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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라미 Aug 10. 2023

나는 홍콩에서 현재를 산다.

마음의 집을 찾아 헤매는 중간자의 삶

한 달이 넘는 태국 살이를 마치고 홍콩으로 돌아왔다. 짐을 찾고 도착 게이트를 나서는 순간 번쩍거리는 전광판과 장내의 시끄러운 목소리들이 생각보다 꽤 반가웠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귀홍이 기다려졌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만난 홍콩이 이렇게 반가운 것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반년 조금 넘게 살았던 홍콩이지만 그 기간 동안 나는 이 나라에서 언제든 똑-하고 분리될 수 있는 레고조각처럼 머물고만 있었다. 내가 먹지 못하는 완탕면과 마라탕이 즐비한 나라, 좁고 더러운 길바닥, 개 오줌 냄새로 가득찬 습한 공기, 무표정한 사람들. 홍콩을 처음 마주했던 나의 첫인상이었고 태국으로 긴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도 홍콩을 떠나는 것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이 없었다. 오히려 제 3국으로 도망가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런데 몇 주만에 다시 만난 홍콩은 달라져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홍콩을 바라보는 마음이 변했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홍콩은 시작부터 나에게 회복의 공간이었다. 시끌벅적한 한국과는 달리 더없이 단조롭고 평화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었다. 또한 시청각적으로 신경 쓸 것이 덜한 주변 환경, 아무도 나를 깊게 알지 못하는 공간에서의 자유, 우리 세 가족의 생존과 안녕만을 챙기면 되는 것이 모두 자연스럽게  가능했다. 다만 이 회복의 공간에 애정이 깃들려고 하는 찰나마다 두터운 빗장하나가 철컹하고 마음 한가운데에 철벽을 쳤다. 여기 머무는 것에는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며 ‘나’라는 사람과 홍콩이라는 공간을 끊임없이 분리시켰다.     

여름 휴가로 텅 빈 홍콩 Central 거리


홍콩에 돌아온 다음날 긴장이 풀렸는지 몸살이 났다.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무거웠다. 마취주사를 맞은 것처럼 두뇌 회전도 느려졌다. 분명 지난 5주 동안도 크게 힘주고 살지 않았는데 대체 무슨 일일까. 반나절을 침대에서 끙끙대다가 오후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커피 한잔을 마시고 떨쳐 일어날 수 있었다. 굳이 옷을 챙겨 입고 센트럴 시내로 걸어 내려갔다. 빠른 회복을 위해서는 내가 살던 땅을 밟으면서 시야에 익숙한 풍경을 담아야 하는 걸 알기에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 마주한 홍콩의 8월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모두가 여름휴가를 떠나 텅 빈 골목들과 빈 가게들, 그리고 도로를 꽉 채웠던 사람들이 없으니 참으로 쾌적하면서도 새로웠다. 사회적 거리가 유지되는 홍콩이라니. 새삼 좁다고 불평했던 인도가 넓어보였고 건널목 신호등이 있는 거리가 새삼 정돈되어보였다. 푸켓에는 없는 보행자 신호등과 유턴신호. 문명이 다시 나에게 돌아온 느낌이었다. 여행자처럼 센트럴 곳곳을 사진으로 담으며 걷다 멈춰서는 것을 반복했다. 어깨를 치는 사람도, 클락션을 울리는 택시들도 사라진 홍콩이었지만 한 달 전에 비해 한층 따뜻하게 인사 받는 느낌이었다.


