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 고려시대 서희는 정말 세치 혀로 거란의 침입을 물리쳤을까?

by jskim

한미 무역(관세)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소식이다. EU, 일본과 같이 15% 관세라고 한다. 원래 무관세였다가 15%는 큰 관세이다. 게다가 철강은 50%이니 트럼프는 가만히 앉아서 장사를 한 셈이다. 부동산 재벌답게 트럼프는 정치를 장사꾼처럼 꼭 이익을 남기려 한다. 미국은 더 이상 세계 선도국가가 아니다. 그저 남의 이익에 눈독 들여 탐내는 저급한 나라가 되어 버렸다. 맘에 안 들면 남의 나라 침략 협박도 하고 경제 보복도 한다. 케네디 시대는 먼 옛날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미국만 탓할 수는 없다. 국익을 추구하지 않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트럼프는 세계 무역질서인 FTA체제를 깡그리 무시하였다. 이제 WTO는 힘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이게 엄중한 국제경쟁이고 협상이다.

원래 협상은 얻을 것은 얻고 줄 것은 주는 것이 원칙이다. 즉 all or nothing 은 없다는 것이다.
이번 한미 관세 협상에서 우리 측 히든카드는 조선업이었다. 배를 건조하는 조선업은 대기업이 있는 나라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중소기업 국가인 대만은 배를 만들지 못한다. 미국도 조선업이 있으나 거의 폐업 수준이다. 트럼프는 쇄빙선을 갖고 싶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갖고 있으면 그것이 협상카드로는 유리한 패다. 우리가 가진 유리한 패, 그것이 조선업이다.

이번 한국 협상단이 내건 협상 전략은 <마스가>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이게 뭔가 하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내세운 캐치 프레이즈가 마가(MAGA)였다. 마가란 "아메리카를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의 영어 약자이다. 우리 협상단은 여기에 s자를 넣어 "아메리카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로 정하고 미국의 조선업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한 것이다. 일단 상대를 추켜 세워 환심을 사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번에 한국은 정부 관료와 기업인들이 원팀이 돼서 함께 움직였다고 한다. 특히 장관에 임명된 지 6일밖에 안된 김정관 산자부 장관은 미국 상무장관의 스코틀랜드 출장길을 두 번이나 따라가 틈새 시간을 내어 대화를 시도했는데 그 정성에 감동한 미국 상무장관이 자기 집으로 저녁식사를 초대했고 그 자리서 트럼프를 만나 대화할 때 주효한 자세 등을 코치해 주었다고 한다.

출범 2개월 밖에 안된 신 정부가 발 빠르게 대응한 덕분이고 일 잘하는 사람들을 뽑은 인재 등용이 이번의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협상이 끝나면 늘 아쉬움은 남지만 트럼프는 만족했는지 sns로 이재명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을 2주 내에 하자고 제안했다. 트럼프는 sns를 이용해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그의 트윗 정치가 이렇다. 직설적이고 공사를 구분하지 않는 정치 스타일이다.

우리 역사에서 유명한 협상가 또는 외교관으로 손꼽히는 인물이 몇 명 있다. 거란과의 교섭으로 강동 6주를 얻은 고려시대 서희, 병자호란 때 청과의 협상으로 나라를 지킨 최명길, 임진왜란 때 일본과 명과의 강화협상에 참여한 한음 이덕형 등이다. 이들은 협상을 통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지켰다. 100% 만족할 수 있는 협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선에서 타결하여 덜 손실을 입게 하는 전략이 중요하다. 이익만을 챙기려고 하면 실패하여 더 많은 걸 잃을 수도 있다.

고려 성종 12년(993년) 거란의 동경유수 소손녕이 북계의 봉산군에 쳐들어와 성이 함락되자 고려 조정은 거란에게 서경 이북의 땅을 분할하여 주고 항복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성종은 땅을 분할해 주자는 의견에 따르고 남은 곡식을 전부 대동강에 던져 버리라고 명령하였다. 이때 서희가 반대하면서 땅을 떼어주는 것은 나쁜 계책이라며 그럼 점점 요구가 거세져 전 국토를 달라고 하면 다 주겠냐고 하며 홀로 적진에 들어가 7일간 담판을 하였다. 소손녕이 말하기를 "너희 고려는 우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 왜 바다 건너 송을 섬기고 있느냐.
만약 땅을 분할해 바치고 조빙에 힘쓴다면 무사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서희는 "조빙이 통하지 않는 것은 도중에 여진이 있기 때문이며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의 영토를 돌려주어 성과 보루를 쌓고 도로를 통하게 해 준다면 어찌 감히 조빙을 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소손녕이 이 사실을 거란의 황제에게 보고하자 황제는 고려가 강화를 요청해 왔으니 군사행동을 중지하라고 했다. 이상이 고려사의 기록이다.

이로써 본다면 거란의 고려 침입 목적은 고려가 자기들과는 수교하지 않고 송나라와 수교하고 지내는 것에 대한 질투였다. 서희는 사전에 거란의 침입 의도를 정확히 인지하고 그에 대해 대비한 것이다. 수교는 해줄 테니 조빙을 못하게 하는 여진을 내쫓은 다음에 하겠다는 논리였다. 거란으로서는 고려가 수교하겠다는 의사를 전해 왔으므로 목적달성을 한 것으로 인정한 것이다.

고려 태조 이래 고려는 거란을 발해를 멸망시킨 무도의 나라라 여겨 상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거란이 왜 우리하고는 친하게 지내지 않느냐며 쳐들어 온 것인데 갑자기 고려가 우리도 너희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중간에 여진이 있어 너희에게 조빙하는 것이 힘드니 여진을 축출하고 난 후 조빙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때쯤만 해도 거란은 고려를 전면적으로 침략할 의사가 없었고 국경 부근서 무력시위를 했을 뿐이다. 즉 거란이 물러간 것은 고려가 강화를 요청하고 수교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서희의 당당하고 자신 있는 언변이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이때는 통역이 있었다.

즉 서희의 세치 혀 덕분에 압록강 부근 강동 6주를 얻은 것은 아니다. 1년 뒤인 994년 서희가 군사를 거느리고 여진을 쫓아내고 6개 성을 쌓은 것이다.

즉 거란과 고려의 협상은 서로 이익과 명분이 맞아떨어져 성공한 것이다. 일방적인 협상은 있을 수 없다.

0_96hUd018svcjmf2mvy4i84v_hhjmnc.jpg?type=e1920_std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세계유산 석굴암의 미스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