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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엠 Feb 12. 2019

가볍게 인생을 살고싶은 나에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짧지않은 생을 살아온건지. 올 해 몇 살이 되었나를 나이 계산기에 생년월일을 두드려 넣어보고나서야 정확히 알게되었다. 이젠 누가 물어보는 일도 거의 없고 생일을 유별나게 챙기지도 않으니. 알아도 별 소용이 없는게 내 나이다.


공교롭게도 요새 관심있게 읽고 있는  <인간실격> 작가 다자이 오사무도 <진달래 > 김소월 시인도 젊을  생을 마감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보면 그런 내용이 나온다. 요절한 작가들은 항상 젊은 모습의 사진을 프로필로 쓰니 그건 부럽지만. 그렇다고 일찍 죽고싶진 않다는. 하지만  늙수그레한 프로필로 자신이 기억되는게 너무 싫다는 하루키. 섬세하다고 해야할지. 별걸  신경쓰는구나 싶기도 하고. 세계적인 작가도 요런 면이 있네. 귀엽기도 하다.


다들 가는 길이니 이 길이 맞겠거니 생각하며 그 길로만 앞서거니 뒷서거니 내달린 적이 있다. 내 앞에 선 이가 있으면 무조건 제치고 싶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길이 보이지 않았다. 나 어떡해...ㅠ 부모도 어찌해줄 수 없고. 날 사랑하는 이도 어쩌지 못하는. 교착 상태. 그것은 공포였다. (그건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음을. 아주 먼 훗날에야 알게 되었다.)


그 알 수 없는 오묘한 무게를 견디면서. 주저앉아 울기만했던. 젊은날의 길. 그 길을 지나자 중년의 열갈래 길이 나타났다. 그러나, 정말 감사하게도, 그 중 내가 가고싶은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앞으로 내가 가게될 길도 여전히 가리워진 길. 그렇지만 예전만큼 공포스럽진 않다. 그만큼 나는 이 세상에 익숙해진 거겠지만. 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닐지언정. 머무르지 않고. 뿌리내리지 않지만. 살아있는 사막의 식물 이오난사처럼. 어느 길 위에 서 있다해도 담대한 나 자신을 보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작은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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