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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엠 Mar 13. 2017

2017 나고야 우먼스 마라톤 완주!

마라톤도 한 걸음부터

가슴 떨리는 내 생애 첫 마라톤 도전이었다. 시종일관 피니쉬 라인에서 완주의 기쁨에 포효하는 내 모습만을 그리며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해냈다!


완주자에게만 주어지는 기념품과 목걸이를 획득했다!


나고야 우먼스 마라톤은 여자들만 참가할 수 있는 풀 마라톤 중에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하는 것으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약 2만명의 여성들이 동시에 달린다고 상상해보라. 얼마나 활기있고 싱그러운가. 컷 오프 타임이 무려 7시간이고 평이한 코스 구성으로 마라톤에 입문하는 초보 러너들에게 가장 관대한 대회라고 볼 수 있다. 이 대회를 나의 첫 대회로 고른 것은 결과적으로도 매우 잘 한 일이었다.


2017년 대회는 총 여성 참가자가 19,857명으로 작년보다 250명 늘어나 기네스북의 최다참가인원 세계기록을 스스로 갱신하였다.


마라톤 완주를 자신의 버킷리스트에 넣어둔 채 언젠가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여성이 있다면, 나는 내년 나고야 우먼스 마라톤 2018에 도전하라고 감히 추천하고싶다.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아래 필자가 스케치한 마라톤 전날과 당일의 이모저모를 보고 판단해주시길.



마라톤 전날인 지난 3월 11일, 대회 번호표를 받으러 나고야 돔으로 가기위해 지하철을 타고 나고야 돔 마에 야다(Nagoya Dome-mae Yada)역에서 내렸다. 외국인 등록자들을 위해 따로 히가시 스포츠 센터에 장소를 마련해주었는데, 이번 풀 마라톤의 경우 해외참가인원은 3천명이었다. 핑크색 유니폼을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손빠르게 외국인 참가자들을 응대하고 있어서 대기시간도 매우 짧았고, 무엇보다 친절해서 마음이 편했다. 외국인 참가자라고 해도 일본 근처의 국가에서 온 아시아 여성들이 대부분이었고, 특히 대만에서 단체로 온 듯한 팀들이 눈에 띄었다.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번호표 배급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번호표와 짐을 맡길때 쓸 비닐팩, 간단한 증정품, 그리고 대회일정표 등이 담긴 가방을 받아들고 마라톤 엑스포가 열리는 나고야 돔으로 가봤다. 이 마라톤의 주 후원사인 메나드(Menard)라는 일본 화장품 업체와 나이키 재팬이 가장 큰 부스를 차지했다. 그 외에는 의약품과 다이어트 식품들 그리고 나고야 특산품이 소개되고 있었다. 마라톤 엑스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마라톤 전문 용품들은 찾아보기 어려워서 아쉬웠다.



나고야 역 근처에서 사카에 역 앞으로 숙소를 옮겨온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대회 당일의 아침시간을 여유있게 활용할 수 있었고 나고야 돔으로 가는 메이조 라인(Meijo Line) 순환선을 타는 일도 훨씬 수월했다.


사카에의 랜드 마크인 선샤인 사카에 대관람차 'Sky-boat'


대회날 아침식사는 미리 사다놓은 바나나와 빵 그리고 요거트로 간단히 해결했다. 달리기 세시간 전에는 식사를 해야하기에 금방 일어나 식욕이 없었지만 꾸역꾸역 챙겨먹었다. 숙소를 나서기 전에 꼭 챙겨야할 것들-특히 번호표와 비닐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나고야 돔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참가자들이 들뜬 모습으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입장했다. 방송사에서도 나와 대회직전의 아침 풍경을 촬영하고 있었다. 이날 아침 최저기온이 영상 4도였는데도, 겉옷을 벗어 짐을 맡기고 나니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추웠다. 보통 마라톤 대회날 가장 붐비는 곳은 간이 화장실 앞. 여기에도 자원봉사자들이 여러명 배치되어 있어 혼란을 피할 수 있었다. 숙련된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대회의 모든 순서가 지연없이 진행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엘리트 선수들이 먼저 달려나가고 일반 참가자들이 그 뒤를 이었다. 이미지 출처: 나고야 우먼스 마라톤 공식 페이스북


추위로 인해 다소 길게 느껴졌던 대기 시간이 화장실을 두 번 다녀오자 어느덧 다 지나갔다. 행사측 무대 위에서 전문 트레이너들이 지도하는 대로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워밍업을 한 후, 엘리트 선수들을 선발로 해서 여자마라톤이 시작되었다. 내가 속한 H그룹은 알파벳 순서대로 앞 그룹들을 먼저 보낸 후에 출발했다. 신청 당시 내 하프 기록을 적어냈는데, 아마도 그 기록에 맞춰 출발하는 그룹이 만들어진 걸로 예상된다. 군악대의 멋진 행진곡 연주와 함께 응원하는 시민들의 함성에 맞춰 한발 한발 내딛었다.



