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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라미 Aug 17. 2023

어른도 칭찬받고 싶다

요즘 겨우 살아가고 있다는 내 친구가 꼭 읽었으면 

가끔 하루를 루틴처럼 별일 없이 살아내다 보면 ‘너 지금 잘 살고 있어’ 라는 말을 간절히 듣고 싶은 날이 있다. 어릴 땐 우유만 잘 마셔도, 밥만 잘 먹어도, 심지어 뒷구르기 하나만 잘해도 칭찬받았던 거 같은데 어른이 된 어느 순간부터 무조건적인 칭찬과 인정은 뚝 하고 끊겨버렸다. 당연히 해내야하는 수많은 문제와 인생의 단계 속에서 자꾸만 나는 시험에 들었고 잘하든 못하든 마음이 씁쓸했다. 잘해야 본전인 어른의 인생이 너무 건조하고 배고팠다. 그래도 책임감은 큰 편이라 몸이 아플 때나 힘들 때도 회사일, 집안일, 육아 가리지 않고 열심히 했다. 


어제 오은영리포트 <결혼지옥> 이라는 프로에 나온 ‘몰라부부’의 사연을 보게 되었다. 처음엔 그냥 첫 아이를 키우는 부부가 겪는 흔한 문제에 성격차이가 더해지면 저럴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영상을 보다가 아내분이 갑상선 기능저하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없이 다정하고 가정적인 남편분에 비해 내내 짜증스러운 아내. 남편과의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별로 없어 보이는 아내 분의 행동이 철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녀가 겪고있는 저 증상명을 듣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왈칵하고 솟아오르며 심장이 찌릿하며 아팠다. 내 청춘의 많은 시간을 무기력하게 만든 저 병. 학창시절의 강도 높은 수험 공부를 힘겹게 버티고, 대학에 가서도 근근히 살아냈지만 모두가 이 정도는 힘들게 살아가는 거라고 착각했던 시간들. 심지어 출산후에는 수치가 미친 듯이 오르내려서 기능저하증과 항진증을 동시에 겪었던 아프고 무기력한 순간에도 나는 뭐든 열심히 했다. 모든 시간에 최선을 다했다. 인간관계도 모나지 않게 유지하려 했고, 때맞춰 취업도 했고, 쏟아지는 회사 일에도 군말 없이 몸을 불태웠다. 결혼도 열심히 육아도 열심히. 그런데 누구도 나의 삶을 칭찬해주고 격려해주지 않았다. 정말 소중한 몇 명의 친구들은 종종 자주 나에게 따뜻한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곤 했다. 나의 선택과 노력들을 알아주고 토닥여준 그들의 응원덕분에 지금까지 잘 버티며 삶을 끌어왔다. 그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그렇지만 아마도 내가 간절히 원했던 건 내 삶 전체를 긍정할 만큼의 거시적인 칭찬과 지지였던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병을 앓으면서, 부수적으로 혈압과 디스크 등 내 삶의 걸림돌들을 견뎌내는 걸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다고 느껴왔다. 언제나 내 몫을 다하기 위해 열심히 숨을 참고 있는데 그 누구도 내가 가라앉고 있는 것을 몰라주는 느낌. 그런 느낌을 받는 날들이 어른의 삶에는 꽤나 자주 있었다.       


다들 쥐어짜서 힘내며 살고 있으니 기댈 여유는 없다. 그저 멀리서 손끝으로 안부를 전하고 나도 버티니 너도 잘 버텨서 건강히 만나자고 비장함을 전한다. 함께 사는 배우자에게도 딱히 의지하지 못했다. 나보다 힘들어 보이는 친구들에게는 예전보다 더 어려운 마음으로 연락을 한다. 내가 그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으니 위로의 경계를 잘 지키려고 노력하며 조심스럽게 그에게 닿았다가 다시 제자리로 금세 돌아온다. 이렇게 요동 없이 건조한 삶을 지켜내기 위한 날들이 나를 간혹 지치게 했지만 뭐가 문제인지 정확히 파악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한달 전쯤 어떤 지인과 삶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기대치 않은 상황에서 그는 나에게 날것 그대로의 칭찬들을 무수히 많이 퍼부어주었고 그것은 나를 다시 춤추게 만들어줬다. 고민의 종류와 상관없이, 자책의 정도와 상관없이 ‘너가 그걸 해결하려고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게 참 멋있다’ ‘넌 지금 나아가고 있다’ ‘너니까 그 정도로 해낸거다’ 등의 무조건적인 칭찬. 사실 자기계발서에 있을 법한 평이한 칭찬의 말들이었는데 그걸 귀로 듣고 문자로 보니 마음이 뜨거워졌다. 이 말에 내가 감동받은 것이 의아할 정도로 구태의연한 표현들이었는데 그럼에도 나는 벌떡 일어서게 되었다. 그래, 잘 살고있어! 라고 혼자 되뇌이며 무력해진 몸과 자존감을 세워보려 분투했던 수년간의 노력들이 허무할 지경이었다. 타인이 밖으로 내뱉어준 칭찬 몇 마디에 가라앉았던 마음이 지체 없이 오뚝이처럼 일어 설 수 있다니.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리곤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타인의 힘듦에 공감은 잘하지만 칭찬을 해본 기억은 많이 없는 것 같다. 왜 공감과 위로가 칭찬으로 이어지지 못했을까. 이렇게 쉽게 마음이 희망으로 가득찰 수 있는데.      


나만 칭찬받고 싶은 건 아닐거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 제목을 우습게 여기지 말았어야 했다. 깊은 통찰이 있는 문장이었는데 웃음으로 쉽게 넘겨버렸던 것이 아쉽다. 나는 이제 내 사람들에게 공감 이전에 칭찬을 먼저 하고 싶다. 그가 열심히 지켜온 삶을 따뜻한 칭찬으로 긍정해주는 것이 얼마나 큰 희망과 기쁨의 힘을 주는지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고단한 하루를 보냈을 나의 친구들에게 열심히 잘 살았다고 한마디 건네고 싶다. 생각만큼 잘하지 못했다고 자책하지 말라고도. 너는 지금까지도 삶의 바위를 낑낑대며 잘 굴려왔으니, 앞으로도 그럴 힘이 충분히 있는 사람이라고. 멋진 너의 모습을 믿어도 좋다고. 너와 내가 이렇게 서로를 응원하고 칭찬하며 살고 있으니 우리는 인생의 친구를 얻은 성공한 사람이고, 앞으로도 지혜롭게 잘 살 테니 멋진 모습 열심히 비춰주며 살아가자.      


겨우 버티고 있다는 너의 문자에 이 글을 쓰게 됐어. 항상 예쁜 말로 내 자존감을 지켜주는 네가 힘들다니 무얼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내 방식의 응원을 보낸다. 이 글이 너라는 단 한사람에게만 닿아도 나는 행복할 것 같아. 내가 너를 많이 자랑스러워하고 있으니 힘을 내도 좋아. 사랑해.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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