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초보는 대회에 뭐 신고 갈까
시간은 언제나 내 처지나 사정과는 상관없이 정주행이다. 나고야 마라톤 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있는 지금. 나는 알 수 없는 설레임과 긴장감 속에 있다. 며칠 전 꿈속에서까지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될 정도로 나의 모든 신경이 그쪽으로 향해있다. 몇 달 전 대회 주최측에 신청서를 넣어 당첨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나의 목표는 당연히 내 생애 첫 마라톤 42.195km의 완주였다. 그러나 곧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는 참가를 신청한 거 자체가 괜한 과욕을 부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가끔 들기도 했었다. 다만 할 수 있는 데까지 뛰어보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하며 나 자신을 다독여주었다.
나름 훈련을 한다고 했더니 원래 신고 가려고 마음먹고 있던 운동화 밑창이 너무 많이 낡아버렸다. 특히 왼쪽 신발 몸 바깥쪽 밑창이 좀 더 심하게 닳았다. 작년 하프마라톤 도전 때 큰 맘먹고 하나 장만해서 잘 신었던 데상트 블레이즈 플러스. 이번 마라톤에 가져가려고 나름 아껴 신었는데 이렇게 빨리 닳게 될 줄 몰랐다. 마라톤이 처음이기에 겪는 초보적인 실수가 아닐 수 없다. 다른 사람들에겐 어떨지 몰라도 내게는 러닝 할 때 더없이 좋은 파트너였는데 이렇게 갑작스레 이별하게 되니 무척 아쉬웠다. 물론 평상시 신고 다니는 건 문제가 없겠지만.
나고야의 요즘 기온이 최저 영상 3도에서 최고 8도 정도 된다고 하니, 가벼운 운동복과 운동화만 잘 챙기면 되는 일이었다. 근데 믿고 있던 신발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좀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내가 엘리트 프로 선수도 아닌데 그냥 있는 대로 신고 달릴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보이는 밑창이 이렇게 상했다면 제대로 된 쿠셔닝은 기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교차해서 들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몽콕의 운동화 거리에 가서 러닝화를 새로 장만하게 되었다. 데상트 운동화 이전에 주력해서 신었던 신발이 아식스 젤 카야노 20이었기에 가장 무난한 선택을 하기로 하고 젤 카야노 23을 구매했다. 다만 2014년 당시보다 내 발이 커진 건지 한치수 더 큰 것을 신으니 잘 맞았다. 재밌는 일은 키도 조금 더 자랐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키가 자랄 나이가 아니기에, 내 안에 숨은 키를 발견한 기쁨이 컸다.
새 신발이어서 걸을 때 깔창(insole)이 좀 딱딱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뛰어보니 쿠셔닝 자체는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다만 착지할 때 내 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발 앞꿈치와 뒤꿈치로 동시에 땅을 디디는 주법을 주로 연습해왔는데, 이 신발은 발 뒤꿈치가 살짝 먼저 닿았을 때 좀 더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준비했는데 본 대회에서도 좋은 결과를 가져와 주면 좋겠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 대로 필자는 왼쪽 신발의 몸 바깥쪽 부분 밑창이 더 빨리 닳는 편이다. 뛰면서 발을 땅에 디딜 때 왼발이 외전(Underpronation 또는 Supination)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 걸음마 배울 때부터 그래 온 건지 아님 어릴 때 심하게 삐끗한 것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뛰는지를 잘 모르면서 러닝화를 사서 신었던 때에는, 제법 유명한 브랜드에서 나온 러닝용 신발인데도, 5km가 넘어갈 때면 오른쪽 발목이 아프다던지 무릎 통증이 와서 더 이상 뛸 수 없는 경우가 있었다. 나름의 룰을 적용해 마라톤에 적합한 신발과 가벼운 조깅에 무난한 신발을 구분해서 신는 것이 부상을 줄이는데 효율적이라는 것을 배웠다. 나도 몰랐던 내 몸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는 과정이 마라톤 준비의 첫 단계였다는 사실은 새 신발 하나를 장만하는 순간에서조차 더욱 선명해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