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눈 감아주거나 잊어버려라.
인생을 이 정도 살아온 사람이라면 기분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 세상의 잘잘못을 일일이 따지기 싫고 대충 넘어가게 된다.
-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라면, 나에게 큰 해로움이 없다면 모른 척하고 지나간다.
- 그 일에 마음 쓰다 보면 스트레스 쌓이고 내 건강에 안 좋으니까.
- 바쁜 사람처럼 다음 일을 서둘러 챙기고 지나쳐버리거나 잊도록 한다. 그게 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내 주변 젊은이에게서 느낀 점은,
- 싫고 좋은 감정 표현이 너무 확실하다. 애매한 감정 표현은 없다.
- 일단 사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면 주변 상황 눈치를 전혀 안 보고 할 소리는 꼭 한다.
- 기브 앤 테이크가 너무 정확하다.
- 통념상 지켜야 하는 예의범절은 꼭 지키고, 지키지 않는 사람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 나와 너의 경계선이 아주 분명하다.
여느 때와 다르게 현관문 여닫는 소리가 거칠고 크다.
딸내미가 씩씩거리며 욕을 해 대면서 들어온다.
"나쁜 xx" 라며 마구 욕을 해댄다.
뭔가 심사 뒤틀리는 큰 사건이 일어났나?
요즘 딸아이가 프로젝트 준비로 집 근처 스터디 카페를 자주 다닌다. 그 카페가 쾌적해서 인지 꽤나 많은 젊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여러 가지 일로 자주 오는 모양이다. 딸도 시간이 촉박하여 열중하는 편이었으나 함께 열공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 모양이다. 그중에서도 S대 야상 잠바를 입고 키가 큰 서글서글한 표정의 남자아이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나 보다. 차를 마시거나 화장실에, 멀티실 갈 때 자주 동선이 겹치는 모양이다.
"참 열심히들 공부해. 나처럼 프로젝트 준비하는 것도 같고, 자격증 시험 준비하는 것도 같고... 키도 크고 참 괜찮아 보이는 남자아이도 있어. S대 야상 입었네."
언제 얼핏 들은 것 같다. 그 후로 몇 주를 바쁘고 열심히 다니더니 오늘은 기분 나쁘다라며 화를 씩씩 내면서 들어온 것이다.
오래간만에 있었던 일들을 말한다. 카페에서 잠시 밖에 나갈 때 회전 유리문을 가운데 두고 그 녀석과 안과 밖에서 마주 보고 있을 때가 있었단다. 자기보다 문에서 멀찍이 떨어져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어서 자기가 먼저 문을 열어 들어가려고 했단다. 그런데 문을 염과 동시에 멀리 서 있던 그 녀석이 잽싸게 먼저 빠져나가고 자기는 마치 그 녀석을 위해 문을 열어준 거가 되었단다. 대부분 내가 문을 열 때 상대방이 먼저 나가면 아주 급할 때나, 나가더라도 고맙다는 목례라도 하는 것이 당연할 진데 그 녀석은 여전히 폰만 보면서 아무 말 없이 빠른 걸음으로 싹 사라져 가버렸단다. 어이가 없었고 약간 불쾌한 감정이 일었지만 자기 일상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로 또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고 한다. 그때도 무심코 평상시대로 문을 활짝 열어서 들어거려고 하는데 그 녀석이 언제 나타났는지 또 그렇게 폰만 보면서 문에는 손도 안 대고 잽싸게 빠져나가더란다. "어, 참" 하면서 기가 막혔지만 봐준다라는 생각으로 곧 잊어버리고 자기 일에 열중했단다. 그러다가 또 그런 상황이 한 번 더 일어나서 이번엔 딸아이가 문을 열자마자 빠른 동작으로 바로 들어가다가 그 녀석도 빨리 나오려는 동작으로 둘이 몸이 부딪혔다고 한다. 부딪힌 거에 사과도 없이 또 빨리 가버렸다고 한다. 속으로 "이런, XX. S대면 다냐? 건방진 XX" 하면서 속으로 욕을 했단다. 그러곤 자기 일에 열중했단다. 그런데 바로 오늘 오전 딸아이보다 반 절정도 키가 작은 여자아이가 들어가려고 문 앞에 서 있었더니 그 녀석이 아주 친절하게 문을 활짝 열어주고 여학생이 다 들어갈 때까지 문을 잡아주며 서 있더란다. 그 모습을 보니 피가 거꾸로 솟듯이 기분이 확 나빠서 '아니, 문에 전혀 손 안 대고 다니는 줄 알았더니 그 여학생한테는 친절하게 열어주고 있네, 한참을. 그럼 내가 들어갈 땐 왜 그런 거야? ' 최악으로 감정이 상하고 기가 막혀서 자기 일에 열중할 수 없었다고 한다. 집에 올 때까지 사람차별에 부화가 치밀어 감정 주체가 안돼 거친 횅동을 하게 됐다고 한다.
