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같은 분야에서 계속 일하며 중견 간부들이 되면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격려 및 친목 도모 목적으로 모임을 결성, 수십 년간 만남을 지속해 왔다. 물론 일부는 취미별 소모임에 참여하면서 가끔 전체모임에 가담하는 친구들도 있다. 재직 중엔 좀 더 자주 모여 친밀도를 높였고 때론 감당하기 힘든 친구가 있을 땐 적극 나서서 큰 힘이 되어 주기도 했다. 주로 활달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한 친구들이 주축이 되었지만 이미 유명을 달리 한 친구들도 있다. 퇴임 후에는 아예 나오지도 않고 몇 명만이 나와 그 명맥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명칭 친목회여서 회장, 부회장, 감사 임원단 등 처음 설정한 대로 1년씩 임기를 바꾸어가면서 모임을 이끌어 오다가 최근엔 그 직책마저 다 마다하고 안 맡으려 했다. 소수 인원들이 나와서 모임의 존폐 등을 논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참가비는 아예 없애면서 한동안 적립해 왔던 회비를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다. 대부분 회비 지출은 친구들의 애경사비였으며 공식적인 연 2회 모임만 겨우 유지해 오고 있었다.
이 즈음 예전부터 대학 동창들이 소 그룹별로 모여 소식 주고받는 등 이어오다가 전체 대학 동창회로 뭉쳐서 활성화시키고 있었다. 우리 간부 친구들 대부분이 이 모임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그러니 더더욱 간부들 모임 존폐를 논하게 되었고 대학 동창 모임 하나로 일원화하자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간부들 기존 회비를 동창회에 기부해 한 모임으로 알차게 운영하자고까지 하거나, 아니면 회비를 다 쓰고 합치자라는 의견도 나왔다. 그런 말들이 오고 가는 중에 작년에 참석지도 못한 어느 친구와 나를 회장, 부회장으로 임명해 버렸다. 어차피 한 번씩 돌아가면서 하자는 취지였다. 다 망해져 가는 직책을 누가 달가와나 할까. 나 또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임이라면 막중한 책임을 지고라도 희망을 갖고 출발했을 텐데 말이다. 회원들도 나오지 않은 모임을 나와 회장이 어떻게 이끌어갈지 막막한 생각만 들었다. 한숨만 쉬고 있을 때 회장이 이왕 이렇게 된 거 열심히 해보자 라며 연락을 해왔다. 좀 더 세심한 계획과 철저한 준비 차원의 사전답사와 상세한 안내 등에 정성을 기울이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회장과 나의 뜻을 알았는지 첫 모임에 제법 예전보다 회원들이 많이 참가하였다. 참가자들의 만족도가 높았고 임원진들의 수고를 알아줬다. 몇 개월 뒤 2차 총회에서는 예고 만으로도 자진 참가들의 수가 대폭 늘었으며 행사 당일까지도 인원들이 늘어갔다. 사실 우리 임원들은 기존 회비를 빨리 소진하면서 대학 동창 모임으로 일원화하고 하고 싶어 총회 시 간부들 모임 존폐를 신중히 논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참가자 대부분이 간부모임을 계속 이끌어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음료를 권커니 잣거니 하면서 너무나 끈끈한 정을 나누고 싶은 화통한 분위기로 무르익었다. 오래간만에 이름을 불러가면서 술병을 들고 이리저리 자리이동하는 친구들이 많아지고 테이블마다 큰 너털웃음소리가 들릴 정도로 시끌 법석한 장내가 되었다.
식사 후 바로 귀가하려는 친구들이 없고 거리에서 머뭇거리자 우리 임원들이 가까운 호프집으로 안내하며 잠깐 앉았다가려고 했었으나 대부분 남아서 20여 명이 넘은 우리들이 호프집 센터를 다 차지해 버렸다.
또 다른 세계로의 시작이었다. '한 잔의 술, 한 잔의 추억~' 이게 얼마만인가? 20대 대학생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어디 60대 이후의 퇴직자들이란 말인가? 맥주컵을 들어 올리면서 호탕하게 웃음 짓는 그들은 마음만은 젊고 청춘인 것이다.
"40주년, 50주년, 60주년 아니, 100주년까지 우리는 만나야 돼."
매 주년마다 임원진들을 지정하면서 얼마나 깔깔대었는지 모른다.
"먼저 죽으면 죽어~ "
두 번씩이나 죽는다.
"숟가락 들을 수 있거나 걸을 수 있으면 무조건 나와야 돼."
"난 자신 있어."
객기와 농담과 재담으로 한바탕 웃어젖혔다. 많은 친구들이 오래간만에 순수한 우정들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임원들이 너무 애써 의리라도 표하고 싶어 나왔는데 계속 나와 이렇게 호탕하게 웃고 싶단다. 친구들이 최고야. 서로 대화가 오고 가고 웃음꽃이 피더니 우리의 모임을 계속 유지해 나가야 한다고, 회비를 더 이상 축내지 말고 참가비를 조금씩이라고 더 내자고, 최초 모임 창설자의 초기 설립 의지 살려 이 모임을 뜻깊게 하자고 하면서 모두들 열렬하게 모임의 의미를 확고히 하였다.
의외의 반응이었다. 마치 사그라지는 불씨를 우리 임원단들이 다시 활활 살리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모임을 활성화시킨 것은 임원들의 정성 어린 준비였고 노고가 그 어느 때보다 컸다고 하면서 모임의 중요성과 앞으로의 발전 여부를 심각하게 논하였다!!
점점 더 무르익은 잔치가 되었다. 대학 후 100주년까지 우리는 살아서 모여야 하고, 그때마다 행사의 각 임원단들을 정하고 기꺼이 하겠다고 장담까지 하며, 서로를 권하고 격려하는 중에 대화는 무르익어갔다. 물론 술기운에 장담을 했겠으나 너무 좋았다. 맥주를 권커니 잣거니 하면서 웃어 젖히는 태도가 마치 대학 때로 다시 돌아간 듯한 그 젊은 시절의 마음처럼 들뜨고 열렬했으며 행복했다. 60 중반의 노인들이 그 옛정을 못 잊어 계속 살아야 한다. 기념하기 위해선 반드시 살아야 한다고 모두 그 행사 추진에 협조하겠다고 하면서 각자 자기들의 임무를 미리 떠올리면서 얼마나 호기를 부리는지 오래간만에 실컷 웃었다. 얼마 만인가 이러한 호탕한 웃음을 만끽한 지가. 직장에서 퇴임하여 그 직책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완전한 자연인이 되었음에도 평생같은 직업에 몸담아 함께한 고락이 서로 통했는지 정말로 편하고 즐겁고 호탕한 기분이었다. 그동안 뜸하게 마셨던 술들을 거나하게, 정말 맛나게 마시며 정겨운 시간을 오래간만에 가졌다. 이 모임은 정말 생명이 다할 때까지 이어져야 해. 우리는 함께 가야 해. 그동안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오래간만에 나온 친구들이 너무나 해맑게 웃어 젖히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담을 나누었다. 역시 이 분위기가 우리를 젊게 만든다.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들은 또 함께 가고 있다. 자유와 낭만과 또 다른 기댐으로 서로를 진솔하게 마주 보며 끈끈한 정을 이어갈 것이다. 모처럼 친구들이 참 좋았다. 우리들은 또 옛날의 캠퍼스 내 순수한 친구들이 되었다. 그래,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살아 또 이렇게 만나 정겹게 웃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