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en Allachie 10 yrs Cask Strength
[기존 블로그에서 이사 온 글]
무엇이든 적당하기란 쉽지않다. 일이나 업무도, 사랑이나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들도, 그리고 사람간의 관계도. 이 모든 것들의 온도가 모두 적당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지나치고 극단적인 것들에 이미 익숙해져버려 적당한 것을 적당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비극의 경지에 올라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균형잡인 인간이고자하는 꿈이 있었으나, 매일매일을 넘치는 고민과 일과, 이와 함께 일렁이는 감정의 굴곡을 경험하며 보내다보니 균형은 커녕, 과함이 디폴트가 되어버려 스스로가 매 순간의 끄트머리에서 위태롭게 서있는 것 같다.
적당하게 잘 지내는 것이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이런 시즌에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시기는 언제나 그렇듯 또 지나가게 될 것이니, 그저 절박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일부러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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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훌륭한 위스키를 꼽으라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스페이드사이드 싱글몰트 위스키 글렌알라키(Glen Allachie)가 생각난다. 올해초 기회가 있어 글렌알라키를 시음해보고 "적당한 훌륭함"이 기억에 남아, 내 돈을 주고 글렌알라키 10년 CS 를 구입했다.
위스키 원액인 Cask Strength 는 도수가 높고 화려한 향을 가진 경우가 많아 적당하다는 표현을 붙이기에는 역설적일지는 모르겠지만, 글렌알라키 10년 CS는 도수에 비해 훨씬 부드럽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바닐라와 버번 그리고 쉐리의 향이 묘하게 균형잡히게 느껴져서 도수가 높은 CS임에도 불구하고 보통 마시는 위스키의 양보다 더 많이 마시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단점이 있다면 다른 위스키들보다는 알콜향이 조금 더 느껴진다는 부분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거슬리지 않을 정도여서 충분히 잘 즐길 수 있었다. (알콜향에 예민하신 분들은 선호가 뚝 떨어질 수 있을 것 같다.)
CS의 경우에는 배치에 따라 또 그 맛과 향이 미묘하게 차이가 있는데 글렌알라키 10년 CS의 경우 배치3에 대한 호평이 가장 많았고 나도 배치3을 무사히 구입한 덕분에 올 봄과 여름을 적당히 훌륭한 가성비 좋은 글렌알라키 10년 CS과 지내고 보내고 버티고 견딘 것 같다. 그렇게 이 한병을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홀딱 비웠다. (친구들이 좀 뺏어마시긴 했지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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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기록을 빙자한 아무말 대잔치의 소재를 찾는다는 핑계로 나 자신의 요즘과 주변, 생활을 돌아보곤 한다. 이번 여름은 본의 아니게 스스로를 단련할 수 밖에 없는 우연의 기회를 얻어 단련을 당하면서, 그 와중에도 넘치는 욕심과 감정에 적당하지 못한 스스로를 생각하며, 적당함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하다가, 마침 적당한 순간에 적당한 위치에 있던 적당히 좋은 위스키 글렌알라키가 생각났다. 정말이지 이상한 전개다.
적당함을 바란다곤 하지만, 적당한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류로 태어나버린 죄로 많은 일들에 지나치게 과하게 반응하고 그만큼 더 크게 치여버리는 나는 언제쯤 정도에 알맞는 균형잡힌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번 여름이 부디 균형잡힌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자양분을 만들어 준 고통과 희열의 시기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