처음에 들을 때 은근히 나도 부화가 치밀었다. 아니, 그런 몰상식한 인간이 있나? 지난번 초등학생이 우산을 접느라고 문에 못 들어오길래 문을 열어주었더니 "감사합니다." 인사까지 하더구먼, 그 녀석은 초등학생보다 못한 인간이란 말인가? 당연히 상식적으로 차례를 기다리고 안되면 먼저 갈 때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는 해야 하는 것이 도리 아닌가?
그래도 감정을 억제하고
"이제 그 녀석과 마주 할 때는 그 자리를 피하고 그 녀석이 나간 후에 기다리고 들어가렴. 서로 부딪치지 말고."
요즘 묻지마 폭행도 있고 해서 딸아이가 잘잘못을 따지며 그 녀석에게 말을 한다면, 얘기로 들어보니 몰상식한 그 녀석이 어떻게 행동할지 몰라 무조건 피하라고 말했다. 부모 마음에 딸아이가 어디라도 다칠까 봐 그렇게 말했으나 딸아이는 담에 한 번 더 그러면 "야, 너 그 따위로 행동하지 마, 차례로 순서 지켜. 초등학생도 너처럼 안 한다. 제대로 행동해라"라고 한 마디 따끔하게 일침을 줄 거라고 한다.
나와 남편은 행동이 그러한 것 보면 절대로 상통할 인간이 아니니 상대를 말라고, 네 몸을 보전해야 한다고, 그냥 무시하고 네 일이라 열중하라고, 세상에 다 네 입맛에 맞는 사람 없다고 여러 번 당부했다. 그냥 참고 무시하며 지내는 것이 맞을까? '그래, 너 그렇게 얌통머리 없이 행동하고 살아라.' 이게 우리 식의 생각이고 기분은 상하지만 곧 잊어버리고 내 일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면 우리 주변 젊은 세대들은 기분 나쁘다면서 며칠을 곱씹고 그 인간을 완전 저질인간으로 치부하며 다음에 어떻게 앙갚음할지 열변을 토하고 또 기분 나빠하면서 좀 오래간다. 갖고 싶은 것은 철저한 계획하에 치밀하게 준비해서 수중에 넣고 말며, 해야 할 것은 시간이 걸리더라고 마침내 완수하며 해내었다는 승리감을 맛보고, 상대방으로부터 분명하고 타당한 이유를 반드시 듣고서 수긍하거나 포기하고, 회색이 없는 흑과 백의 분명한 경계를 확인하기 좋아하고, 목젖이 보일 정도로 크게 웃어젖히는 세대들...
그래도 집 주변 청소하시는 아저씨께 아침마다 안부 인사하고 귀여운 동네 아기들을 보면 이뻐 어쩔 줄 모르고 감동적인 영화를 보면 울고 웃는다. 젊으나 늙으나 행복한 순간들을 동시에 누리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