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간절히 원하고 반드시 이루어지길 바라는 꿈이 있을 것이다. 기적이라도 일어났으면 하고 끈덕지게 강구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남녀노소 다양한 바람대로 기적을 꿈꾸고 있다. 오랫동안 불임으로 마음 졸이던 부부에게 아기가 태어남은 기적이고 그 아이가 커 갈수록 표현해 내는 행동변화에 가족 모두가 놀랍고 경탄해한다. 대학 입시나 회사 입사를 앞둔 자녀들이 있으면 그 부모는 합격의 기적을 바라고 날밤을 기도하며 지낼 것이다. 결혼 적령기의 성인 남녀들은 멋진 왕자와 아름다운 공주를 만나 기적 같은 사랑을 꿈꾸며 결혼에 성공하길 바랄 것이다.
반세기 이상을 살아온 나는 위의 예시들 처럼 전후의 혁혁한 생활 변화를 가져오는 기적은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남들이 "에이, 그 정도 갖고~"라고 얕보는 아주 사소한 현상들을 나에겐 기적처럼 느껴졌던 경험들이 여러 번 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올 초 꽃봉오리 가득한 히야신스가 물에 잠긴 화병을 선배로부터 선물 받았다. 다음 날 히야신스 꽃봉오리가 모두 만개하여 너무나 화려하게 피어난 것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고 사진을 찍어 여기저기 자랑을 했었다. 하지만 일주일도 못 가 그 화려한 꽃잎들이 시들고 추레해진 모습을 보고 얼마나 허무한지, 설레는 마음 정말 잠깐이었다. 꽃가지를 전부 따 버리고 둥근 뿌리도 버릴까 하다가 아쉬운 마음에 마침 흙이 담긴 빈 화분이 있어 그 속에 묻어 두었다. 여름이 지나고 늦가을 무렵 베란다 화분들을 정리하다가 조그만 화분 속에 가녀린 예쁜 연초록 싹이 나오고 있어 무심코 "뭐지? 웬 싹?" 하다가 순간 깜짝 놀랐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 히야신스였다. 물 한 방울 주지 않은 흙만 가득한 화분. 메마른 흙 부스러기에서 조그만 연초록빛 싹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기적이었다! 새 생명의 탄생! 몇 개월의 그 긴 시간 동안 새싹을 내밀기 위해서 알뿌리는 수분기 없는 메마른 흙 속에서 얼마나 참고 기다리며 갈증을 견디어냈을까. 가슴 두근거리는 설렘으로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 후로 싹이 녹을까, 증발해 버릴까 염려와 조심스러움으로 싹 주변의 가장자리에 물을 조금씩 뿌려주었다. 아침마다 새싹을 바라보며 신비스러움에 취해버리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모든 말초 신경들이 깨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아주 작은 미물의 소생이 이렇듯 에너지를 넘치게 하고 삶에 활기를 주는데, 끈질진 생명력이 이토록 강한데 하물며 인간에게는 어떻겠는가. 너무나 존엄하고 너무나 귀한 생명력은 기적인 것이다.
시들어버림을 실망하고, 쉽게 저버리고, 포기하고, "역시나", " 또, 그렇지 뭐.' 하면서 꿈과 마음을 잊혀가고 단정해버리는 삶의 태도를 반성해 본다. "혹시나", "그래도"라는 마음으로 참아가며 기다리는, 가녀린 두 손을 마주 모아 기도하는 소녀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기적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