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보물 같은 길들을 찾아서
오래전에 어느 항공사에서 주최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홍콩 여행 왕복 티켓을 한 장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아직 어린 학생이었고 혼자 여행을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그만 여행을 포기해야 했었다. 모처럼 맘에 드는 선물을 받았다 빼앗기는 것 같은 씁쓸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언젠가 홍콩에 꼭 가봐야겠다고 다짐을 했고, 그렇게 홍콩을 한번 방문하는 데까지 십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오래 아껴둔 만큼 나에게 있어서 홍콩의 첫인상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놀라움이었다. 철저히 동양적이면서도 서양 문화가 물씬 배어났고, 미래적인 느낌의 빽빽한 마천루를 조금만 벗어나도 원시에 가까운 울창한 숲과 너른 바다가 반겨주었다. 철저히 대비가 되는 이런 이미지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홍콩이라는 도시가 생동감있게 살아나고 있었다.
'홍콩에 언제 가면 좋아요?'라는 질문을 인사처럼 받곤 하는데, 한가위를 앞둔 지금부터 크리스마스 시즌까지가 홍콩 여행의 최적기이다. 요즘같이 야외 활동하기 딱 좋은 날씨가 이어지는 홍콩의 가을은 훨씬 풍성해진다. 도심 안에서 숨겨진 보물 같은 거리를 찾아가 걷다가 야외 테라스에 앉아 잠시 쉬면서 차를 마시는 즐거움도 좋다. 도시 외곽으로 나오게 되면 이국적인 풍경 속에 녹아있는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어 좋다.
석판가 (石板街)
센트럴 MTR역에서 하차해서 D2 출구로 나간 후 미드레벨과 소호(South of Hollywood Road) 쪽으로 가다 보면 노점상들이 들어찬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돌계단길, 석판가(石板街)가 보인다. 1857년 홍콩의 첫 총독인 헨리 포틴저(Henry Pottinger)의 이름에서 유래한 포틴저 스트리트(Pottinger Street)가 공식 도로명이다. 19세기 무렵에는 이 길을 경계로 두고 서쪽에는 중국인들이 자리를 잡고 동쪽에는 서양인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한여름엔 더워서 무심히 그냥 지나쳤을 이 길도 가을이 오니 천천히 구경하며 걸을만하다. 중국풍의 각종 기념품부터 가발이나 코스툼을 파는 상점들까지 품목도 가지가지이다. 실제로 팔릴까 싶은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는 가게에도 구경하는 손님들이 제법 몰린다.
싱문 저수지 하이킹 (城門水塘, Shing Mun Reservoir Hike)
춘완(荃灣, Tsuen Wan) MTR역 A1 출구에서 Shiu Wo Street (兆和街)로 나와 82번 버스를 타고 약 20분 정도를 가면 싱문 저수지 입구에 도착한다. 버스정류장에서 보이는 계단을 따라 10분 정도를 오르면 저수지 둘레를 도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는 홍콩의 식수원이자 자연보호구역이어서 많은 새들과 나비들, 야생 원숭이들도 무리 지어 살고 있다. 그리고 풍수 나무를 비롯해 70여 종의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룬다. 특히 이곳은 홍콩의 다른 곳에서도 보기 힘든 신비로움과 몽환적인 느낌이 있어서, 포토그래퍼들이 많이 찾는 곳이고 홍콩 예비부부들의 야외 사진 촬영 장소로도 사랑받는다.
커버 이미지 출처 HK Maga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