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혼자 떠난 겨울 제주도 여행

1. 제주행 비행기에 오르다.

by kyoungha


오늘도 어김없이 습관처럼 하루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순간

숨이 가빠오면서 명치끝에서 조여지는 답답함을 느꼈다, 산소가 부족한 우주비행사가 느끼는 기분이 이런걸까? 무언가 가슴팍을 꽉 누르고 있어 숨이 쉬어지지 않고, 주변의 모든 것들이 찢어지는 소음으로 다가오는 그 순간, 한 줌의 산소가 필요해 나는 결국 차에서 내려 한참을 주저앉아 있었다.


갑자기 왜 그러지?

아니, 사실 갑자기가 아니다. 내 몸에서 보내는 SOS 신호다. 요 며칠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걸 억지로 누르고 눌러 간신히 참고 있었는데 드디어 과부하가 걸려 폭발한 것이다.


나는 잠시 멍하니 앉아있다가 핸드폰을 열어

제주행 비행기 시간표를 뒤졌다. 다행히 오늘밤 출발하는게 아직 남아있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서 김포공항에 도착해 마지막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 공항에 도착한 후 호텔앱을 통해 호텔을 예약하고 택시를 타고 호텔에 도착해 키를 받아들고 호텔방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옷도 벗지 않은채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깊은 심연에 몸이 빨려들어가듯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






제주 라마다플라자 호텔 객실에서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제주도였다.

내가 무슨일을 저지른거지?

집에 돌아가다가 갑자기 제주행이라니, 그것도 혼자서 김포공항에서 표를 끊고 제주도 호텔까지, 시체처럼 잠들었다가 눈을 뜬 지금까지 채 12시간도 걸리지 않은 짧은 시간동안에 난 서울에서 제주도에 와 있었다


한참동안 그대로 멍하니, 눈만 깜박거린채 누워 있었다. 나에게 이런 용기가 있다니,..

이건 분명 용기다, 한번쯤 혼자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건 막연한 상상일뿐 혼자 밥 한번, 영화 한번. 하다못해 혼자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 마셔본 적이 없는 나였다.


침대에 누운 나는 눈만 껌벅거리며 사태를 파악해야했다. 그리고 조금씩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다가 조심스레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우습다. 분명 이방에 나 혼자일텐데 누구 눈치를 보는거지?



한겨울 제주도 바다, 바람이 많이 분다.


일어나 커튼을 젖히자 파란 바다가 눈에 확 들어왔다.제주도 바다다. 바람이 많이 부는지 하얀 물보라가 쉼없이 밀려들어와 부스러져 갔다. 확실히 바다는 파도가 쳐야 그 멋이 더한다. 창문을 여니 차가운 겨울 바닷바람이 방어할 틈없이 옷속으로 스며든다. 찬기가 확 느껴진다. 순간 추위에 몸이 바르르 떨렸지만 기분은 좋아진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고, 철썩거리는 파도소리와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 하늘과 맟닿은 수평선까지 모두가 하나가 되어 내 앞에 펼쳐졌다. 순간 나는 내가 왜 여기에 서있는지를 까먹었다. 왜 이시간에 혼자 여기서 바다를 보고 있는지 까먹고 마냥 행복해졌다. 나의 제주도 여행은 그렇게 무모하게 계획없이 현실을 도피하는 심정으로 시작되었다.


정신을 차리자 우선 가방을 뒤져서 핸드폰부터 찾았다. 꺼져있는 핸드폰을 보조밧데리에 연결하고, 지갑을 열어 내가 가진 자산부터 확인했다. 현금으로 8만원정도, 그리고 다행히 카드가 있다.


그리고 걱정하실 부모님께 제일 먼저 전화드렸다

"엄마 갑자가 일이 잡혀서요, 여기 제주도인데 며칠 있다 올라갈께요, 네, 일행들과 같이 와 있어요, 걱정마세요"


다행히 오늘은 토요일이다.

그래서 부모님외에 굳이 딱히 연락할 사람도, 연락할 필요도 없었다. 고로 내가 제주도에 내려왔다는 것은 아무도 모를것이다.


대충 머리를 틀어올리고 1층에 있는 조식부페로 내려왔다. 객실번호를 대고 싸인을 하니 자리를 안내해준다.

혼밥. 그것도 젊은 여자가 제주도 호텔 조식뷔페에서 혼자. 좀 머쓱해서 음식을 가져다놓고 핸폰으로 이것저것 검색을 하면서 밥을 먹었다. 마치 '난 이런거 흔하게 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마음속은 콩당콩당, 누가 날 쳐다볼까 신경쓰였지만 아무도 날 신경쓰지 않았다.




식사후 다시 룸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다.

이제부터 뭘하지?혼자만의 여행을 꿈꿔왔지만 혼자만의 여행은 해본적이 없는 나, 다시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괜히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몇개의 카톡이 들어왔지만 확인만 하고 답을 안했다. 모든게 귀찮았다. 그래 우선 쉬자, 아무 생각 하지 말자, 나에게 필요한건 지금 이순간 아무것도 안하는거다. 그렇게 하루를 호텔안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두개의 침대를 오가며 잠만 잤다.




눈을 뜨니 밖이 캄캄하다. 하루가 그냥 이렇게 지났다. 밤이 되니 하얀 파도가 검은 어둠속에서 더욱 환하게 빛난다. 바람소리는 더 거세어졌고 그에 따라 파도도 더욱 크게 넘실거렸다. 괜히 슬퍼졌다. 아침까지도 나 혼자 제주도까지 내려왔다는게 대견했는데 지금은 제주도에 혼자 와 있는 내가 처량해졌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