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우먼스 마라톤이 열리는 나고야로 입성
비행기가 센트레아 나고야 중부 공항에 내렸다. 입국장으로 향하는 통로에서 유리창 밖으로 잠시 날씨를 살폈다. 맑고 푸르렀다. 아, 다행이다. 내 입가가 잠시 가벼워졌다.
영상이라도 홍콩보다 기온이 많이 낮은 편이라서 오리털 잠바에 목도리까지 칭칭 감았다. 마라톤 대회날까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은 이제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의무니까. 질서있게 입국심사를 마친후, 나고야 역 근처에 예약해둔 숙소를 찾아가기 위해 메이테츠 라인에 올랐다.
나고야를 다녀오신 분의 브런치에서 보니, 나고야에서 우리나라의 대구나 울산 정도의 도시와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필자에게 나고야의 첫인상은 부여 혹은 공주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고야가 일본 열도의 가운데에 있다는 위치적 입지때문도 그러하지만, 적어도 나고야 시내로 들어가는 초입의 창 밖 풍경은 그만큼 고즈넉하고 조용하였다.
열차가 나고야 역으로 들어서자마자 내리고 타는 인파로 뒤섞이긴 했지만, 홍콩을 겪어본 이에게는 이마저도 다소 여유로워 보였다. 혼잡을 피해 역 건물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제법 불어와 겉옷을 단단히 여민 후, 역에서 십여 분 거리에 있다는 숙소를 향해 부지런히 걸어갔다.
Hotels.com에서 미리 봐 둔 사진과 꼭 닮은 호텔 입구가 보이자마자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예약할때 이미 방 값을 다 지불했기 때문에 특이 사항은 없었다. 프런트 직원이 상냥하게 페이셜 마스크 팩을 비롯한 미용 제품(샘플) 한꾸러미를 안겨주기에 건네받았더니, 또 입욕제와 샤워제품을 잔뜩 내놓으며 필요한만큼 더 가져가라고 한다. 호텔에서 체크인할 때 어메니티를 이렇게 추가로 아낌없이 내어주는 건 처음 겪는 일이어서 잠시 망설이자, 종류별로 챙길수 있도록 직원이 도와주었다. 유쾌하게 받아들고 방으로 올라왔다.
예상한대로 부족함이 없는 깔끔한 비즈니스 호텔 방이었다. 멀리 기차들이 지나다니는 뷰가 바라보이는 위치였다. 일단 짐만 내려둔채 간단히 먹을 것을 찾아나서기 위해 JR 신칸센역 북문 근처 지하쇼핑몰 Esca로 갔다.
쇼핑몰 가이드북 표지에 나온 음식 사진을 먼저 유심히 살펴봤다. 그 중 야마모토야혼텐(山本屋本店)의 미소 니코미 우동이 맛있어 보이기에 그리로 갔다. 저녁을 먹기엔 다소 어중간한 시간인데도 식당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프로모션으로 맥주 한잔과 미소 니코미 우동을 한세트로 묶은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주문이 들어가자마자 일본식 피클이 제공되었다. 식당 종업원이 피클은 양껏 더 먹을 수 있으니 얘기하라며 친절히 알려주었다. 아까 호텔에서도 퍼줌을 경험했는데. 왠지 여긴 내가 아는 일본이 아닌거 같았다.
우리가 집에서 종종 라면을 냄비 뚜껑에 덜어먹는 것처럼, 필자 주변에서 식사하고 있는 대부분의 다른 손님들은 토기 뚜껑에다 우동국수를 덜어먹고 있었다. 따로 앞접시를 쓰지않고 먹는 것이 이 우동을 대하는 방식인가 싶어 그대로 따랐다. 잔뜩 닳아오른 토기 안에서 조려진 뜨끈하고 진한 된장 국물맛에는 소고기 맛이 배어있었다. 거기에 날계란이 동동 떠 있었는데 살짝 풀어서 먹으니 맛이 더 부드러웠다. 굵직한 국수 면발은 아주 쫀득한 수제비를 먹는 식감이 났다.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나고야/도카이 지역의 음식 문화에 대해 조금 공부해보았다. 나고야 사람들은 레드 미소(Akamiso, 赤味噌)를 사용한 요리를 좋아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도쿄 사람들이 '나고야에서는 아무 음식에나 다 미소된장을 넣는다'고 핀잔을 줄 정도라고. 왜 도카이 지방의 현지 사람들에게 유독 진하게 발효된 미소된장이 사랑받는지 무척 궁금해졌다.
나고야 근교에는 지금도 에도시대부터 같은 자리에서 그대로 전통방식의 미소된장을 만드는 공장이 있다. 여기서 생산되는 미소된장은 옛지명을 따라 핫초미소(八丁味噌)라고 부르는데, 무료 견학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로 일본 내에서도 유명하다고 한다. 사진을 보니 더 흥미롭긴한데, 아쉽지만 그 곳 방문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