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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엠 Jan 28. 2017

나는 왜 달리고 있는가

하루 한번 달리는 삶이 가능하게 된 사건

내 기억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노인의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는 한 분이 계신다. 농사를 짓는 시골마을에 사셨던 작은 증조할머니. 서로 사는 곳이 달라 아주 가끔씩 명절에나 찾아뵈었지만 그래도 늘 정정하셨던 할머니께서 낙상을 당하신 후에 한 두 해를 줄곧 앉아서 생활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어린아이들은 시종일관 뛰놀다 넘어져도 심하게 다치진 않지만 노인에게 낙상은 매우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멀리 돌아볼 것도 없이 7년 전 깜깜한 겨울밤에 베이징의 어느 건물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앞으로 슬라이딩하듯이 넘어진 적이 있다. 당시에 두툼한 패딩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양쪽 소매가 모두 찢어질 정도로 심하게 넘어졌다. 혼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앞서 가던 일행이 돌아와 일으켜 세워주었다. 나조차도 너무나 당황해서 어디를 다친 건지 알지 못했는데, 그날 밤부터 오른쪽 어깨에 발생한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팔은 마치 내 신체의 일부가 아닌 듯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겠고 일부러 들어올리려고 하면 너무나 아파서 눈물이 났다. 홍콩도 한국도 아닌 타지였기에 불길한 마음이 들어도 어쩌지 못하다가 한참 후 홍콩에 와서야 병원을 찾아갔다. 내가 한국인인 걸 알아서인지 의사선생이 '삼성병원'을 정확히 지목하며 가보라고 권했다. 상태가 좋지 않은 듯했다. 그렇게 한국의 병원에서 여러 가지 정밀검사 후에 회전근개파열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불현듯 내가 좋아하는 테니스를 못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담당의사에게 앞으로 테니스나 수영 같은 운동을 할 수 있을는지 물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 근육은 곧 지퍼 열리듯 쭉 찢어질텐데 나중에 반드시 수술을 받아야 할 거예요. 앞으로 테니스는커녕 수영도 하면 안 돼요. 여행도 자제하세요!"


일단 비수술적 방법으로 치료받아보기로 하고 홍콩으로 돌아와 주기적으로 치료를 받았다. 오른팔은 6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앞으로 나란히가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 멀쩡하고 굳이 팔을 들어 올리려하지 않으면 불편함을 잠시 잊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점점 위축되었다. 앞으로 평생 이렇게 지내게 되면 어쩌나 하는 초조함에 때때로 몸서리가 쳐졌다. 조금만 몸이 피곤해져도 곧 어깨 쪽에 통증이 밀려오곤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내가 더 힘을 내지 않으면 팔의 근육이 이 상태로 영영 굳어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매번 겁이 날 정도로 고통스러운 물리치료도 더 적극적으로 받고 치료 선생님이 알려준 모든 방법을 동원해 아픈 팔을 단련시켰다. 수영도 자유형은 정말 무리였지만 평영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시도해봤다. 그런 식으로 오른팔의 가동 범위를 조금씩 늘려갔다. 그렇게 꾸준히 재활 운동을 했고 일 년이 지난 후 다치기 전의 80% 정도로 기능을 회복했다.


지금도 사실 넘어지는 게 가장 무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매일매일 달리기를 거르지 않는 이유는 내가 언제까지 현재와 같이 자유롭게 달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그 겨울날 넘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어깨를 다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까지도 내 머리 위로 두 팔을 들어올려 빙빙 돌리는 일이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 가운데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걸 몸소 배웠다. 내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일어나 걸음을 걷고, 말을 하고, 밥을 먹고, 달리는 이 모든 행위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생각에 따라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지만, 아픈 신체가 나의 마음까지 구속할 수 있다는 것도 비로소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미래의 어느 순간에 나는, 달릴 수 있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내 앞으로 뛰어가는 사람들이 부러워 그저 바라만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달릴 수 있는 지금 실컷 달린다고 해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아올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건 확실하다.


젊은이도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나는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이 순간에도 내 육체의 노화는 진행되고 있다. 외모는 꾸미고 가꿔서 원래 나이보다 어느 정도 덜 늙어 보이게 할 수 있다지만, 그럼 심장이나 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얼굴과 몸매에 비해 신체 내부의 장기가 결코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소설가가 그의 작품에서 말했듯이 노화는 인류에게 내려진 벌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몸의 기능이 점점 떨어지는 것에 충격을 받고 비관하거나 우울해하지 않고 순리대로 받아들여야 자신이 좀 더 즐겁게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렇다. 나는 앞으로 더 건강해지고 더 오래 살기 위해서 달린다기보다는 하루하루 나의 행복을 위해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히 보상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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