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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엠 Sep 10. 2016

홍콩에서 <부산행>을 보다

해외에서 새로운 흥행의 역사 쓴 한국 영화

그날도 타이쿠(Tai Koo) MTR역에서 시티플라자(Cityplaza)쪽 출구로 걸어나오는 길이었다. 주변에 걸린 광고판들을 무심한 시선으로 훑으면서도 뭔가 재미난 게 없을까 하고 내심 조용히 찾고 있었다.   

 

'어, 저 사람은..... 혹시 공유?'


그렇게 홍콩 지하철역 곳곳에 우리 영화 부산행》의 광고 포스터가 붙은 것을 보게 되었다. 영화의 내용을 전혀 몰라도 이 영화가 얼마나 긴박하고 처절할지가 배우들의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는 듯했다. 포스터에는 "시체 살인 열차" 정도로 해석될 살벌한 홍콩식 타이틀 《屍殺列車》이 《Train to Busan》이라는 영문 타이틀과 함께 표기가 되어있다.


홍콩에서 우리 영화 《부산행》의 포스터를 보자마자 가장 먼저 영화 개봉일부터 확인할 정도로 기대가 되었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침사추이(Tsim Sha Tsui)에 있는 iSquare의 UA Cinema로 갔다. 표를 구입한 후 상영관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저기 멀리서 여러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았다. 그쪽으로 가서 직원에게 표를 내밀자 아까 그 사람들이 올라간 아이맥스관 쪽으로 나를 안내하였다. 그때까지 이 영화를 아이맥스 화면으로 보게 될 줄 꿈에도 몰랐기에 순간 당황스러웠다. 무섭거나 잔인한 장면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게 될까 봐 두렵기도 했다.

iSquare에 있는 UA Cinema 영화관 매표소


상영관 안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관객들이 자리에 앉아 대형 스크린에서 나오는 광고를 보고 있었다. 이내 실내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개봉을 앞둔 몇몇 영화들의 예고편이 끝나자마자 바로 본 영화가 시작되었다.


마치 내가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나 된 듯이, 앞에 혹은 옆에 앉은 사람들이 우리 한국 영화를 보면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해서, 주위를 살짝살짝 둘러보는 여유까지 부렸다. 그러나 어느새 그런 생각은 나도 모르게 모두 사라지고 영화에 깊이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후반부에 이를 무렵에는 결국 다른 관객들과 함께 탄식하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지난 몇 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대형 참사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사고들로 인해 소중한 이들을 잃고 정신적 외상을 입어 지금까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의 짐을 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좀비들이 나에게는 왠지 그냥 좀비가 아닌 피해자들로 비쳐서 더욱 안타까웠다.


홍콩에서 사스(SARS)가 발병했던 건 이미 14년이 지난 일이지만, 어쩌면 홍콩 사람들도 이 영화를 보며 그 원인모를 무서운 바이러스로 인해 가족이나 이웃을 잃거나 자신이 격리되거나 했던 그 기억 속의 공포를 다시 곱씹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지독한 현실을 겪었기에, 마치 데자뷔를 대하듯 이 영화 더 공감하고 더 몰입한 것이 아닐는지.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각에도 여전히 압도적으로 홍콩 박스 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부산행》


이 영화는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을 비롯한 많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현재까지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2002년 《엽기적인 그녀》가 세운 최고 흥행 기록을 가볍게 경신하며 많은 관심 속에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먼 타국에서 한국 영화를, 그것도 메이저급 대형 극장에서, 자막을 읽을 필요 없이, 나의 모국어로 오롯이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복이다. 그래서 영화 부산행》의 해외 흥행이 내 일처럼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커버 이미지 출처 Pacific Rim Constr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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