거리의 응원을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생겼다. 이날을 위해 모두들 어찌나 단단히 준비를 했던지 정말 대단했다. 학교에서 나온 듯한 여학생 치어리더 팀들을 비롯해 유치원생 어린이들의 합창, 힘차게 북을 치는 사람들, 친히 준비해온 초콜렛이나 콜라를 러너들에게 나눠주는 아주머니 아저씨들, 힘내라고 앰프에 마이크까지 준비하여 노래를 부르는 여성들, 판다 복장으로 웃음을 선사한 중년 신사들. 그리고 피크닉을 나온 듯 길에 아예 돗자리를 깔고 앉아 관전하듯 편하게 도시락을 들며 응원하는 단란한 가족들까지. 평소엔 조용하던 사람들이 때를 만난 듯 아주 신이 났다. 그동안 그 열정을 어떻게 숨겨왔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씩 차곡차곡 쌓여서 마라톤은 어느새 중반에 이르렀고, 이제부터의 내 모든 발디딤은 내 마라톤 역사의 새로운 기록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프는 작년에 2016 서울 나이키 우먼스 하프 마라톤에서 한번 뛰어본 적이 있는데, 이번 나고야 코스와 비교하자면 나고야가 상대적으로 업다운 힐이 없어서 훨씬 수월했다. 낮 최고 기온이 영상 14도에 바람도 간간히 불어와서 땀이 조금씩 나더라도 금방 말라버렸다. 여기서 하프를 뛴 기분은 서울에서 거의 15km를 뛴 것처럼 가뿐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각오보다는 달리는 순간 순간을 즐기겠다는 생각이 솔직히 더 컸다.


하지만 26km가 지날때부터는 체력의 급고갈이 느껴졌다. 아침을 이른 시간에 먹었으니 이미 소화가 다 되었고, 스포츠 음료와 물은 보급대에서 지속적으로 보충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에너지를 줄만한 식품이 필요했다. 다른 러너들은 에너지 젤을 챙겨와서 각자 필요할 때마다 꺼내먹거나, 같은 마라톤 클럽에서 나온 동료들이 중간 중간 길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음식을 챙겨주는 것 같았다. 나는 이곳 마라톤 엑스포에서 구할 수 있을 줄 알고 에너지 젤 등을 가져오지 않았다. 평소 장거리 훈련때도 에너지 젤을 따로 먹지 않았기에, 대회때 먹으면 더 좋을지 어떨지를 사실 잘 몰라서 그랬던 것도 있다.


빵이나 바나나 그리고 나고야 현지 특산 식품들은 27km가 지난 후부터 보급이 되었다. 그러나 배가 고픈 나머지 너무 급하게 많이 먹은 탓인지 위가 더부룩한 상태로 달리게 되었다. 힘은 나는데 뛸 수가 없었다. 그래서 33km이후부터는 뛰면서 음식을 먹는 것을 자제하고 오직 스포츠 음료와 물만 마셨다. 다음에 또 참가할 기회가 생긴다면 스포츠 젤을 꼭 미리 준비해올 생각이다.


나고야 돔 안에 설치된 피니쉬 라인 안으로 참가자들이 속속들이 들어오는 모습


이번 마라톤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구간을 꼽는다면 39km 지점이었다. 이제 거의 다 온거 같은데 종착지인 나고야 돔이 도통 보이지가 않고 1km 구간의 사이가 늘어진 기분마저 들었다. 그 순간 길거리 응원단 중에 누군가 "이제 겨우 마지막 3km 남았잖아요. 힘을 내요!"라고 외쳤다. 새 신발을 신고 뛴다는 부담감도 며칠전 현지 적응 겸 조깅하다 갑자기 온 왼쪽 무릎의 통증도 순간 다 잊었다.


필자도 이렇게 멋진 포즈로 피니쉬 라인을 통과하고 싶었다. ㅠㅠ 이미지 출처 womens-marathon.nagoya


그렇게 나고야 돔 안에 설치된 피니쉬 라인으로 빨려들어가듯 골인을 했다. 멋지게 포효하고 싶었는데 역시 초보인지라 얼떨떨하게 들어와버렸다. 누군가는 눈물도 흘린다던데 나는 입이 너무 말라서 마실 것만 찾고 있었다.



그리고 전리품을 획득하듯 스포츠 타월과 민소매 탑 그리고 티파니 목걸이 등의 완주 기념품들을 받아들었다. 돔 경기장 밖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마지막까지 열심히 경기를 마친 러너들을 위해 간단한 간식거리와 스포츠 음료 및 메나드 화장품 샘플 등을 챙겨주었다.


티파니 완주 기념 목걸이는 턱시도를 멋지게 차려입은 남성들이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정성스럽게 전달해준다.


신기하게도 이번 마라톤 대회에서는 경기 중에 걷는 사람들이 비교적 적었고 중도 포기자를 직접 목격한 일도 없었다. 역시 풀 마라톤이니만큼 최소한 하프정도는 마치고 각자 나름대로 준비 훈련을 해왔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허나 누군가가 먼저 쉽게 포기했다면 내게도 어떤 유혹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길에 잠깐 잠깐 멈춰서서 경직이 오는 근육을 풀고 있으면 다가와서 스트레칭을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고, 자기가 가져온 파스를 아낌없이 다른 러너에게 뿌려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뛰어본 사람만이 함께 뛰고 있는 사람의 고충을 알아주는 법. 그들은 혼자 잘 뛰어서 좋은 기록을 세우는 것보다 함께 잘 마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이번 마라톤에서 본 가장 오래 기억될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커버 이미지 출처: 나고야 우먼스 마라톤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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