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홍콩 GO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엠 Oct 01. 2016

소리 없이 그러나 끝까지

청렴과 안전이 보장된 홍콩이란 도시의 탄생

홍콩 첩보 영화를 좋아한다면 종종 재벌이나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쫓는 수사관이 나오는 장면들을 기억할 것이다. 이들은 독자적인 수사권을 갖춘 부패방지기관인 염정공서(廉政公署, ICAC, Independent Commission Against Corruption) 소속의 수사관들이다.


경찰청과 홍콩의 반부패 수사기관인 염정공서(ICAC)와의 갈등구도로 영화를 시작하는 콜드 워(Cold War, 寒戰)의 한 장면


소위 홍콩 '공무원들의 염라대왕'으로 불리는 염정공서가 홍콩에 세워진 역사적 배경을 보면, 영국의 식민 통치 하에서 일어난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950년대 이후 영국이 점령했을 당시 홍콩은, 겉으로는 급속도의 경제적인 발전을 이룬 부유한 도시이나 총독부 고위 관리자들부터 하급 공무원 그리고 민간에 이르기까지 부정과 부패가 도시 전체를 잠식한 최악의 상태였다. 그 예로 소방서에 뒷돈이나 수고비를 주지 않으면 소방호스를 열어주지도 구조작업도 하지 않았고, 병원에서도 뒷돈 없이는 의사에게 진찰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 부정부패의 최고봉은 경찰과 사법부였는데, 1973년 영국 출신의 홍콩 고위 경찰인 피터 고드버(Peter Godber)가 437만 홍콩 달러를 횡령한 후 홍콩에서의 출국금지를 무시한 채 영국으로 달아났다. 이 금액은 그가 20년 동안 경찰간부로 일하면서 벌어들인 총수입의 여섯 배에 달하는 가치였고, 이 정도면 당시 슈퍼 리치 클럽(Super Rich Club)에 가입할 정도였다.


이에 격노한 홍콩 시민들이 "부패를 척결하고 고드버를 체포하라 (Fight Corruption, Arrest Godber)"라는 슬로건으로 6개월 동안 거리 시위에 나섰다. 이러한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고위공직자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 세워진 기관이 바로 염정공서이다. 이 곳 수사관들은 식민지 하에 놓인 홍콩의 여러 가지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소리 없이 그리고 끝까지' 조사해서 얻은 증인들의 진술 및 증거물들을 바탕으로, 이듬해 영국 본토에서 고드버를 홍콩으로 송환하는데 성공하고 감옥에서 4년 동안 그 죄 값을 치르게 했다.

        


염정공서의 권한은 강력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부패혐의자를 영장 없이 체포해 48시간 동안 구금할 수 있고 가택수색과 출국 금지 및 계좌 추적도 할 수 있다. 재산형성 과정을 설명하지 못하는 부패혐의자의 증식된 재산은 뇌물로 간주해 몰수하고 처벌한다. 한 예로, 재산이 늘어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해 7년형을 선고받은 고위 검사는 형 집행 후 국외로 추방되었다.


내부고발자나 부패행위 신고자의 요청이 있거나 그들의 신변을 보장할 필요가 있을 때는 완전히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서 보호한다. 그리하여 염정공서는 경찰 조직의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고 공직 윤리 기강을 해치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해결하게 되었고, 2007년 자체 조사한 염정공서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신뢰도는 99%까지 올랐다.


2014년 시진핑이 "부정부패 척결"의 의지를 강력하게 천명한 이래 중국 중앙 정부의 부정척결 조사에도 염정공서가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다.


2016년 9월 29일자 JTBC 디지털뉴스룸에 소개된 "가장 성공한 부패방지기관" 염정공서


대중 미디어는 TV 광고 및 드라마 혹은 라디오 드라마 등을 편성해 염정공서 직원이 부패를 단속하는 모습을 홍보하였다. 또 각 학교에서는 유치원 어린이에서부터 대학생 성인들에 이르기까지 부패 방지 및 신고 교육을 통해 청렴과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 사회적 가치인지를 지속적으로 알렸다. 이를 통해 홍콩 사회 전반에 ‘부패의 폐해는 부메랑처럼 결국 모두에게 되돌아온다’는 인식을 고착시켰다.   


홍콩 TVB에서 제작방영된 드라마 "염정행동 ICAC Investigators 2014"



국제투명성기구(TI:Transparency International)의 조사에 따르면,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8위/167개국, 85/100) 다음으로 가장 부정부패가 덜한 나라가 홍콩(18위/167개국, 75/100)이다. 이 결과의 수훈갑으로 염정공서의 존재가 첫 손에 꼽힌다.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반부패 조사기구로도 평가된다. 같은 리스트에 올라온 한국에 대한 랭킹(37위/167개국)과 그 점수(56/100)가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이 결핍되었는지를 잘 알려주려는 듯하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CPI)에 의하면 2015년 홍콩의 청렴도는 75점으로 아시아 2위다.(점수가 100에 가까우면 아주 청렴 Very Clean)






커버 사진 출처 Madisonboom


매거진의 이전글 그대가 홍콩 입맛이 아니라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