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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엠 Mar 09. 2017

나, 마라톤, 그리고 나고야메시

멈출 수 없는 달리기 본능

창문 커튼을 열어젖히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방안 가득 들어오는 강렬한 아침 햇살. 겨우 실눈을 뜨고서야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와, 이 날씨가 이번 일요일 마라톤 대회날까지 쭉 이어진다면 정말 축복이겠다. 이미 햇살 속에는 봄이 한껏 녹아있는 것 같다.


나고야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식사로 호텔 조식부페를 골랐다. 광고지에 보니 일본 가정식 메뉴와 더불어 나고야메시(名古屋めし, 나고야 토속음식)-나고야식 레드 미소를 넣은 소스를 곁들여 먹는 돈까츠며 소곱창볶음(どて煮, 도테니), 그리고 장어덮밥(ひつまぶし, 히츠마부시)등등-가 아침식사로 준비된단다. 물론 컨티넨탈 스타일도 갖춰져 있다. 아침부터 과식이 우려되어 부담이 되긴 했으나 나고야에 오면 꼭 먹어보고싶었던 음식들이 다 모여있으니 유혹을 피하기가 어려웠다.



잘 차려진 음식을 보자 마구 밀려오는 허기. 욕심을 일단 내려놓고 종류대로 조금씩 접시에 담아서 맛을 본 후 더 먹는 것으로 하였다. 비즈니스 호텔이어서인지 이미 출근 준비로 양복까지 잘 차려입은 신사 숙녀분들이 마치 도서실에서 탐독하듯이 조용하게 각자 자기 앞에 놓여진 음식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대화는 커녕 그릇소리조차 내지않는 이 분위기가 너무 어색한 나머지 필자 역시도 무의식적으로 먹는 속도를 줄이게 되었다. 깔끔하게 조리된 음식들로 든든하게 식사를 잘 마쳤다.


소화를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현지 적응겸 간단한 조깅을 위해 바깥으로 나왔다. 햇살은 눈부신데 응달에 가면 역시 춥다. 볕든 길을 따라 천천히 달려보았다.


마라톤 일주일 전에는 어떤 준비를 해두면 좋을지 인터넷으로 알아봤는데, 이번주는 훈련을 해도 사실상 대회에 아무 도움이 안된다고 한다. 마라톤은 벼락치기가 통하지 않는가보다. 오히려 푹 쉬어주고 탄수화물 섭취량을 조금 늘려서 에너지원을 비축하고 마음의 안정을 취하라고 한다. 마라톤 이틀 전에나 몸이 풀리도록 가벼운 조깅을 해주면 대회날 질주본능이 되살아날 거라고도 한다. 이것이 모든 마라토너들을 위한 조언인지는 모르겠으나, 실은 나도 대회가 가까워 올수록 왠지 너무 무리해서 운동하고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날씨에 이렇게 멋진 길이 눈 앞에 있으니 자꾸 더 멀리 가고싶다. 오늘은 조금만 달리고 아껴뒀다 진짜 마라톤에서 신나게 뛰어야지.


조깅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유난히 손님으로 붐비는 식당을 하나 눈여겨보았다. 면따로 국물따로 나오는 츠게멘 집인데,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사원증을 목에 건 직장인 남성들이 주를 이루었다.


츠케멘 전문점 마루와. 가게안 대기석이 다 차니 밖에서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


마루와(丸和)라는 이 라멘집은 나고야식 레드 미소 베이스 국물에 찍어먹는 츠게멘이 간판메뉴였다. 돌솥안에서 계속 끓고있는 된장국은 어제 먹은 우동 국물과도 다소 흡사했는데, 숙주나물과 차슈가 국물 속에 들어있다는 점이 조금 달랐다. 라멘 위에도 고명으로 차슈와 김가루, 그리고 달걀반숙이 얹혀나온다. 면을 레귤러(200g)로 주문했는데도 양이 아주 많았다. 필자 옆에 앉은 청년은 라멘을 다 먹은 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가게 한쪽에 있는 밥솥에서 밥을 퍼와서 남은 된장 국물과 식사를 했다. 반찬으로 일본식 피클도 무료로 제공되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특별한 서비스가 있기에 식사량 많은 남자분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는건 아닐런지 추측해봤다.



고명과 함께 정갈하게 담긴 라멘과 돌솥에서 아직도 팔팔 끓고있는 된장국물


나고야는 일본의 어느 도시보다 카페의 분포가 높다. 아침식사 대용으로 단팥잼을 바른 간단한 토스트와 커피 세트 메뉴가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한다. 카페가 워낙 많아 경쟁이 되다보니 어느 카페에서는 하루 종일 아침 식사 메뉴를 커피 값 정도로 제공한다고 광고하고 있었다.


나고야의 대표적 카페인 코메다 코-히(コメダ珈琲)에서의 아침 서비스는 오전 11시까지. 음료 주문시 메뉴 A에서 C 중 하나 무료제공.


원래는 모던하고 너른 공간이 있는 카페를 찾아가서 일도 하고 밀린 독서도 하면서 지긋이 여유를 부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곳 현지 카페들 분위기는 생각보다 좀 더 고전적이고 옛 다방스러워 보였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경양식 집-커피와 함께 여러가지 서양식 단품 메뉴를 취급하던-이라고 불리우던 식당의 형태와 닮은 것 같았다. 어쨌거나 연령층이 다양한 손님들로 바쁘게 붐볐다. 카페오레 한 잔을 주문하니 꽃그림이 그려진 트레이를 얌전히 받쳐들고 서빙을 해준다. 초콜렛 한 알도 앙증맞게 따라나왔다. 이런 감성이라면 스타벅스와 같은 글로벌 프랜차이즈는 나고야에서 발을 붙이기 어렵겠다.



저녁시간이 가까워오자 어제 갔던 지하쇼핑몰인 Esca에 사람들이 엄청 줄섰던 그 집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출출하진 않지만, 조금이라도 일찍 가야 기다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거 같아 서둘렀다.



미소 카츠로 유명한 야바톤(矢場とん) 앞에는 이미 사람들이 가게 한쪽에 줄을 늘어서서 점원이 나눠주는 메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메뉴를 보니 크게는 로스(등심)와 히레(안심)로 고기 부위가 나눠져 있었고, 소스의 종류와 분량 또 음식을 내는 방법에 따라 가격을 분류했다.


필자 일행은 로스 미소 카츠 세트와 와라지 돈가츠(미소타레와 돈가츠 소스의 두가지 맛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메뉴)를 시켰다. 상당한 양이어서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미소 카츠 맛이 정말 좋았기에 괜한 걱정이었다. 고구마를 먹여 키운 품질 좋은 흑돼지고기를 재료로 쓴다더니 육질이 아주 부드러웠다. 나고야 음식을 소개하는 매체에서 야바톤 미소 카츠가 가장 먼저 소개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레드 미소된장 소스의 진하고 달큰한 맛이 돈가츠와도 궁합이 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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