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ran Malt - Lochranza castle
오랜만에 위스키 리뷰.
짧은 위스키 리뷰를 쓰는 것도 나름의 정성이 들어가는 일인지라, 자주 쓰겠노라 생각해도 막상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다. 나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일 수도 있으나,
그저 위스키의 향과 맛에 대한 이야기만 남기기보다 위스키를 마신 그때의 시간도 눌러 담고 싶은 마음에 짧은 토막글도 쉽게 쓰이지 않는다.
빠르게 변화하는 여러 가지 상황들과 예상할 수 없었던 일들을 만나 바삐 지낼 수밖에 없었던 21년 상반기였다. 휙휙 변하는 상황들에 내 마음과 생각도 움직임이 많았던 시간이었다. 스스로를 나름대로 대쪽 같은 사람이라 생각했었는데, 내가 나이가 든 것인지 경험이 쌓인 것인지, 여러 가지 상황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혹은 그럴 수 있지 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옳다 그르다를 따지거나 혹은 의견을 관철하는 것에 힘을 상당히 쏟던 나였는데, 이제서야 그래 그럴 수 있지 하는 여유와 체념이 익숙해졌구나 싶다. 여유는
나를 편하게 만들지만 체념은 때로는 열정의 상실로 이어지기도 하니, 종종 고민이 들기도 하지만, 이는 그냥 그런 체념이 아니라 수용과 이해의 과정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이런 것들에 익숙해진 데에는 당연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된 일련의 일들이 있기도 하다. 삶에 대단히 특별한 일들이 필요한 것이 결코 아니며 우리를 관통하는 이 모든 순간들이 그 자체로 몹시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니, 따지고 들어 무엇인가를 설득하고 내 마음대로, 의지대로 끌고 가는 것이 마냥 가치 있는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 하루하루를 평화롭게 사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에 대해 깨닫게 되었기에 이제서야 조금은 그러려니 하는 마음을 가져보기도 한다.
그 덕분에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도 조금은 그럴 수도 있겠다 넘어갈 수 있어지고, 나의 주관이 누군가에게는 고집일 될 수 있고, 나의 생각과 의견이 상대에게는 강요가 될 수 있음을 이해해가고 있다.
이런 것들을 5년만 더 일찍 느끼고 깨달았다면 지난 시간들의 시행착오가 조금은 줄어들지는 않았을까, 또 나로 인해 상처 받거나 스트레스받았던 이들이 적어질 수 있진 않았을까 하는 약간의 후회와 큰 반성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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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위스키를 좋아하지만, 개인적인 호불호가 없지는 않은 편이다. 일본 위스키를 선호하지는 않고, 오일리한 향과 맛이 느껴지는 싱글몰트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싱글몰트의 대표적인 위스키가 아란이다. 나에게 아란은 약간의 쓴맛과 오일리한듯한 느낌이 느껴지는 위스키라 찾아마시지 않았는데, 정말 오랜만에 간 바에서 아란의 위스키를 추천해주셨다. 화려하고 강한 위스키를 좋아하는 취향을 이야기했더니 추천해주신 "더 아란 몰트 익스플로러 시리즈 볼륨 2 - 로크란자 캐슬 21년".
이 위스키는 아란 증류소에서 만든 익스플로러 시리즈 중 볼륨 2인 로크란자 캐슬이다. 익스플로러 시리즈 중 볼륨 1은 브로딕베이라는 이름으로 위스키가 별도로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로크란자 버전이 훨씬 훌륭했다. 내 취향에 맞춘 추천인만큼 우선 향이 몹시 풍부했고, 적당한 도수에, 발란스가 훌륭해서 향이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목 넘김이 좋았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쉐리 향이 입혀진 위스키를 좋아하고 쉐리 향이 가미된 특유의 달콤함을 좋아하는데, 이번에 마셨던 아란 익스플로러 시리즈, 로크란자 캐슬에서 딱 내가 좋아하는 그 향을 느낄 수 있었다. 아란 특유의 오일리한 느낌이 아예 없다곤 할 수는 없었지만 좋은 쉐리향과 바닐라 향 그리고 과일향이 조화롭게 엮어서 오일리한 맛 마저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느낌이다. 이 위스키는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위스키는 아니고 일부의 바에서만 구비되어 맛볼 수 있는 위스키인데, 적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 꼭 맛볼만하다. 아란 위스키를 애초부터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무척 좋아할 만한 요소를 고루 갖춘 위스키이다. 다만 버번 위스키를 선호하는 분들이라면 취향에 꼭 맞지는 않을 수 있을 듯하다. 버번 위스키를 선호하는 분들이라면 볼륨 1 브로딕베이를 드셔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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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21년도 절반이 훌쩍 지났다. 무엇을 했나라고 생각하기엔 여러 가지 일들이 다가왔던 상반기였다. 정신없고 힘들 법한 일들에도 매 순간 가까운 사람들의 애정과 감사한 기회들로 인해 힘을 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행복이라는 것에 대한 거창한 기대가 오히려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아이러니하게 하루하루의 삶이 더 행복해진다. 특별한 시간들 뿐만 아니라 소소한 기쁨이 있는 건강한 하루하루가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않길, 또 성취에만 매몰되지 않고 성취의
과정 속에서의 기쁨을 느끼며, 매일의 행복을 되새길 수 있는 하반기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