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장사 석불은 진짜 고개를 돌렸을까?

- <사실>과 <내러티브>의 이중주, 사유안목이란 무엇인가? -

by jskim


통일신라의 극성기인 경덕왕 대에는 고승 대덕들이 많았다. 그중에 미륵불을 숭상하는 법상종(또는 유가종) 승려에 진표와 대현(태현이라고도 함)이 있었다. 삼국유사에 대현 스님의 신이한 일화가 전한다.

"유가종의 개조 대현(大賢) 대덕은 남산(南山) 용장사(茸長寺)에 기거하였다. 절에 미륵석조장육상이 있었는데 대현이 항상 그 둘레를 돌면 불상 또한 대현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

지금의 경주 남산 용장사지에는 목 없는 삼륜대좌 석조 불상이 있다. 불상의 대좌 같기도 하고 탑 같기도 한데
맨 위에 불상이 앉아 있다. 맨 위 상대석 대좌에는 앙련의 연화문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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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목 아래 부분은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고, 불상이 앉아 있는 상대석과 하나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어깨는 좁은 편이지만 당당함을 보여 주고 있으며, 몸의 굴곡은 세세하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균형 잡힌 신체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수인은 특이하게 오른손을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왼손을 왼쪽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놓아, 언뜻 보면 항마촉지인을 좌우로 바꾸어 놓은 듯한 모양이다.

옷은 통견의(通肩衣)이며 옷자락 선은 조각도로 깎은 것처럼 처리되었으며 자연스러운 옷주름이 표현되었다. 가슴에는 승각기(僧脚岐)의 깃이 굵게 표현되어 있고 이것을 묶는 띠 매듭까지 나타나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경주 남산 칠불암 사면불상의 것과 유사하다.

왼쪽 어깨에도 또 하나의 띠 매듭이 있는데, 이것은 가사(袈裟)를 묶는 띠로서 어깨 뒤쪽의 고리에서 어깨로 내려와 무릎 아래까지 이어져 있고, 그 끝은 수술로 장식되어 있다. 이 가사 띠는 대개 승려의 초상화에 표현되는 것으로, 경주 남산 삼릉계(三陵溪)의 목 없는 불상 등 드물게 불상에도 나타나고 있지만 이것은 석굴암 감실의 지장보살상 같은 승려형의 상에 주로 표현된 특징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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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삼릉계 목 없는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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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자락이 대좌를 덮어 내린 상현좌(裳懸座)는 앞과 양옆에만 나타나고 뒤쪽에는 연화문이 표현되었다. 상현 주름은 복잡하지만 명쾌하게 처리되었으며, 연화문 역시 깔끔한 모양을 보여 주고 있다. 3층으로 구성된 대좌(臺座)는 기단부가 자연석이고, 간석(竿石)과 대좌가 탑신과 옥개석(屋蓋石) 모양으로 구성되고 있는데, 모두 특이한 형태의 둥근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석불은 과연 대현법사가 불상의 둘레를 도니 불상 또한 법사를 따라 얼굴을 돌렸다는 그 미륵 장육상이 맞을까?

우선 대좌 크기까지 계산해 보면 장육상 크기와 비슷하다
고 한다. 그럼 석불은 미륵불상일까? 미륵불상의 수인이 정형화된 것이 없으니 알 수 없으나 양손을 각기 무릎에 자연스럽게 올려놓은 수인은 석가모니불이나 아미타여래는 아니다. 그럼 미륵불이 아니라고 배제하기도 어렵다. 더욱이 대좌가 삼륜이다. 이 또한 미륵의 용화 3회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학자들은 대부분 대현법사의 미륵장육상으로 보는 분위기이다. 목도 없는데 사연이 있으면 좋지 않나. 그런 내러티브라도 있어야 사람들이 쳐다볼 것이다.

불상이 사람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 이런 것을 내러티브라고 한다. 내러티브는 내러티브답게 해석해야지 그것을 과학적 물리적 관점에서 석조불상이 어떻게 고개를 돌릴 수 있나 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문제는 고개를 왜 돌렸을까? 그런 내러티브가 왜 만들어졌을까 하는 점이다.

미륵을 주불로 삼는 법상종은 신라 통일 후 유행하였다. 문무왕~경덕왕 시기는 신라문화의 황금기이고 태평성대였다. 신라의 위정자들은 자신들이 다스리는 신라 땅이 불국토이고 미륵의 용화세계가 도래한 것이라고 설파했다. 국민통합을 위한 프로파간다인 것이다.

진표의 미륵신앙은 고향인 금산사에서 발흥하였고 그 제자에 의해 속리산 법주사로 이어졌다. 반면 대현의 유가종은 경주권을 벗어나지 않았다. 경덕왕 대는 화엄종과 법상종 두 종파가 불교계를 주도하였다.
두 종파는 서로 불국토 신앙을 전파했다. 화엄종은 토함산 중턱에 불국사를, 법상종(유가종)은 남산에 용장사를 창건했다.

신라는 화엄사상으로 지배층과 백성이 하나가 되는 국태민안을 불국사를 통해 달성하려 하였고 또 한편에서는 민중 불교의 성지 남산에 미륵사상의 본산으로 용장사를 건립해 백성들에게 희망과 구원의 메시지를 제시하려고 하였다. 즉, 현실의 평안과 미래의 희망을 동시에 추구한 것이다.

미륵불상 가까운 곳에 또 하나의 불상이 있다. 석가모니불이다. 현세와 미래불을 같이 구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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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법사를 따라 같이 고개를 돌렸을 용장사의 미륵장육상. 미륵불께서 신라 백성들의 염원을 들어준 것은 아닐까. 보통은 부처님은 가만히 있고 중생이 움직이는데 여기서는 부처님께서 중생을 따라 움직였다는 것 아닌가? 중생의 염원과 발심에 답을 하신 것이다.

대현법사는 서라벌 백성들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위치에 탑과 마애불과 삼륜대좌를 갖춘 미륵불을 모셨다. 그것은 남산을 새로운 세상 용화세계로 본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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