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경지에 이른 비계직공(飛階職工)과 그들의 미래
홍콩 빌딩 숲 속의 건축현장에서는 건물 외벽을 가로 세로로 감싸 안은 대나무 구조물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물은 건설 및 시설물 관리를 위해 인부들이 장비와 자재 등을 올려 작업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일종의 발판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건축현장에서는 비계(飛階) 혹은 아시바(あしば)라고 부르고, 영어로는 스캐폴딩(Scaffolding)이라고 한다. 홍콩에서는 "대나무 사다리"라는 의미로 죽붕(竹棚)이라 칭한다.
최첨단의 건축술과 각종 신소재가 동원되는 홍콩의 고층빌딩 건설현장에서 인부들이 이 대나무 위에 올라서서 작업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중국 서커스를 보는 것만큼 아슬아슬하다. 건축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나무 비계로 촘촘히 가려진 모습은 누에고치와도 닮아있다.
어느 날, 필자 사무실의 바로 맞은편 건물에 공사가 있어서 대나무 비계를 쌓아 올리는 모습을 처음부터 유심히 관찰한 적이 있다. 여덟 명의 비계직공들이 대나무에 몸을 맡긴 채 이음새 하나하나를 공들여 나일론 노끈으로 묶고 매듭지으며 그 대나무를 타고 점점 높이 올라가는데, 순식간에 20층 건물 전체를 대나무 격자로 포위했다. 흡사 "스파이더 맨"과 같은 숙련된 비계직공들의 일사불란한 몸동작과 빠른 손놀림을 마냥 감탄하면서 바라보았다. 묵언의 퍼포먼스를 온몸으로 보여준 그들은 예술의 경지에 오른 장인들이었다.
최근 중국에서조차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금지되었기에, 세계적으로 대나무 비계를 실제 건축에 쓰는 곳은 이제 홍콩밖에 없다. 그나마 홍콩에서도 건축주들이 대나무 비계가 너무 구식처럼 보여서 싫다고 하면 조립식 비계와 섞어서 쓴다고 한다.
그렇다면 홍콩에서는 왜 아직까지도 대나무 비계를 쓰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것은 대나무가 가진 여러 가지 장점들 때문이라고 한다. 철에 비해 가볍고 저렴하며 즉석에서 필요한 길이에 맞춰 쉽게 잘라낼 수가 있다. 환경친화적인 자연소재로서 높은 탄력성과 내구성을 겸비하고 있다. 재활용률도 좋아서 비계에 사용되는 대나무는 약 7년간 재사용이 가능하다. 특히 습도가 높고 태풍이 많이 지나가는 홍콩의 기후를 감안할때도 건축 자재로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하지만 인부들이나 비계직공들에게 작업환경이 안전하지 못하다면 아무리 전통적인 공법에 자연친화적인 소재라고 하더라도 지속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홍콩에는 200여 개의 대나무 비계 관련 사업체가 존재하고, 1751명이 대나무 비계직공으로 정식 등록이 되어있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2013년 기사 참조). 과거의 도제식 기술 전수 방식에서 벗어나, 현재는 홍콩의 건조업의회(建造業議會, Construction Industry Council, CIC) 산하의 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3년간의 수련생 과정을 거친 후 면허를 취득하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고용노동부에 해당하는 홍콩 노공처(勞工處, Hong Kong Government’s Labour Department)에서 제시한 대나무 비계에 대한 안전 규정(Code of Practice for Bamboo Scaffolding Safety)도 잘 숙지를 해야 한다.
대나무 비계직공 중에서 숙련공들은 하루에 1,800~2,000 홍콩달러(한화 약 25만 원 정도)를 벌기 때문에 홍콩의 건설업계 종사자들 가운데는 수입이 높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수련생들에게는 면허를 취득하기까지의 진입장벽이 높아서, 덥고 습한 환경의 열악함을 이겨내고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에어컨이 나오는 쇼핑몰이나 식당에서 일하기를 선호하는 홍콩의 젊은 세대들에게 점점 외면받고 있다. 게다가 기존의 숙련된 대나무 비계직공들의 은퇴시기가 빠르게 다가옴에 따라서 홍콩에서 대나무 비계를 보게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앞으로 대나무 비계는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역사 속의 기록으로만으로 남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지켜만 볼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 오늘도 묵묵히 땀 흘려 일하고 있는 홍콩의 건축 현장 속 대나무 비계직공들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하고 싶다.
커버 이미지 출처 reddit.com
동영상 자료 Watch How Bamboo Scaffolding Was Used to Build Hong Kong's Skyscrap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