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올리는 제사를 보았다.
푸켓 한달살기를 하면서 두 군데의 요가 학원을 다니고 있다. 처음엔 내 몸을 부지런히 깨우고 싶어 홍콩에서처럼 고강도의 근력운동을 겸한 요가를 열심히 찾아 헤맸다. 하지만 태국의 요가는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빠른 템포로 몸을 휙휙 바꾸며 화려한 자세를 완성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게 요가인가 치료인가 싶을 정도로 먼저 몸의 중심을 신중하게 찾고, 그 후에 미세한 근육과 신경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차분히 반복하고 연습한다. 처음에는 이거 너무 쉽지 않아? 나 좀 어려운 동작도 할 수 있는데, 라는 마음도 사실 조금 있었다. 그런데 쉬워보이던 것들이 쉽지가 않았다. 선생님들은 가장 기초적인 인간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나의 몸을 정성스레 살펴주셨다. 그리고 덕분에 몸에 안전하고 단단한 기둥이 하나 둘 세워지고 있다. 고작 한달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무슨 챌린지 하듯 근육을 최대한 격렬히 혹사시켜서 복근도 만들고 팔, 다리에 구릿빛 탄탄함을 얹어가겠다고 생각했던 나의 목표가 어느 순간 조금 부끄러웠다. 내 목표가 진짜 건강한 몸이었는지, 아니면 잘 꾸며진 몸을 과시하고 싶은 것이었는지.
아침에 아이를 배웅하고 곧장 요가원으로 향하는 날들이 쌓여가면서 매일의 목표가 조금 더 내 몸의 구석구석으로 향했다. 늘상 안 좋은 견갑골과 어깨, 그리고 불안한 목과 왼쪽 허리. 매일 돌본다고 돌봤는데도 항상 마음이 쓰이는 통증 부위들이 있다. 그곳들이 무너지면 내 몸 전체가 무너지고, 정신이 무너지고, 곧 내 일상이 붕괴되었던 경험들이 꽤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선생님과 함께 그 부위들의 회복과 교정에 집중했다. 스스로의 몸을 터치하고 쓰다듬으며 온 힘을 다해 내 몸의 안녕을 지켜내는 경험.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이어진 신경선을 따라 왠지 모를 뭉클함과 뜨거움이 훅 치솟는다. 짜릿하게 온몸을 관통하는 따뜻한 전류에 안도하며 숨을 내쉬고 또 깊게 들이마신다. 맞아 나 늘 긴장해서 신경성 호흡장애도 있었지. 늘 날카롭게 서있던 신경이 무의식적으로 숨을 참게 만들었고, 그게 폐의 기능을 70%도 발휘하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렸다. 왜 숨을 계속 참는지 스스로도 통제가 안되었는데 이젠 3초동안 자연스럽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 것도 가능해졌다.이런 감사한 순간들을 경험하는 요가원의 이름은 ‘Healthyning studio’.
지난 목요일 수업이 끝나고 스튜디오 문간에서 잠시 앉아 쉬고 있었는데 부엌에서 부산한 소리가 들렸다. 생선구이부터, 쌈밥, 메론, 콜라와 차, 그리고 귀여운 컵케이크까지 줄줄이 문 밖의 개별 사원에 놓여졌다. 흡사 우리나라 제사상같은 느낌이 들어 원장선생님에게 무엇을 기원하는 제사냐고 여쭤봤다. 조상님들에게 명복을 비는 것이냐는 나의 물음에 선생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내 몸의 안녕을 위해. 몸의 신에게 기도합니다.’ 대답을 마친 선생님은 집 앞의 작은 사원에서 기도를 시작했다. 그리곤 양손으로 머리와 어깨 , 그리고 몸 전체를 쓸어주었다. 매주 목요일 내 몸에게 고맙다고 올리는 제사. 제사는 본디 죽은 대상에게 올리는 것이지만 달리 표현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단순히 기도, 라고 하기엔 두어 시간전부터 준비한 음식과 그릇 손질, 그리고 꽤 긴 시간 진행된 기원의식까지. 매주 목요일 몸에게 감사함을 전한다는 선생님의 말에 무언가 숙연해졌다. 아 이분들은 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요가를 하겠구나.
요즘은 요가나 명상조차 건강한 몸, 자연스러운 몸 그 자체를 목표로 하지 않는 곳들이 많다. 마음의 평화를 얻어야할 보루 같은 장소에서조차 음악과 향을 이용해 감성적으로 혹하도록 꾸며내는 곳들이 많다. 그런데 지금 수련하는 이 곳은 흔한 인센스향이나 명상음악 하나 없이도 몸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덕분에 그냥 운동하는 기분 좀 내려고 워크인으로 방문하는 뜨내기 요가인은 한명도 없다. 대부분이 근처에서 일하는 로컬 아주머니분들이나 생업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 거주자들. 홍콩에서는 유행하는 운동복 브랜드인 룰루레몬을 입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반대로 이 스튜디오에서는 운동복을 티 나게 갖춰 입는 수강생이 없다. 그저 몸에 편한 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한 시간동안 걸음을 잘 내딛는 법, 물건을 들어올릴 때 허리에 무리 없는 자세, 거북목과 c자목을 올바르게 견인해 올리는 방법 등을 배운다. 거창한 자세는 하나도 없는데 천천히 발걸음 하나와 내젓는 팔에 땀이 줄줄 흐른다. 선생님은 숨을 참는 나의 습관을 아시곤 내내 배에 손을 짚고 계신다. 움직이기전에 숨부터 편하게 쉬어보라고 계속 일깨워주신다. 숨 편히 쉬라는 말에 왈칵 눈물이 날뻔했다. 오랜시간 아무에게도 듣지 못했던 말. 이제서야 내 몸에게 그동안 빚진 것들을 갚아나가는 느낌이 든다.
삶이 공허하고 상실감이 있을 때마다 자꾸 몸을 자극 속에 노출하려고 했다. 맵고 짠 먹거리에서 겨우 탈출했다 싶었는데 여전히 나는 운동을 하면서도 잔잔함보다는 단숨에 부족함을 채워버리고 싶다는 욕심이 가득했던 거 였다. ‘나 운동하는 사람이에요’ 라는 말 안에 들어있는 무언의 과시와 적당한 몸. 이젠 진심으로 내 몸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려한다. 카페인과 탄수화물, 알콜로 얼룩진 식단을 거두고 아침마다 내 육신의 안녕을 위해 기도해야지. 열심히 잘 살아줘서 고맙다. 코어가 무너졌던 어느 시절에도 나를 붙잡고 버텨주어서 고맙다. 뒤틀리고 휘어서 아프다 소리치던 와중에도 몸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울먹여줘서 고맙다.
더 늦기 전에 철들어서 나의 몸 너에게 정성을 더 쏟아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