대작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게 나의 답이다.

  두보와 이백은 동정호를 머금은 높은 악양루에 올라 그곳의 풍광을 노래했지만 그들이 지리산과 악양들판, 섬진강의 아침햇살과 저녁 어스름을 보았다면 뭐라 했을지 궁금하다. 


  나의 좌우명이기도 한 범중엄의 그 유명한 <악양루記>가 생각난다.


  범중엄, <岳陽樓記>


  "先天下之憂而憂  천하의 근심을 앞서 근심하고

   後天下之樂而樂  천하의 즐거움을 뒤에 즐긴다."


  두보 <登岳陽樓>


  昔聞洞庭水  오랜 전에 동정호에 대하여 들었건만

  今上岳陽樓  이제야 악양루에 오르게 되었네

  吳楚東南瞬  오와 초는 동쪽 남쪽 갈라 서 있고

  乾伸日夜浮  하늘과 땅이 밤낮 물 위에 떠 있네

  親朋無一字  친한 친구에게조차 편지 한 장 없고

  老去有孤舟  늙어가며 가진 것은 외로운 배 한 척

  戎馬關山北  싸움터의 말이 아직 북쪽에 있어

  憑軒涕泗流  난간에 기대어 눈물만 흘리네


   이백 <登岳陽樓>


  與夏十二登岳陽樓 악양루에 올라


  樓觀岳陽盡  악양루에서 악양이 다 보이네

  川逈洞庭開  시내는 멀고 동정호가 펼쳐지네

  雁引愁心去  기러기는 시름을 가져가 날아가고

  山銜好月來  산들도 좋고 달도 떠오르네

  雲間連下榻  구름 사이에 숙소 정해 머물고

  天上接行杯  하늘 위에서 술잔 돌려 마시네

  醉後凉風起  취하니 서늘한 바람 불어

  吹人舞袖回  휘돌아 춤추는 사람 소매깃을 휘도네


하동의 악양 평산리 들판은 뜨겁게 시대를 살아갔던 

민초의 삶과 그리고 그들의 문학을 한껏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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