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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엠 Mar 17. 2017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모두의 고양이

7년간의 묘연


홍콩에 이사 온 지 얼마 안되어 아파트 주차장 담벼락에 나란히 앉아 봄볕을 쬐고있던 어린 고양이 두마리를 만났다. 하나는 노란 고양이였고, 다른 하나는 좀 더 체구가 작은 얼룩 고양이었다.


고양이에 대한 호기심만 있을 뿐이지 어떻게 해야 친해질 수 있을지 모르다가, 우연히 고양이 인사법을 배워서 지나다닐 때마다 두 눈을 깜빡거리며 아이들에게 아는 척을 했다.


야옹이가 젤 좋아하는 자리


얼마 후부터는 어디에 갔는지 얼룩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이 노란 고양이를 "야옹이"라고 불렀다. 아파트 이웃들은 "미야오"라고 불렀고. 언제 홀연히 사라질지 모르는 길고양이에게 누구도 이름을 붙여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 역시도 내게 그럴 권리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눈에 반해버린 고운 자태의 야옹이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내가 천천히 다가가 "안녕!"이라고 말하며 고양이 눈인사를 하자 야옹이가 눈을 살짝 감았다 뜨면서 여리고 예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담장 아래로 가볍게 폴짝 뛰어내려와 내 종아리에 자신의 머리를 부비더니, 숫자 8을 그리듯 내 다리 사이를 맴돌았다. 고양이와 한번도 접촉해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순간 '앗 뭐하는 거지?!' 싶었다. 하지만 그 부드러운 감촉과 따스한 감동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살짝 손을 내밀어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그 날이 바로 우리의 1일이었다.


애교쟁이 야옹이


수퍼마켓에서 이전에는 전혀 들어가볼 일 없었던 고양이 맘마 코너를 기웃거리면서도, 아이의 예쁜 모습이 떠올라 자꾸 웃음이 났다. 맛좋은 간식도 사주고 싶고 부드러운 수프도 먹여주고 싶었다. 아파트 경비실 옆 화단에 야옹이를 위한 작은 밥상을 차렸다. 다행히 아파트 관리실에서도 경비원들도 야옹이에게 호의적이었다.


나른한 주말 오후에는 그곳에서 책을 함께 읽었고 별이 뜨는 밤이면 그곳에서 우리는 함께 노래도 불렀다. 야옹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검은 고양이 네로"와 뮤지컬 캣츠에 나오는 "메모리"인데, 특히 "메모리"를 불러주면 뭔가를 골똘이 생각하며 꼬리를 좌로 우로 천천히 움직여서 박자를 맞춰줬다.


야옹이에게 간식을 주는 동네 청년들

야옹이에게 환심을 사고싶은 사람은 비단 나 뿐이 아니었다. 동네 아이들은 물론이고 청년들도 어르신들도 야옹이와 친해지고 싶어했다. 저녁밥을 먹고 바람쐬러 나와 야옹이랑 둘이 화단에 앉아있는데, 한 중년 남자분이 아이들과 다가왔다. 내게 야옹이의 주인인가를 물었다. 나는 야옹이에겐 친구가 있을뿐 주인은 없다고 했다. 그러자 얼굴에 화색이 도는 모습으로 자기도 야옹이랑 친해지고 싶은데 도통 곁을 내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야옹이가 좋아하는 종류의 맘마에 대해 알려주었더니 고맙다고 했다.


화단에서 단잠을 자고있는 야옹이


그 후로 야옹이의 밥그릇은 누군가에 의해서 항상 채워져 있다. 이제 우리 동네에서 야옹이는 누구의 고양이가 아닌 모두의 고양이가 된 것이다. 그렇게 어디서도 눈치를 보지 않고 평화롭게 단잠을 즐기는 야옹이의 모습을 보는 것이 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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