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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라미 Jul 25. 2023

나는 프린세스메이커가 아니다.

대체 숨 참는게 뭐가 어렵니?

올해부터 딸아이에게 수영을 슬슬 가르쳤으면 좋겠다는 남편의 의견에 따라 푸켓에 도착하자마자 부지런히 괜찮은 수영 교습소를 찾았다. 유달리 늦게 찾아온 더위와 간헐적 폭우로 홍콩에서는 겨우 두 세 번의 수업이 전부였다. 그래서 딸은 발차기만 조금 할 줄 아는 완전한 초보자로 수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정식으로 수업은 받지 못했지만 수많은 리조트와 호텔수영장에서 아이는 분명 물개처럼 풍덩풍덩 물을 즐겼었다. 그런데 푸켓에서의 첫 수업을 (내가 열심히 찾아낸) 퀄러티 좋은 수영장에서 완벽하게 마쳤다고 생각한 순간, 아이는 다음 수업을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유머러스한 호주 아저씨 선생님이 각종 인어공주 인형들과 소품들을 사용해서 다양하게 물과 친해지게 해줬을 때 환하게 웃으며 팔딱 거리던 건 어디가고 왜 이러는 걸까. 싶어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물 속에 얼굴 넣고 싶지 않아’ 대답이 돌아왔다. 

         

물 속에 들어가면 인어공주를 만날지도 몰라, 고글이 눈을 보호해줄거니까 눈 뜨고 얼굴 넣으면 안무서워, OO언니랑 수영장에서 놀아야지 등의 달래기부터 시작했다. 그러다간 숨참는 방법을 모르나 싶어서 수번을 시현해보이며 설명해줬다. 나와 숨참기 시합도 자주 했던 아이인데 숨 참는거 못하겠다고 버텼다. 그리곤 엄마가 물 속이 재밌는게 많다고 했지만 그냥 안보고 안재밌는 쪽을 택하겠다고. 해변도 수영장도 이젠 가고싶지 않다고. 수영수업 가면 선생님이 자꾸 넣어보라고 시켜서 무섭다며 그만두겠다고 했다.     

     

시설이 많이 낡고 열악한 푸켓에서 최고급 신식 수영장에 수질이 잘 관리된 파란 물과 영어권 나라의 유머러스한 선생님까지. 나를 위해서 좋은 요가학원을 알아보는 걸 제쳐두고 본인에게 좋은 교육을 받게 해주려고 수 일을 뒤지고 어렵게 컨택했던 나의 나날들이 순간 허무해졌다. 그리고 이 최적의 환경을 거부하는 딸아이의 태도에 속에서부터 열불이 났다. 그리곤 참지못하고 내뱉어 버렸다.          


‘아니 숨 잠깐 참는게 뭐가 어려워서 못해? 옆에 다른 친구는 어푸어푸 잘 만 하잖아. 재밌어 보이지 않니? 한번 해보면 되지 뭐가 무섭다고 안하고 버티는거야 . 너 엄마 뱃속에서 물에 떠있었어. 하아’     

     

아마 그때 나는 분명 짜증스럽고 너에게 실망했다는 표정으로 딸아이의 작은 어깨를 더 좁고 쫄아들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멈출수가 없었다. 나는 딸을 그 옆의 동갑 친구와 비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어린시절에 도대표 배영선수였던 과거의 나와 비교하고 있었다.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가 뛰어나진 않아도 중간은 가야 정상인거 같은데 그러지 못한 것이 인정되지 않았다. 납득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옳지않은 비난으로 아이의 자존감을 수없이 깎아내렸다. 미성숙한 나 자신은 어떻게든 교정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아이의 발달과 양육에 있어서는 시시때때로 오만한 발작버튼이 눌린다. 부끄러운 모습이다.       

   

아이가 더 어릴 땐 무언가를 잘 했으면 좋겠다는 것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그저 크게 아프지 않고 각 나이의 발달과정에 맞게만 자라줬으면 하는 소박한 바램. 아마 많은 부모들이 처음엔 다 그렇지 않았을까. 언제부터 아이가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 비해 우리 아이에게 사교육을 거의 시키지 않았다. 걸음마를 갓 뗀 어린자녀에게 한글, 수학, 영어유치원은 기본이고 발레에 피아노까지 시키는 엄마들을 보며 그들의 열정이 마치 프린세스메이커처럼 완벽한 자녀를 찍어내듯 만들고 싶어서가 아닐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들의 양육목표에 본인들이 이루지 못한 꿈이나 아쉬움을 한껏 투영한 것 같다고 오만한 마음으로 바라본적도 있다. 어쩌면 나는 실질적으로 사교육을 시켰던 부모들보다 더 무섭고 큰 기대로 아이가 뛰어나길 바랬던 것 같다. 나는 어릴 때 피겨선수였다가 수영선수도 했고, 바이올린을 전공생각 할만큼 잘했으니 예체능은 당연하고 한글, 구구단은 유치원에서 스스로 다 떼었다. 그러니 내 딸은 적어도 습득에 어려움은 겪지 않을거야, 라는 믿음. 굳이 다른 부모들처럼 종종거리지 않아도 ‘내 딸이니까’ 잘할 거라고 믿었던 막연한 기대. 어쩌면 아이에겐 폭력적이었을 나의 태도. 좋은 대학을 나온 것을 다 잊고 산다고 늘 겸손한척 이야기하며, 나는 사교육따윈 과하게 안시키는 고고한 엄마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는 다를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두 얼굴의 부끄러운 자아.          


