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천국처럼 맑아지는, 초록 파랑의 골드코스트

이토록 친절한 겨울, 지구반대편에서 만난 따뜻한 계절

by 김뚜라미
KakaoTalk_20240730_223610129_08.jpg?type=w580 맑은 하늘과 금빛 햇살, 그리고 평화로운 수평선


올해 여름은 오세아니아로 왔다. 초등학교 때 절친했던 친구가 조기유학을 떠났던, 그때 잠시 궁금해서 사회과부도 책을 펼쳐 더듬더듬 찾아본 골드코스트라는 곳. 전에 <무진기행>에서 김승옥이 그랬던 건지 어떤 작가가 통영을 처음 가보곤 ‘통영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대체 어떤 정서를 갖고 자랐을까’라는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는데 오늘 처음으로 이곳 해변을 산책하며 그 말이 자꾸 떠올랐다. 오전 일곱 시에 웃통을 벗고 차례로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들과 모래해변에서 얇은 담요하나 깔고 자꾸만 실패하는 핸드스탠드 자세를 시도하는 사람. 수심이 깊고 바람이 세다고 경고 플래그를 흔드는 남자와 그에 굴하지 않고 바다 한가운데로 헤엄치기 시합을 하는 백발의 두 노인. 내 앞에서 잔잔 걸음으로 해변가변을 산책하는 노부부와 앞질러 조깅하는 젊은 소녀들. 휘핑크림같이 둥글 폭신한 구름이 비현실적으로 툭툭 놓여있는 파란 하늘과 반짝이는 바다 물결, 곱고 깨끗한 모래사장과 그 풍경 속에서 유유자적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림처럼 평화로웠다.

이른 아침 해변 산책을 마치고 숙소에서 약 이 킬로미터 떨어진 로컬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는 것이 오늘의 소소한 목표였는데 걷는 내내 계속 뒤를 돌아보며 서 있다 보니 시간이 자꾸만 늘어졌다. 내가 있는 여기가 천국인가, 현생인가 눈을 끔뻑 거리며 멍 때리다 보니 한 시간이 금세 지났다. 살짝 차가운 바람이 시원하게 볼을 스친다. 반대로 쨍한 햇살은 선글라스를 뚫고 황금빛으로 온몸을 뜨시게 데워준다. 시리면서도 따뜻하게 몸을 건드리는 그 기운들이 촉감을 가진 시야처럼 너무도 꿈결 같아서 행복함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차올랐다. 눈이 아파서인지 마음이 뜨거워서인지 자꾸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뭉클함으로 가득 찬 딱 그 순간에 친한 지인의 가족이 뇌출혈로 생사를 오간다는 메시지가 왔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으니 황망한 끝을 마주하지 말고 지금 현재를 딸과 맘껏 즐기고 오라는 말과 함께.


여기까지 글을 쓰다가 일주일 동안 노트북을 펼치지 못했다. 그 사이 지인의 가족은 결국 돌아가셨고, 발인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 같이 고깃집에서 저녁으로 소고기를 먹었다고 했다. 여느 저녁 외식처럼 고기를 먹었다는 말이 마치 산 사람들은 이제 다시 삶의 세계로 돌아와야 한다는 무언의 소리침처럼 느껴졌다. 돌아가신 분의 나이가 나와 큰 차이가 없어서였을까. 유독 죽음의 문턱이 생각보다 너무 가깝고 현실적인 공간으로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를 하다가 문 밖을 나섰을 때처럼 내 일상 어딘가 지척에 있는 것 같은. 당장 오늘 내 삶이 종료되리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미래를 위해 현재를 조금씩 희생하면서 살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그 마지막 순간이 기약 없이 저렇게 불현듯 찾아왔을 때를 늘 염두에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그 순간이 되어도 ‘그래도 나 즐겁게 잘 살다 간다’는 산뜻하고 씩씩한 마음이 스스로에게 들 수 있기를. 현재의 행복과 소소한 여유를 ‘미래를 위해’ 이연 시켰던 수많은 선택들이 억울해지지 않도록. 끝이 어딘지도 보이지 않는 검푸른 바다 저 끝에서 흔들거리는 보트 한 척을 바라보며 현재를 바지런히 행복하게 살자,라는 결연함이 서늘하게 가슴에 박혔다.


