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권을 비롯한 지식재산권은 철저한 속지주의를 따릅니다. 한국에서 아무리 등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외국에 특허권이 획득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어느 나라든 외국에서 아무리 등록이 되어 있더라도 그 효력을 절대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며 반드시 자국 특허청의 심사를 거쳐 등록이 되어야 합니다.
자국 산업발전을 보호하는 것이 특허제도의 제1 법목적이며, 특허권자나 발명자를 보호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특허는 뿌리부터 정책적인 판단의 결과물입니다. 창작 자체를 보호하여 인류의 문화 발전을 꿈꾸는 저작권법과는 다릅니다.
다만 심사와 등록은 몰라도 신청 절차 정도는 줄여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하나의 출원서로 조약가입국 전체에 신청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PCT국제특허출원(PCT : Patent Cooperation Treaty)입니다.
PCT국제특허출원은 영문으로 된 하나의 신청서를 국제사무국(WIPO; world intellectural property office)에 제출하면 PCT조약에 가입한 국가 전부 (현재 195개국)에 신청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제도입니다.
주의할점이 있습니다.
첫째, 신청한 것이지 등록한 것이 아닙니다. PCT국제특허’출원’은 신청에 불과합니다.
둘째, 신청만 해놓은 것이므로 각 국 특허청에서 각각 심사를 받은 후 등록받아야합니다.
PCT조약은 국제특허출원서를 제출하면, 우선 조약당사국 전체에서 신청한 것으로 인정해주고, 이후 정말 특허등록이 필요한 국가에 정해진 기간 내에 자국어로의 명세서 번역문을 제출하면, 그때 심사를 신청한 것으로 보고 심사를 거쳐 등록하는 방식입니다.
이 번역문을 제출하는 절차를 ‘국내단계진입’이라고 부릅니다.
국제특허출원 -> 번역문제출(국내단계진입) -> 각 국 심사 후 등록
예를 들어, 국제특허출원 후 미국, 일본, 중국, 유럽에만 번역문을 제출하면 해당 국가에서만 심사를 착수하고 이후 등록여부를 결정합니다. 나머지 국내단계진입하지 않은 국가에서는 신청을 취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즉, 국제특허출원보다는 번역문제출이 실질적인 해당 국가에서의 신청 절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은 그때 번역문만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타 국 심사결과라던지 추가 보정서라던지 발명자 선언서라던지 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함께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셋째, 국제특허출원은 필수가 아니며 필요한 경우 외국에 바로 특허신청할 수 있습니다.
넷째, 한국 특허가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원한다면 한국을 포함하여 바로 국제특허출원을 할 수도 있고, 국내나 국제특허신청 없이 바로 미국 등 외국에서만 특허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삼성전자는 기술마다 등록할 국가와 전략을 달리하는데, A급 특허는 미국 우선으로 특허등록을 한다고 합니다. 상당수 특허를 한국에는 아예 출원하지도 않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특허등록을 받아봐야 큰 쓸모가 없기 때문이죠. 경쟁회사들이 거의 대부분 미국과 대만에 있으므로 그런 전략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국제특허출원을 해도 국내단계진입이라는 절차를 또 밟아야하며 그것이 실질적인 외국특허 신청절차라면 국제특허출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국제단계에서 검색결과보고를 준다던가 그것을 보고 보정 기회를 준다던가 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지만 더 정확하게는, 국제특허출원은 ‘시간유예’에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신청인은 국제특허출원을 우선 해두고 실제로 특허등록을 받을 국가를 천천히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시간을 두고 국내단계에 진입하므로 꼭 필요한 국가에만 적절한 비용으로 특허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한번에 여러 국가에 국내단계진입할 필요도 없으며 정해진 기간(30개월 또는 31개월) 내에 순차적으로 진입하여 세계 산업 경향을 보면서 어느 국가에 특허를 확보할지를 결정하고 비용부담을 분산시킬 수도 있습니다.
만약 어느 국가에서 특허를 확보할 것인지가 명확하고 반드시 특허신청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그래서 시간을 벌 이유가 전혀 없다면, 굳이 국제특허출원이라는 절차를 추가로 밟을 필요 없이 바로 외국에 특허신청을 하는 것이 낫습니다.
다만,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삼성전자와 같이 바로 미국에 출원해서 거기서부터 특허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나가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특허획득 비용이 저렴하고 기술 수준이 높은 한국에 먼저 출원해서 심사를 받고 그 등록가능한 명세서를 가지고 해외에 출원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관건은 PCT국제특허출원을 해둬서 시간을 벌 것이냐, 아니면 우선권주장을 수반한 해외출원을 바로 할 것이냐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중소기업이 표준으로 삼을만한 국내외 특허등록 플로우를 정리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