한글과 수학을 비롯한 공부의 영역에서 딸아이는 사고방식이나 의지의 측면에서 나와 많이 다르다는걸 예체능보다 먼저 파악했다. 대충 답하고 던져버리는 아이의 모습이 완전히 본인 판박이라며 웃는 남편에게 우스갯 소리로 ‘대체 공부를 얼마나 못했던 거야’ 라며 핀잔을 주며 마음을 좀 내려놓았다. 어렵고 이해 안되는 것을 왜 모르냐고 추궁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고 남편이 그랬기 때문이다. 그렇게 밀어붙여봐야 머리가 새하얘질뿐 어짜피 답을 말하지 못하는 것은 똑같다는 말에 공부에 대해서는 욕심을 비우고 천천히 아이의 속도에 맞추려고 노력해왔다.          


그런데 수영은 다르지 않은가,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이라면 물에 뛰어들고 첨벙거리며 고개도 넣었다 뺐다 하면서 자연히 숨쉬는 법을 배우고 즐기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주변의 누구도 아이가 얼굴을 물에 못 넣어서 큰일이에요, 라는 고민을 토로한 적이 없기에 나의 아이가 더욱 별종처럼 느껴졌다. 고개를 뻣뻣하게 들곤 킥판을 어깨 밑에 꼭 낀 채 절대 물에 얼굴을 넣지 않는 모습이 유난하게 보였다. 재차 물 밑에 얼굴을 넣어보자 권하는 선생님의 말에 압박감을 느끼고 울먹거릴 때 안쓰럽다기 보단 좀 창피하기도 했다. 적당히 버티고 좀 머리를 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한 나는 몹시 차가운 엄마였다.   

       

오늘 아침에 남편하고 이 이야기를 하면서 이젠 포기했다고 말했다. 코치 선생님께도 더 이상 푸시하지 말아달라고 했고 아이가 그냥 발차기만 하더라도 놔둘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수영수업을 앞두고 아이에게 원하던 인형을 사줄테니 한번만 물에 들어가보라는 딜을 시도했다. 아이는 수없이 망설이다 결국 얼굴을 넣었고 1초, 5초 조금씩 버텨냈다. 마침내성공한 아이보다 내가 더 놀라고 신나서 소리를 꺄악하고 질렀다. 아이는 내가 웃자 그제서야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을 보면서 뒤늦게 후회가 몰려왔다. 물 안에 얼굴 넣는 게 무서울수 있는 건데 나는 무섭다는 아이를 왜 이렇게까지 추궁했나. 숨참는건 사람에 따라서 극도의 공포일 수 있는데 내 만족을 위해서 아이를 두려움의 영역으로 밀어넣은건가. 엄마의 엄지척을 마침내 얻어내기 위해 우리 딸은 얼마나 큰 무서움을 삼킨걸까.          


선불로 10회차를 미리 결제 했다며 너가 좋든싫든 수영장에 가야한다고 차갑게 말한 엄마에게 아이는 안전함을 느꼈을까. 아이러니하게 아이가 음파-를 성공한 그 시점에서야 마음이 우두둑 무너져버렸다. 그래서 웃으며 달려오는 아이에게 용감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한번 성공해봤으니까 이제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줬다. 그러면서도 또 해보면 더 멋있을 거 같긴하다고 질척거린 끈질긴 엄마. 잠자리에서 딸에게 오늘 너무 멋있고 고생했다고 여러번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러나 아이는 아무말이 없었다.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 가끔 7세의 딸이 너무 온전히 다 커버려서, 기억력이 너무 좋아서 섬뜩할때가 있다. 오늘이 그랬다. 말하지 않고 나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느낌.          



오늘도 나의 과격함과 통제되지 않는 욕심을 반성하며 잠들려한다.     

나는 프린세스 메이커가 아니다.     

나와 아이는 다른 개체이다. 이 아이가 혼자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행복을 품고 살게 도와주는 것이 나의 일이다. 자꾸만 아이의 자존감을 깎아먹지 말자.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매몰차게 결과주의를 강조했던 것을 대물림하지 말자. 아이를 만날때만큼은 나에게 남은 따스함과 너그러움을 쥐어짜고 짜서 곱게 비빌 언덕이 되자.          


이것은 딸에 대한 반성문이자 나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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