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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엠 May 22. 2019

아버지와 텔레비전

내가 대여섯 살이 되었을 무렵 국내에 처음 컬러 TV가 보급되었다.


우리 집에는 다리가 달린 흑백 TV가 있었는데. 김일 선수의 경기였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레슬링을 한창 보고 있던 일요일 오후. 펑~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를 내뿜으며 산화했다.


그 후 나는 매일 오후 5시 반이면 동네에 TV가 있는 집으로 만화영화 동냥을 다녔다. 그 집에서 저녁을 먹으려는 기미가 보일라치면 슬쩍 눈치를 보다 급한 일이 생각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옆 집에서 TV를 보다가 그 집 사내아이와 채널 다툼이 생겼고. 우악스럽게 내 멱살을 잡은 그 녀석이 나를 마당으로 끌고 나와 내동댕이쳐버렸다. 너네 집으로 가라는 말에 신발도 챙겨 신지 못하고 울면서 집에 왔다. 오자마자 나는 바로 몸져누워버렸다. 진짜로 열도 나고 몸살기가 있었다.


나는 어린아이였지만 자존심이 몹시 상했었고. 그런 식으로 모욕을 당한 게 분했던 거였다. 그 아이를 말리지 않고 가만히 보고만 있었던 옆 집 언니도 아줌마도 싫었다.


퇴근하고 돌아오신 아버지가 아파서 누워있는 나를 보고 얘가 왜 이러냐고 물었다. 옆 집에서 자초지종을 듣고 온 울 엄마. 아버지께 소상히 말씀드렸다.


엄마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울 아버지. 조용히 나를 둘러업으시고는 바로 전자대리점으로 가셨다. 우리는 동네 어느 집에서도 보지 못한 최신형에 화면이 가장 큰 컬러 TV로 골랐다.


나는 언제 아팠냐는 듯이 깨끗이 나았고. 그 날 이후 동네 아이들은, 딱 한 녀석 옆 집 그놈 빼고, 며칠 동안 우리 집으로 TV 구경을 왔다. 브라운관 화면이 크니 영화관에서 보는 것 같다나. 그냥 공짜로 보는 거니까 좋다고 해주는 거였겠지만. 내 기분은 우쭐해졌다.


지금 다시 이 일을 떠올려보니, 당시 아버지 월급이 얼마였는지는 내가 너무 어려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울 아버지가 젤 싫어했던 할부로 구입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그때 아무런 말씀은 안 했지만. 콩알만 한 딸내미가 남의 집에서 밖으로 끌려 나왔다는 게 속상하셨나 보다. 그것도 TV 때문에.


아버지 밉다는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떠오른 내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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