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중화전에 깃든 깊은 뜻은?>

- 100여 년 전 중화의 의미를 오늘날 되새겨 볼 때이다. -

by jskim


예나 지금이나 이름은 함부로 짓지 않는다. 사람의 이름은 물론 궁궐의 전각 이름도 국가와 왕실의 번창을 생각해서 짓는다. 그러기에 궁궐과 전각의 이름에는 나름대로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궁궐을 답사하거나 구경하면서 전각의 이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대한제국의 법궁이었던 덕수궁의 정전은 중화전이다. 풍전등화 같았던 19세기 구한말, 제국의 정궁인 덕수궁의 정전 이름을 왜 중화전이라 지었을까?


1897년 2월 러시아 공사관에 있었던 고종은 정동의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했다. 옛 전각인 즉조당을 태극전이라 이름 짓고 기거하였다. 그 후 광무 2년(1898년) 2월 13일 태극전을 中和殿이라 개호 하였다. 왜 이름을 바꿨을까?


中和. 무슨 뜻인가. 후일 중화전을 새로 짓고 그 정문을 중화문이라 했다. 중화란 글자의 출처는 중용이다. 제1장 세 번째 단락에 나온다.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기뻐하고 노하고 슬퍼하고 즐거움이 발(發) 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이르고, 발(發)하여 모두 절도(節度)에 맞으면 화(和)라 이르니,

중(中)이란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요,

화(和)란 것은 천하의 통달되는 도(道)이다.

이 中과 和를 지극히 하면 하늘과 땅이 자리 잡히며 만물이 길러지느니라."


대략 이런 뜻으로 해석이 된다.

인간의 본성이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평온하고 순수한 상태를 中이라 한다는 것이다. 中이란 단어를 영어의 middle 또는 center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직선에서 한가운데 또는 둥근 원에서 중심이라 해석하는 것이다. 中을 어떤 점으로 인식하여 공간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적절한 것인가?


그런데 中의 다음에 나오는 글자가 和이다. 中과 和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 두 글자를 같이 놓고 생각해야 한다. context(맥락)로 해석해야 한다는 뜻이다.


中은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의 순수한 본성이고

그 감정이 드러났을 때 절도에 맞으면 和라는 것이다.

그래서 中和란 줏대를 잘 잡아서 모자라거나 치우침이 없이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은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고 인간의 본성이 중심(균형)을 잡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사람의 품성이 아닌 당시 정치에 적용하면, 새롭게 탄생한 대한제국이 열강들에게 흔들리지 아니하고 나라의 중심을 잘 잡고 열강의 세력균형을 이용하여 독립을 유지해 나가야 함을 의미했다.

분명 고종은 그런 뜻에서 중용에서 중화를 인용해 전각의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이는 그다음에 있었던 새 정전의 이름을 중화전이라 지은 것에서 명확히 알 수 있다.


1902년 10월 19일 중화전이 완공되자 고종은 중화전에 나아가 진하를 받았다. 신료들은 만세, 만만세를 열창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국운이 기울어져 가던 때라 고종의 대한제국은 구호처럼 중화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1904년 러일전쟁이 터져 국토는 전쟁터가 되어 버렸고 전쟁이 마무리될 즈음 일본은 헌병을 데리고 와 위협 분위기 속에서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은 망국의 길을 갔다. 中和를 유지하지 못한 것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중화는 힘이 있어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dynamic equilibrium 중용의 핵심 개념이 중화이기 때문이다.


자기는 가만히 있으면서 주변 환경에 의해 또는 타의에 종속되어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정태적 균형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면서 자신이 평형을 찾아가는 것이 중용이다.


100년 전에 자주독립을 위한 기치로 내세운 中和.

과연 100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中和를 잘하고 있는가.

중화 정치의 참 뜻을 되새겨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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