스카이 워크를 건너다 말고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을 멍하게 바라보는데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문득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제3국인 태국에서 한국이 아닌 홍콩에 왔는데 내 집 같은 느낌이 들다니. 내가 홍콩에 home sweet home의 감정을 느끼는 날이 왔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온전히 내 땅을 밟은 느낌은 아니었고 두 다리가 허공에 붕 떠있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충분히 마음이 편했다. 태국과 홍콩, 한국 어딘가 중간에서 날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집 떠나면 비로소 집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처럼 홍콩의 장점이 찬물 끼얹은 듯 순식간에 온몸으로 느껴졌다. 텅 빈 거리가 어서 사람들로 채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일 먼저 생각난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언제 다시 돌아 오냐고 (보고 싶다고). 다음 주 쯤 이면 모두가 전 세계에서 긴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그들의 언어와 몸짓으로 이 거리를 가득 채우겠지. 길거리에 가득 퍼지는 스트리트 푸드의 향과 광동어, 영어, 만다린으로 뒤섞인 시끄러운 공기가 연속적으로 상상되었다. 그런데 그 상상속의 내가 생각보다 편안해보였다. 마음의 빗장이 조금은 풀린 느낌.


내년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땐 홍콩이 온전한 내 집처럼 느껴질지 참 궁금하다. 한국과 홍콩 그 중간 어딘가에서 떠다니다가 언제쯤 두 발로 내 무게를 실어 밟고 설수 있을까. 어떤 이는 4년이 걸렸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7년이 넘게 걸렸다고 했다. 이곳에서의 남은 이년 반의 시간동안 나는 중간자를 벗어날 수 있을까. 이 글을 쓰려고 카페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우연히 <브루클린> 이라는 영화 리뷰를 보게 되었다. 1950년대 초 뉴욕 브루클린으로 이주한 아일랜드 여성의 꿈과 사랑,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 참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필 지금 보게된 영화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주인공의 이야기라니. 극 초반 주인공 에일리스의 향수병이 고통스럽게 그려지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열 번이 넘는 이사와 해외살이를 겪었음에도 향수병을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의 사주에 역마살이 깊다는 이야기가 영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내내 주인공 여자와 같은 마음으로 낯선 곳을 삶의 거처로 삼았던 나의 과거와 현재가 스쳐지나갔다.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열망과 도태된 현재의 나를 부정하는 마음. 그리고 새로운 삶으로부터 오는 두려움과 그것을 이겨내고자 하는 강한 의지. 누군가 저런 마음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나는 늘 그를 응원했다. 움직이는 삶을 살아야 비로소 숨쉴 수 있다고. 마흔을 목전에 둔 어중간한 중년이지만, 여전히 나는 젊은 마음으로 삶을 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적도 모른 채 안락한 자세로 쳇바퀴를 도는 것보다는 두려운 마음으로 땅을 밟고 뛰는 것이 낫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런 움직이는 마음들을 지지한다.


미혼일 때는 향수병에 걸릴까봐 두려워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젠 가족과 함께 라서 두려운 것이 없다. 푸켓에서 매일 저녁 남편과 영상통화를 했는데, 떨어져 지낸지 한 달 쯤 됐을 때 갑자기 가부장적인 남편의 입에서 신기한 말을 들었다. ‘앞으로 출근 전에 당신에게 큰절을 올리고 가려고. 당신이 해온 일들이 참 대단한 것 같아.’ 내가 아는 남편은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아마도 낯선 타지에 본인보다 위기에 강한 나에게 큰 안정감을 느꼈던 것 같다. 어제 밤에 퇴근한 남편은 정말로 나에게 큰절을 했다. 한국에서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가족과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고 표현하기에 너무도 각박했던 한국. 같은 직장에서 맞벌이를 하며 살림까지 했음에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듣지 못했는데 전업주부로 지내는 홍콩에서 저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새삼 뭉클하고 행복했다. 혹여 홍콩을 떠나 또 다른 낯선 곳으로 삶의 거처를 옮길 일이 생기더라도 앞으로는 좀 더 용감해질 수 있을 것 같다. 홍콩에서 더욱 단단해진 우리 가족은 어딜 가도 잘 지낼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으니. 이렇게 감사로 꽉찬 마음과 함께라면 중간자의 삶으로 여행하듯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씩씩함이 솟아난다.      


떠났던 친구들이 홍콩에 돌아오면 로컬음식에 다시 한번 도전해봐야겠다.

이젠 이곳에 정드는 것이 두렵지 않다.

나의 집은 홍콩에 있다. 나는 이곳에서 행복하다.

내 마음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곳이 나의 터전이다.

잘 지내보자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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