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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라미 Jul 25. 2023

당신의 하루에 행복한 시간이 있습니까?

저는 지금 행복한 것 같습니다.

20일 째 요가메이트 Nana와 함께 수련중.


행복에 대해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행복이라는 건 긴 시간 걸쳐서 내 일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고,
찰나의 짧은 만족은 행복이 아니라 쾌락이라고.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일년에 몇일 안 되는 단 한번의 휴가를 위해 남은 시간들을 내내 고통 속에서 불만족스럽게 참아내는 것이라면 그 사람은 쾌락을 쫓은 것이지, 행복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 이 구절에 백퍼센트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동진이 하려고 하는 말의 핵심은 꽤나 많이 공감이 갔다.


마치 은행에 갓 입행했을 때 나의 모습이 저러지 않았을까. 일 년에 주어지는 단 5일의 휴가를 최고로 멋지게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다페스트, 체코, 런던, 아일랜드, 터키, 그리스 등 최대한 멀고 낯선 문화권으로 떠나서 현실을 눈앞에서 가려버리는 게 목적이 되어버렸다. 수백 만원의 비용이 들고, 수 백장의 사진을 남겼지만 내가 정말 행복했는 지에는 자신이 없다. 아마도 순간 순간은 새로움에 놀라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온 것 같은 풍경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그 여행들이 나의 일상 전반을 단란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짧은 쾌락들을 수집하며 나는 이렇게 좋은 곳에 왔으니 즐거워야해! 라는 강박을 품은 채 여행 내내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긴장되어 있었다.


마흔을 향해가는 서른 중후반이 되어보니 나는 늘 행복을 먼 곳에서 찾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아직도 어떤 여행을 통해, 혹은 이국적인 타지에서의 삶을 통해 내가 지향하는 가치를 찾고 좀 더 평온하고 덜 치열하게 안정적인 삶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나와 가족의 건강, 아이의 교육과 성장, 안팎의 대인관계, 하물며 날씨까지 내 마음대로 탄탄대로처럼 흘러가는 것이 없고, 노력의 유무와 상관없이 나와 어울리는 재질의 삶이 있다는 것, 생각보다 사람들은 제각각의 의견을 가지고 있고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순 없다는 것 등을 깨달아가면서 저 모든 것들이 버무려진 오늘, 지금의 내가 평화로운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순간에도, 누가 나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내가 체력적으로 힘든 시간이 찾아와도 내가 내 중심을 잃지 않고 힘듦 속에서 스스로를 격려하고 편안히 잠들 여유가 남아있다면 그게 행복. 그렇게 행복을 꾸며내지 않아도 되는 평화롭고 잔잔한 감정이 유지되면 그 언제가 되어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자존감도 함께 세워지는 것 같고, 그 자존감이 나에게 단단한 삶의 중심을 세워주는 것 같다.


여전히 나는 마음정돈이 더 많이 필요하고 ‘남처럼 행복하길’ 빌기보다는 내 마음이 가장 평화롭고 호탕하게 웃을 수 있는 순간을 일상에서 찾으려고 내내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이십대나 삼십대 초반 시절보다 나의 마음이 조금 나아갔다고 생각하는 것은 타인이 소유한 대단한 부와 재력, 그리고 완벽하게 보이는 타인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보아도 그것에 큰 감흥이 없다. 그저 ‘참 대단하고 멋지다’ 라고 타인의 행복과 반짝임을 응원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 너무도 다행이다. 질투나 미움이 없는 삶이 행복의 첫걸음인데 살다보니 어느 순간 그것이 이루어졌다. 내 삶은 겉으로는 큰 발전이 없는 것 같이 보였는데 걱정에 비해서 마음은 다행히 조금씩 자라고 있었나 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심 없이 응원해주고, 좋은 일에 작은 선물을 줄 수 있고 그것으로부터 나 역시 동기 부여되어 내 삶을 좀 더 힘차게 꾸릴 수 있는 선순환을 만드는 게 나의 행복이다.


무더운 7월의 여름이고, 아이는 때때로 많이 아프고, 나도 체력적으로 지칠 때가 많지만 그래도 하루를 마무리 하면서 이런 글을 쓸 감정의 공간이 남아있어서 다행이고,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나는 내일 푸켓에서 첫 요가 수업에 간다. 가급적 매일 클래스에 가서 30일을 꼬박 채워 내 몸을 단련할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한 매일이 될 것만 같다. 나를 위해서 운동할 때도 역시 행복하다. 모델 한혜진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내 몸밖에 없다’      



그리고 이 글을 읽어주는 소수의 친구들이 있어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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