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알레드미 Oct 30. 2024

뭉툭한 마음으로는 어떤 글도 함부로 쓰지 말라

뭉툭해진 펜은 사려깊지 못하다.

사물의 섬세한 표정이 근엄해지고

둥글둥글한 것도 뭉개진 연통처럼 보인다

뭘 써도 표현은 불퉁한 독불장군이다

펜촉의 무뚝뚝한 무관심이 종이의 연약함을 해친다

손아귀를 벗어난 앙가조촘 쓰인 독선의 필체

독선은 미세하게 미묘한 차이를 배려하지 않는다

악필을 탓하는 게 아니라 뭉툭해진 마음이 문제다

올곧고 단아하며 강단있는 글들이 독단으로

무례하고 권위적인 필체로 바뀌어 보인다

정곡을 찌르는 말 선명한 메시지도

필체의 억지 강요된 투박함에 뭉그러진다.

내 생각이 뭉툭한 펜처럼 사려깊지 못하다면

지금이야말로 마음을 벼릴 성찰이 필요한 때

생각의 주관을 갈고닦는 주인의식을 가져야 할 때

그 무엇도 상처받지 않도록 섬세하게 배려해야 한다

하나의 펜촉이 물의 정을 맞고 바람의 사포질에 깎여

흰 버선발 달빛 닮은 종이위에 일필휘지로

한 촉의 우아한 동양란이 되기에 충분하다면

펜대의 중심에 뭉근한 다정함이 스미기를

종이의 마음까지 헤아릴 섬세함을 지니기를

글은 말보다 느리지만 마음에 오래 머문다

그러므로 금방 잊힐 동강글조차도

뭉툭한 펜으로 함부로 써선 안된다

정갈한 필체로 정성을 다해 기도하듯 써야한다

작가의 이전글 길흉화복의 씨앗,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