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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라미 Jul 27. 2023

아파도 편히 쉬지 못하는 어느 날의 이야기.

게으르고 싶으면 나를 먼저 설득해봐

푸켓에 온지 한 달 만에 처음으로 하루 종일 집에 머물렀다. 전날 밤부터 온 몸이 축축 쳐지면서 몸이 무거웠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 그것이구나. 어김없이 새벽녘 아랫배 통증이 시작되며 호르몬의 널뜀이 시작되었다. 무심히 챙겨온 여성용 진통제를 두 알 털어넣고는 퉁퉁 부은 몸의 통증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한국을 떠날 때 가장 신경써서 수십 통 챙겼던 약효 빠른 진통제.해외에서 아프면, 엄마인 내가 아프면 집안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을 걸 너무 잘 알았기에 비장하게 챙겼던 독한 진통제들.    

  

실제로 지난 4월에 두 번째 코로나에 걸렸을 당시 아비규환이 되었던 일상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39도가 넘는 고열이 이틀째 지속되는데도 챙겨야 했던 아이의 점심도시락과 간식, 등하원, 남편의 양복과 영양제. 매일같이 새벽 여섯시반에 아이를 깨워 아침을 먹이며 식탁에 함께 앉아있었는데, 그날은 앉아있다가 풀썩 쓰러졌다. 낮동안 온몸으로 땀을 흘리며 사경을 헤매다가 저녁 무렵 남편이 퇴근하고 나서야 응급실에 실려갔던 하루. 삼십분 거리의 병원에 가는길에 차라리 정신을 놓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기분이었다. 응급실 벽에 기대어 고열 때문에 달달떨리는 치아를 앙다문 채 헬퍼에게 아이의 다음날 도시락 식단을 메시지로 보냈다. 코로나 판정을 받고도 제대로 된 격리는 할 수 없었다. 약을 먹고도 삼일 연속 고열이 지속되었고 목이 아파서 음식을 넘길 수 없었지만 그때조차 나는 게으를수 없었다. 마음과 정신을 훅 떼어두고 쉴 수 없었다. 너무도 많은 것들이 나의 개입을 필요로 했고 아이는 자꾸만 나에게 달려와 안겼다.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 이젠 내 몸은 마음대로 아파서는 안 되는 구나. 죽을 것 같은 순간에도 나는 내 역할을 다 해야 하는 자리에 있구나.      


가뜩이나 가만히 못있고 일을 찾아서 하는 성격이었는데 엄마, 라는 역할을 얻고 난 이후에 나는 보다 매몰차게 나의 게으름을 단죄하고 제한했다. 지금 너가 할 일이 이거 말고도 얼마나 많은지 알아? 라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할 일이 쌓이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없는 일과 없는 걱정을 만들어 내지만 않았어도 조금은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철저한 사전조사와 계획하 에서 불안함 없이 앞으로의 일들을 진행하고 싶어 하는 성격에 그런 태평한 마음을 먹는건 쉽지 않았다.      


저렇게 사서 고생하는 타입의 나조차도 극도로 단조롭고 일상의 변화가 적은 환경에 오니 게으름을 허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애초에 태국에 한달 살기를 오려고 한 것도 마음껏 게을러 보자는게 목적이었다. 아이가 밥을 천천히 먹거나, 먹지 않거나, 학교에 조금 늦거나, 루틴을 깨고 다른 걸 하고싶어 한다거나, 늦잠을 잔다거나 하는 모든 것에 있어서 yes라고 답해주고 싶었다. 예민하고 계획적인 엄마 밑에서 너털너털한 우리아이가 얼마나 스트레스가 컸을 까 싶어서 마음을 내던지고 마음껏 풀어줄 생각이었다. 다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아이가 바쁜 아침에 한번 더 안아달라고 한다거나, 엄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거나, 정신없이 팔딱거리며 애교를 보일 때 두 팔을 벌려 꼭 안고 등을 두드려줬다. ‘얘 지금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와서 양치해. 지금 목욕했는데 옷도 안입고 뛰면 어떻하니!!’ 등등 내지를 소리들은 차고 넘쳤지만 크게 심호흡해서 말을 목구멍안으로 꾹 집어넣고 헤벌쭉 웃었다. 정말 말 그대로 말을 꿀꺽 삼켰다. 일분 일초 낭비하지 않고 그동안을 살아온건 나의 의지였지만 그걸 아이한테 똑같이 하라고 강요할 권리는 없으니까. 느슨하게 살지, 치열하게 살지 선택은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만 하던 걸 드디어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그 실천의 다짐은 아팠던 오늘의 나에게도 다행히 적용되었다. 아파도 의지적으로 운동은 가야지, 아프다는 것도 결국엔 운동 안 하려는 변명 아닌가, 너무 나약해, 라는 생각이 한 시간 넘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운동복을 집었다 내려놨다 반복하다가 불현 듯 아이가 남긴 사과를 먹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물리적으로 호르몬의 대이동을 겪고 있고 매우 어지럽고 몸이 무겁다. 그러니까 나는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운동을 하는 것보다 좋은 것은 영양소 가득한 음식들을 몸에 넣어주는 것이다. 로봇처럼 읊조리며 사과를 아삭아삭 씹었다. 사과를 먹고 귤도 두 개나 까먹었다. 달고 맛있었다. 사실 이건 게으른 것이 아니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 달 만에 쉬는 단 하루에도 나는 스스로에게 많은 변명을 해야 했다. 쉬어도 되는 이유에 대해 내 자신이 납득 할 수 있도록.      


언제부터 나는 나에게 이토록 작은 틈도 주지 않게 된걸까.

회사가 나를 이렇게 만든 것도 아니고, 더 거슬러 올라가서 고등학교 때? 아니다 그 전부터도 그랬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도 나에게 휴식시간은 별로 없었다. 조금 많이 슬프다. 내 휴식을 스스로가 정당화 시켜야 쉴 수 있다니. 멍 때리는 즐거움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인데 게으름을 조금이라도 느낄라치면 죄책감이 뒤따라 오는 통에 편히 멍 때린 기억도 참 오래 전이다.      


그래도 오늘은 어색하게 사과와 귤을 연속으로 까먹으며 영화도 조금보고 잠은 들지 않았지만 침대에도 얼마간 누워있었다. 스스로에게 조금은 너그러운 휴식을 주고 싶다. 아플때는 뭐가 어떻게 흘러가던 내 자신이 회복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맛있는 것도 내 입에 가득 넣어주고 싶다. 전전긍긍한 마음을 아이에게 대물림 하고 싶지 않다. 급할 것 없는 인생인데 매일을 청룡열차 타듯이 극도로 긴장한 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여유있는 마음에서 나오는 해학과 상념들을 사랑한다. 게으름이 던져주는 일상의 시차속에서 풍요로운 영감을 얻고 싶다. 그 언젠가 제주도의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구고 오도카니 앉아있을 때 느꼈던 묘한 기시감과 몽환적인 상상들. 정신이 흐릿해 지는 순간들을 좀 더 누리고 탐닉하고 싶다. 꽁꽁 얼어있던 마음을 열심히 헤집고 편해져야 겠다. 마침내 다시 열린문이 되어 둑 터진 듯 살아보자.      


저녁 11시 23분, 아침부터 진통제 여섯알을 먹었더니 진짜 몽롱해져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건지 모르겠지만 오늘 쉬어서 참 좋았다는 생각을 한다. 빈혈증세가 살짝 더해져서 머리도 살짝 어지러운 상태이지만 나는 내일도 편히 쉴수 있다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려고 한다.      


한없이 멍때리는 좋은 꿈을 꾸자.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멍만 때리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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