도대체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지만 홍콩에서의 일상에 비해 나를 돌아보고 아껴줄 시간들이 풍성한 날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혼자 매트 위에서 끙끙대며 요가를 하고, 아픈 어깨와 등도 게으르게 스트레칭한다. 바닥을 닦고 설거지를 한 후엔 거칠어진 손에 핸드크림을 듬뿍 올리곤 평소엔 신경 쓰지 않던 손마디 하나하나를 쓰다듬어준다. 혼자 하는 식사지만 나를 위해 과일을 씻고 고기도 굽는다. 모든 것이 느려서 이 모든 걸 쫓기지 않고 나를 돌보듯 살아갈 수 있게 된 걸까. 나는 수년째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못 찾던 사람이었는데, 요 며칠은 살아있는 것이 참 좋다는 생각이 문득씩 든다. 하루 종일 감사하고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없다. 이렇게 하늘 한번 쳐다보고 동네 공원의 초록 잔디를 밟는 발걸음마다 크고 작은 생각들이 무게감 있게 마음속에 쌓여갔지만 그것들을 정리해서 꺼내보려 할 때마다 작렬하는 햇살이 이마를 몽롱하게 만들었다. 긴 산책로를 따라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도, 해변을 바라보며 호젓하게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무는 순간에도, 모래와 잔디, 물뿐인 작은 뒤뜰 해변에서 몇 시간이고 행복하게 웃으며 모래성을 짓는 딸아이를 바라보면서도 잡념들이 말갛게 씻겨 내려가는 이 개운함을 계속 어떻게든 정의하고 싶었던 것 같다.


KakaoTalk_20240730_223610129_05.jpg?type=w580 매일 하교 후에 달려오는 집 앞 해변가.


그런데 태양이 자꾸만 그런 나를 막아서는 기분이었다. 지금 있는 것처럼 조금 더 멍 때려도 돼. 아무 생각 없이 흐르는 바닷물을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도 괜찮아. 정말 그래도 문제없어. 아무 생각도, 아무 정리도 하지 않는 이 순간이 정말로 평온하지 않니,라고 묻는 것 같았다. 정말로 그랬다. 늘 잡념과 걱정으로 가득 찬 마음을 다독이느라 항시 바쁘고 쫓기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이곳에 온 순간부터 햇살에 바짝 마른 뇌를 장착한 것처럼 머리가 너무 맑고 모든 것이 느려졌다. 걱정도 결단도 느려졌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와 단둘이서 지내며 해야 할 일들이 꽤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아프거나 피로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새벽에 일어나서 창문을 활짝 열고 초겨울의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아침 스트레칭으로 시작하는 하루. 새벽 여섯 시에 카약킹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언젠가 나도 이곳을 떠나기 전에 꼭 아침바다에 맨몸으로 뛰어 들어가 보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내가 살아있음을, 생생히 젊은 마음으로 여전히 어딘가에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차갑게 느끼고 싶다. 하루에도 수백만 번 생각회로를 돌리느라 고생했던 나의 축축했던 뇌는 따뜻한 겨울나라에서 뜨거운 열로 바싹 다림질한 것처럼 보송하고 따뜻하다. 항상 기관지염과 온갖 알러지로 고생하며 천식약까지 복용하던 딸은 이곳에서 더 이상 코딱지를 팔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왜 이곳의 겨울은 이토록 친절하고 따뜻한 걸까. 겨울만 되면 극심한 어깨와 등 통증에 고통스러워했던 나는 골드코스트의 따스한 겨울 덕분에 이 계절을 조금은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벌써 이곳에서 머물 기간의 반이 지났다. 그래서 여기에 내내 살게 되면 이 감사함이 조금 옅어지는 순간이 오겠지,라는 스스로의 합리화로 내가 본래 살던 공간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고 있다. 지난밤 잠자리에 들기 전 향초를 끄고 환기하려고 잠시 베란다 문을 활짝 열었을 때 마주했던 밤하늘의 별들과 등불의 반짝거림을 잊을 수 없다. 약간은 불안하고 희미하게 반짝이던 빛들이 여기 머무는 동안은 더 마음을 늘어놓고 살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차곡히 내 마음에 쌓인 이 빛들이 어디서든 지금의 마음을 지켜 줄 거라고 믿는다. 아무 목적 없이, 방향 없이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걷다가 어느 순간 달리며 초록과 파랑들을 마음껏 바라보는 시간.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을 오늘을 살고 있다.

행복하고 또 행복해서 웃음이 자꾸만 난다.

모든 것이 감사하고 예쁘다.

이 단정하고 맑은 마음이 마음껏 휘돌아 다니도록 내버려 두는 것.

그것이 남은 이주 동안의 과제.


KakaoTalk_20240730_223610129_01.jpg?type=w580 여기서 끝이어도 좋겠다 싶었던 해 질 녘 골드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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