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문학기행 4편
소설 토지의 기본 얼개는 간단하다. 최 참판 일가 3대의 가족사이며 그 주변 사람들의 생활사이다. 나는 작가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기본 줄기인 가문을 왜 참판 댁으로 정했을까 궁금했다. 역사학도로서 당연히 드는 생각이다. 참판은 종 2품 벼슬이다. 지금의 차관에 해당한다. 장관인 판서 댁으로 하는 것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소설 토지를 이끌어 가는 줄기는 가문인데 지방의 지주 계급으로서 어느 정도 중량감이 있을 위치로는 판서 바로 아래 계급인 참판이 적당하기 때문이다. 나라도 그리 했을 것이다. 참판 벼슬을 했던 가문으로서 토지를 소유한 재향지주 양반가와 그에 딸린 소작농들의 욕망과 갈등 그리고 교섭에 관한 스토리. 이것이 소설 토지의 기본 줄기이다.
그런데 그냥 가문의 이야기라면 개인사에 불과하여 흥미가 없다. 여기에 '역사'라는 외피를 입혔다. 그것도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고 액티브 한 '동학난'이란 소재를 끌어왔다. 토지는 동학농민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아직 여진이 채 꺼지지 않은 1897년 여름부터 시작된다.
동학난을 시발로 구한말의 격동기, 일제강점기의 암흑기, 간도로 이주하여 곤궁한 생활을 이어가면서 결코 꺾이지 않은 불굴의 끈기 그리고 드디어 맞이한 해방. 굵직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최 참판댁 운명 속에 수를 놓듯이 아리하게 녹여 엮었다. 이것이 소설 토지가 갖고 있는 질긴 생명력일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우리 민족이 걸어온 역사적 삶과도 궤를 같이 했다.
한 가문의 역사가 민족의 역사로 확대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소 소설의 精致함이 무뎌질 수도 있었지만 작가는 그것을 용케 잘 수습했다.
토지는 공간적으로 하동 악양 평사리 들판에서 만주 간도까지, 시간적으로는 재산을 불리고 민을 통제했던 중세적 지주 신분에서 나라를 잃고 간도로 가서 大商이 되고 이로 모은 재물을 국권회복에 희사하는 우리 민족의 시대와 역사로 확장되었다.
이것이 토지가 대하소설이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드라마틱한 역동성을 가질 수 있는 이유이다. 역사의식은 소설의 호흡을 길게 만들었다. 그래서 토지는 문학이면서 외피는 역사이다. 민족의 숨결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