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전자상가 둘러보기
홍콩이라는 협소한 지역적 특성상, 이 곳 사람들은 인터넷 온라인 쇼핑보다는 여전히 오프라인 상점에 가는 것을 더 선호한다. 눈으로 둘러보고 물건을 만져본 후 사람 냄새나는 흥정을 통해서 저렴하게 물건을 구입하는데 익숙하다. 사업 수완이 좋기로 유명한 광동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모두들 사고파는데 아주 능통하다. 참 신기하게도 여러 곳을 다니면 다닐수록 더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생긴다는 것이 이렇게 발품을 팔게 하는 이유가 된다.
습도가 100%까지 올라가는 홍콩의 봄과 여름을 대비하여 제습기를 구입하기 위해, 따로 난방시설이 없는 홍콩의 아파트에서 영상 10도까지 떨어지는 겨울 추위 때문에 히터를 장만하기 위해, 동네 쇼핑몰에 입점해 있는 포트리스(Fortress, 豐澤)나 브로드웨이(Broadway, 百老滙)등의 가전제품 유통대리점을 찾아갔을 때도 그랬다. 분명히 같은 제품인데도 가격이 유통대리점마다 조금씩 달랐다. 정말 급하게 필요한 제품이 아니라면 시간적 여유를 두고 천천히 둘러보고 구입하는 것이 이득이다.
각종 휴대폰과 그 액세서리들, 컴퓨터와 프린터를 비롯한 주변기기들, 게임기 또는 카메라나 음향기기 등을 구입하고자 할 때는, 흔히 용산 전자상가와 비교가 되는, 홍콩의 3대 전자상가를 둘러보곤 한다. 삼수이포(深水埗, Sham Shui Po)의 골든 컴퓨터 아케이드(黄金電脳商場, Golden Computer Arcade, 삼수이포 MTR역 D2 출구), 몽콕(旺角, Mong Kok)의 컴퓨터 센터(Computer Centre, 몽콕 MTR역 E2 출구), 그리고 완차이(灣仔, Wan Chai)의 컴퓨터 센터(Computer Centre, 완차이 MTR역 A4 출구)가 그곳들이다.
규모로 봤을 때는 삼수이포 전자상가가 가장 크지만 내부구조가 매우 복잡하다. 낡고 좁은 통로를 비집고 사람들이 들어차면 입구에서부터 이미 체력소모가 시작된다. 물건을 보러 온 건지 사람들을 구경하러 온 건지 분간이 되지 않을 때도 많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지역인 몽콕의 경우도 상점마다 분주하고 품목도 다양하나, 워낙 뜨내기 손님에 익숙한 상인들인지라 단골 삼기가 어렵다.
홍콩 섬에 있는 완차이의 전자상가는 다른 곳에 비하면 규모는 작지만 상점들이 알차게 들어서있다. 취급되는 상품의 품질도 세 곳 중에 완차이가 가장 나은 편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홍콩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싼 지역에 자리잡고 있기에 물건 가격이 다른 전자상가에 비해 조금 더 비쌀 수도 있다.
목요일 늦은 오후에 완차이 전자상가를 찾아갔더니 주말에 비해 훨씬 덜 붐볐다. 이곳의 상점들은 호객행위 대신 대부분 K-pop 뮤직 비디오를 틀어놓고 장사를 한다. 자극적인 음악소리와 함께 걸그룹의 현란한 군무가 나오면 지나가던 구경꾼들의 발걸음이 자동적으로 멈춰진다.
최근에 홍콩에 출시된 아이폰(iPhone) 중 이미 품절되었다고 알려진 아이폰 7 플러스 (iPhone 7 Plus) 제트 블랙(Jet Black)을 판매한다고 적어놓은 가게들도 눈에 띄었다. 이런 가게들은 대게 금전적 여유가 있는 얼리어답터 관광객들에게 프리미엄을 붙여서 파는 곳이다.
이날은 깨진 휴대폰 강화유리를 교체하기 위해 잠시 들러본 것이었는데, 전자상가 내의 전문 수리점 몇 곳을 들러 확인해보니 확실히 애플 스토어보다 훨씬 저렴했다. 그러나 역시 수리비용도 가게마다 조금씩 달랐다. 그중에 젊은 테크니션들이 일하는 프로픽스(Profix)라는 곳에 맡겨보기로 했다. 가격은 다른 수리점에 비해 좀 더 비쌌지만, 기다릴 필요도 없이 필자가 보는 앞에서 능숙하게 바로 교체를 해주었다. 이 가게는 친구들끼리 뜻을 모아 창업을 한 것처럼 보였는데, 각자의 전문성을 무기삼아 새로운 마켓에 도전하는 홍콩 젊은이들의 패기가 느껴져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참고로 필자의 휴대폰을 수리해준 테크니션은 여성분(아래 사진 오른쪽)이었다.
완차이 전자상가를 이용하는 고객으로서 물건을 구입할 때 알아두면 좋은 팁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출입구 가까이에 있는 상점에서는 구입을 서두르지 말고 일단 가격만 확인한다. 상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물건의 가격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둘째, 실제로 상품을 구입할 마음이 들었을 때 가격을 흥정해봄직하다. 물론 신용카드를 받아주지만 현금으로 결제한다고 할 경우 좀 더 할인해주는 곳도 있다. 셋째, 영수증에 품목별로 가격을 적어달라고 하면 보기가 편하다. 손으로 적어주는 영수증을 사용하는 곳이 더러 있어서 품목명과 가격을 꼼꼼히 적어달라고 요구하면 추후에 교환이나 환불할 때도 도움이 된다.
과거 달러 환율이 지금만큼 오르지 않았을 때와 비교해보면, 홍콩에 여행을 와서 전자제품을 구입하는 것 자체가 현재로는 큰 매력이 없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서울의 용산전자상가 혹은 세운상가, 대구의 교동전자상가 등 한때 한국에서 전자상가가 전성기를 누렸던 시절에 그곳을 누볐던 향수가 있다면 홍콩의 전자상가에서 그 아련한 기억을 다시 떠올려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