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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라미 Sep 28. 2023

테니스와 사랑에 빠진 어느 날의 기록

나 배우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었네

여름 방학이 끝나고 지난 한 달간 나의 어떤 생각도 글로 적어내지 못했다. 새로운 학교에 아이를 적응시키는 분주한 시간이었다는 건 명목상의 이유였다. 겨우내 다시 열어제꼈던 마음의 문이 의욕이 느슨해진 틈을 타 다시 철컹하고 닫힌 것 같았다. 짤막한 생각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를 스쳐갔다. 푸켓에서 오랜만에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한 이유는 삼십 대의 내 일상과 생각들을 담담한 기록으로 남겨보자는 단순하지만 결연한 의지 때문이었다. 스스로의 매일을 고증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을 거라며 1일 1 글을 실천하겠다는 의욕에 활활 불타올랐었는데 이게 웬걸. 갑작스러운 무기력증과 회의감이 여느 때처럼 불쑥 고개를 내밀곤 이런 보통의 삶의 기록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비뚤어진 의문들이 자꾸만 마음을 치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무기력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건강이라는 명목하에 땡볕에 하루 종일 걸어 다니고, 페이스 조절에 실패한 등산을 갑작스럽게 감행하고, 거의 매일 요가와 근력운동을 과할 정도로 많이 했다. 글쓰기를 하지 않았을 뿐 내가 절대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있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다른 곳에서 무너진 의지를 운동으로 옮겨와서 이거나 그거나라며 끊임없이 합리화했다. 아무튼 자아를 깨우는 것에 게으르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큼은 매우 컸다.


매일같이 하이에나처럼 새로운 운동은 또 뭘 해야 할지 궁리하면서 동네 피트니스 샵을 계속해서 검색했다. 아이가 학교에 가있는 동안의 빈 시간을 모조리 운동으로 채우려고 테트리스 쌓듯 시간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조금의 빈틈도 집안에 앉아 쉬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 테니스를 치는 지인이 빈자리가 하루 있는데 연습 삼아 쳐보겠냐고 물어왔다. 마치 먹이를 문 배고픈 맹수처럼 바로 그러겠다고 했다. 십오 년 전쯤 채까지 사놓곤 하루 만에 그만두었던 테니스. 육아 같은 중노동을 경험하지 못했던 스물 초반의 나에겐 라켓도 컨트롤하기 힘들 정도로 무거웠고, 잘못된 자세와 과한 의욕으로 첫 수업에서 팔에 엘보가 왔다. 시작하자마자 바로 그만둔 유일한 운동이라 다시 시작할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겠다고 급히 대답해 놓고도 걱정이 많았다. 새로 무엇을 배운다는 설렘보다는 또 후회하게 될 마음이 미리 두려웠다. 뭐 테니스 따위 두 번 포기한다고 내 인생이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왠지 그 포기가 실패라고 생각돼서 첫 수업 전에 마음을 꽤나 졸였다.


대망의 첫 수업은 오늘 아침이었다. 스물 후반 남짓의 젊은 선생님이 포핸드, 백핸드 동작을 차분히 알려주곤 시범을 보인 뒤 연속으로 공을 쳐보게 했다. 선생님은 정말 힘을 하나도 들이지 않고 탕-탕- 시원한 소리를 내며 공을 쳐냈다. 나를 초대한 친구도 몇 년을 꾸준히 배운 구력에 걸맞게 선생님이 갑작스럽게 여러 방향으로 던져주는 공을 포핸드 백핸드 번갈아가며 요란함 없이 쳐냈다. 그 모습을 보며 '또 포기하면 어쩌지' 했던 걱정이 잘 치고 싶다는 욕망으로 바뀌었다.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를 정석대로 배워서 의연하게 잘 해내고 싶었다. 순간 깨달았다. 내가 무언가를 욕망하는 것이 얼마나 오래간만인지. 이런 감정을 얼마나 그리워했고 찾아내고 싶었는지 깨닫고는 갑자기 마음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그리곤 첫 공을 생각보다 꽤 잘 쳐냈다. 중간중간 의욕이 앞서 흐트러진 자세로 힘만 잔뜩 준 순간도 있었지만 선생님은 많은 칭찬을 해주셨다. 몇 번의 스윙에는 born natural ! 이라는 감격스러운 격려를 받곤 운동이든 공부든 처음 배움을 시작하는 순간의 설렘과 기대감이 차올랐다. 이리저리 뛰는 동안 심장박동수가 계속 올라갔고 그 속도와 함께 무기력했던 나 자신이 일순간에 허물을 벗고 젊음의 생기로 가득 찼다. 근 십 년간 뭔가를 초심자의 마음으로 깊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그냥 뭐 다 그런 거지’라는 고자세로 나 스스로가 이제 뭐든 다 적당히 아는 어른이라는 착각에 휩싸여 앞으로의 내 인생에는 새롭거나 기대될 것이 없다고 포기한 채 살았다. 그래서 우습게도 여섯 살의 어린 딸을 보며 그 아이 앞에 펼쳐질 무한한 미래와 젊음을 내내 부러워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상상조차 못 했던 나의 마음이 다시금 이토록 빠르게 뛸 수 있다니. 이 순간이 참으로 놀라웠고, 아직 배움이 가능한 학생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감사했다. 네트 한가운데에 정확히 맞아 길게 날아오르는 공들을 보면서 아무리 운동을 해도 개운치 않았던 몸이 순식간에 가뿐해졌다. 고등학교 졸업한 후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남들이 배워서 따라 하거나, 그럭저럭 재밌어 보였던 것이 아닌 내 스스로가 잘 해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강렬한 목표. 생생하고 팔딱거리는 마음을 되찾은 오늘이 참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갑작스럽게 팔을 쓴 탓에 하루 종일 손이 덜덜거리며 제어되지 않은 채 이리저리 움직인다. 오전에 테니스를 하고 오후에 요가까지 한 탓에 몸이 근육통으로 욱신거린다. 그렇지만 이 기쁨의 순간을 그대로 지나칠 수 없어서 기록을 남겨본다. 비록 우연하게 대타로 들어간 자리에서 마주한 기쁨이었지만 내 자신을 좀 더 다양하게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이에 적당한 것 같아서, 남들이 해보라고 하니까, 해두면 좋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마음의 이끌림이 있는 또 다른 목표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믿음도 생겼다. 뿌옇게 가려졌던 삶의 시야가 먼지를 거둬낸 것처럼 선명하다. 거창하게 꿈, 희망 이런 것만을 쫒을 것이 아니라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슥슥 발걸음을 내디뎌 보고 싶다. 하룻밤 자고나도 이 감정이 지속될지 사실 확신은 없지만 하루라도 젊은 마음으로 살아내서 행복했다.


행복한 현재를 살아내자. 부단히 살아내자.

이쯤이면 삶에 더 이상 달콤한 별사탕 따위는 없을 거라고 체념하는 늙은 마음을 버려내자. 그리고 나는 꽤나 활달하고 통통 튀는 사람이었음을 잊지 말자.

나 자신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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