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나고야 국제 우먼스 마라톤에 선발된 사연
달리기가 재밌다는 사람들의 생각을 아직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스스로를 "러너"라고 부르며 마라톤이나 철인 삼종경기에서 수차례 완주했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금도 마치 영웅담처럼 느껴진다.
사실 나는 올림픽 기간에 웬만한 스포츠의 TV 생중계는 즐기며 보는 편이긴 하지만, 마른 체형의 선수들이 전력을 다해 몇시간째 뛰는 마라톤 종목은 보고있는 그 자체로도 몹시 불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부터 발목이 약해 툭하면 양쪽을 번갈아 삐끗해서 부모님 속 좀 썩였던 내게, 달리기란 고통을 수반하는 일종의 모험이었기 때문이다.
2008년에 나이키가 서울에서 제 1회 휴먼레이스 대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100%의 호기심만을 장착한 채 참가신청을 했던 일이 있었다. 그때는 10km가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겁도 없이 달렸다가 거의 기어들어오듯한 실신 상태로 대회를 마쳤다. 이건 정말 내가 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 그 후 몇 년 동안 이런 대회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홍콩에서도 비슷한 달리기 대회들이 열린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은 불과 3년 전이었다. 직장동료인 니콜이 디즈니랜드에서 열리는 유니세프 자선 달리기 대회에 대한 화제를 꺼내며, 남자 친구와 함께 5km 부문에 출전할 거라고 자랑을 했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5km 정도면 나도 해 볼만 하지 않을까 하는 묘한 경쟁심이 들었다. 그래서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그날 저녁에 바로 대회 등록을 마쳤다. 의욕이 넘쳐 마라톤 신발로 평가가 좋은 아식스 젤 카야노도 장만했다. 이런 내 모습이 매우 어색했지만 꾹 참고 동네 운동장을 달렸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전문 트레이너가 알려주는 달리기 훈련 방법을 찾아 눈과 귀로 자세를 익힌 후 실제 훈련에 적용하는 식으로 조금씩 달리기를 배워나갔다.
남들에겐 겨우 5km였지만, 제대로 달려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내게는 큰 도전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잘 해냈다. 이 대회를 시작으로 일년에 한 번은 달리기 대회에 참가하면서 10km, 15km로 실전 거리를 늘였다. 그리고 올 2016년 여름에는 서울에서 열린 나이키 우먼스 하프 마라톤을 나쁘지 않은 기록으로 완주했다. 기록보다 더 나를 기쁘게 했던 것은 선천적 약점이었던 내 양쪽 발목이, 주변 근육들이 강화되어서인지, 이제는 더 이상 쉽게 다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시나브로 나의 신체도 달리기에 적합하게 변화해 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2.195km라는 거리가 주는 무게감은 꽤나 묵직하다. 마치 거대한 산을 옮기는 기분이랄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평생에 한 번쯤 풀 마라톤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호기있게 해왔었다. 근데 그게 내 예상보다 너무 빨리 다가왔다. 내년 3월 12일 나고야에서 열리는 참가자 2만 명 규모의 국제 우먼스 마라톤에 선발된 것이다. 이 대회는 지난 2013년에 무려 14,554명의 최다 참가자를 기록하며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마라톤을 하는 여성들은 누구나 참가하고 싶어하는 꿈의 레이스건만, 추첨방식으로 참가자를 선정하기 때문에 참가비를 낸다고 해서 다 출전의 기회를 얻는 게 아니었다. 이번에는 약 1.8대 1의 경쟁률로 해외 참가자 3000명의 엔트리가 정해졌다는데, 거기에 내가 들었다는 사실이 대회를 뛰기 전부터 이미 약간의 흥분감을 안겨주었다.
풀 마라톤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눈 앞에 둔 나의 심정은 아직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길로 떠나는 여행자의 두렵고 설레는 마음과 같다. 그 길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제 목표량이 달라졌으니 훈련 방법도 바꿔야할 것이다. 이 대회를 준비해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내게 매우 생소하고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명의 시간과 맞바꾼 소중한 이야기가 될 것은 분명하다. 나중에 누군가가 이것이 그만큼의 값어치가 있는 일이었는가 물어왔을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커버 사진 출처 AB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