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에 열릴 서울마라톤을 위해 준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자, 남편이 페이스메이커로 같이 훈련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남산둘레길 7.5km를 달리러 갔다.
트래일 러닝이 주력 종목인 남편에게 코스 선택권을 넘긴게 내 패착이었다는 건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곧 알게 되었다. 포장된 길과 산길이 뒤섞인 코스는 평지 달리기를 좋아하는 평소 내 취향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가파른 산길 업힐이나 다운힐 중간중간에는 엉거주춤하게 걸어야 했기에. 정확한 기록 측정이 어려웠고. 거리에 비해 총 운동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고. 나들이 나온 사람들도 많았고. 아무튼 여러 가지로 내 맘에 들지 않았다.
살짝 짜증이 난 상태에서 그렇게 남산둘레길을 완주했다. 투덜대는 나를 달래주려고 남편은 서둘러 주변 맛집을 탐색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베트남 쌀국수를 사줬다. 어찌나 맛있던지. 평소 너무 급하게 먹어서 올 해부턴 20분에 걸쳐 천천히 식사하기로 한 새해 계획 따윈 전혀 떠오르지도 않았다.
다 먹고 나니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대화 도중에 남편은 남편대로 내 페이스에 맞추느라 정작 본인에겐 성이 찰 정도의 운동 분량이 안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근처에 사는 친구를 불러내어 자전거로 N타워까지 다녀오겠단다. 그때서야 비로소 남편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고,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코로나 펜데믹 상황속에 열리는 이번 대회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언택트 마라톤이어서. 3월 14일 참가신청 후 각자 자신이 뛰고 싶은 코스를 정해서 달리면 되는데. 어떤 맵을 그려야 자신 있게 완주할 수 있을지 정하는 것도 제법 흥미진진하다. 아직 시간이 한 달가량 남았으니. 일단 남산둘레길은 내 위시리스트 제일 마지막에 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