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음 연습
퇴사 후 눈 떠보면 반년은 흘러있다는데.
드디어 나에게도 '퇴사 후 반년' 지점이 오고야 말았다. 2020년 2월 14일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후 6개월이 흐른 지금, 나는 어떤 일들을 해 왔고 그 일들로 인해 나의 인생 방향에 어떤 실마리를 얻었는가.
오늘을 기점으로 브런치에 8개의 글을 기고했다.
5개는 퇴사 후의 마음 상태 변화, 1개는 원래 해 보고 싶었던 디자인 교육 콘텐츠, 나머지 하나는 브런치에서 주최한 공모전 글이었다 (보기 좋게 떨어졌지만)
조촐하다.
너무나 조촐한 성적표임에도 불구하고 구독자가 서른 명을 넘기다니 놀라울 지경이다.
(자리를 빌려 구독 눌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런치 성적표가 가장 초라하지만 초기 계획했던 일들을 꽤 많이 시도해 보았다.
-블로그 포스팅 100개를 했다
-블로그 단체 코칭 1기를 완료했다. 현재도 단톡방 사람들과 좋은 관계 유지 중
-블로그 1대 1 카카오톡 컨설팅을 했다
-mbti 16개 유형 칼럼 쓰기를 완료했다
-수익형 블로그 운영 방법 전자책을 썼고, 팔았다
-2건의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웹 서비스 사업을 시작했고 9월에 런칭한다
-요가를 꾸준히 하고 있다
-크리에이터 클럽이라는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코딩 공부를 시작했다
-책을 읽고 독서 노트에 배운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브런치 공모전에 응모했다
-출간 기획서를 작성했지만 모셔두었다
각 실험들의 결과가 괄목할만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생각보다 이런 일들을 어려워하는구나, 깨닫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특히 컨설팅과 코칭이 그러했는데, 커리큘럼을 짜는 일이 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 가장 열정 넘쳤지만 그만큼 마음의 부담도 컸다.
나는 '언어전달 능력'이 내 강점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약점을 보완하고 싶어서 고군분투하지만 (지금 이렇게 브런치나 블로그에 글을 쓴다던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탁월한 강점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컨설팅, 교육은 모두 탁월한 언어전달 능력이 기반되어야 스스로 만족할만한 퀄리티의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더욱 노력이 필요한 분야이다.
결론은 그만두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그 이상의 확신이 필요한 분야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블로그 마케팅 시장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분명 내가 미치지 못한 그 너머의 영역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놔두고 굳이 마음의 열과 성을 다해 애쓸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얻은 결실도 있다.
-나는 상품 리뷰나 맛집 리뷰 쓰는데 생각만큼 크게 흥미가 없구나라는 자기 발견
-관심이 재미가 되면 취미, 취미가 습관이 되어야 직업으로 발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 3가지 모두가 전제되지 않으면 직업으로 삼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결론.
-나의 다양한 관심사가 열정으로 끝날지 습관이 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시도하는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 열정, 시작에서 이어지는 끈기와 습관, 노력이라는 사실. 최소 5년 이상 애정을 쏟을 수 있을 분야 찾기.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하기. 목적의식이 너무 강하면 지속해 보기도 전에 부담이 되고 도망치고 싶어진다.
-도전의 결과가 썩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무기력해지거나 나를 탓하지 말기.
퇴사한 후 해 보고 싶었던 일들을 시도하고 공부하며 나를 다지는 시간들을 채워나가고 있는데 최근 드는 생각은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원래 하고 있던 일'임은 분명하다는 확신이 든다. 잘했고, 또 잘하는만큼 좋아하기도 했으니까 10년 이상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을 하고 일정한 시간을 채워야 하는 시스템이 싫다. 어쩌면 이 시스템이 보완될 수 있는 회사에 입사해서 일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다른 도전들은 취미로 삼다가 또 다른 직업이 되는 것이 내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에 가장 근접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9월에 런칭하는 서비스가 대박 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
직장인 경력이 쌓여가면서 가장 괴로웠던 점은 언젠가부터 나의 시간을 모두 돈으로 계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특히 디자인에 관련된 일이 그러했다. 돈을 받지 않으면 디자인의 '디'자도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고 나머지 시간은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다른 일로 채우고 싶은, 디자이너가 아닌 회사원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당시에는 죄책감과 자기 비하에 빠지기도 했지만 8시간, 주 5일 근무 루틴을 끊고 나니 놀랍게도 다시 열정이 돌아왔다. 풀 스택 디자이너 (<-기획부터 프론트엔드까지 커버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어야지. 나는 브랜딩도 할 줄 아니까 이참에 스타트업 전문 디자이너가 되면 좋겠다는 새로운 열정까지 불타올라 코딩 공부를 시작했다. 재밌다!! 아니 이렇게 재밌는데 왜 배움을 두려워 했을까? 전문성의 희석되는 것이 두려운 탓이었는데 요즘은 제네럴리스트에게도 기회가 있어 다행이다.
월급 중독 디톡스를 통해 나는 이제 무엇이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위의 성과표에도 썼지만 도전이 항상 긍정적이고 유의마한 결과, 꾸준히 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해 봐야지 아는 인간이라서 일단 다 해보기로 했다.
해 보고 그만두기만을 반복한다면 그야말로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을 기간을 정해 기록하기로 했다. 지금 하는 이 기록은 생계 수단을 위한 파이프라인을 늘린다거나, 책을 낸다거나 등 어떤 특정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하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
그냥 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고 시간을 마련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 또한 하나의 프로젝트로 테스트하고 있다. 그 과정도 기록하려고 한다.
시작을 했으면 그것이 실패든 잠정 보류이든 어떤 맺음이 필요하다.
맺다 : 열매를 맺다, 관계를 맺다, 결실을 맺다, 계약을 맺다.
맺음이라는 단어를 뜯어보니 느낌이 좋다.
성과를 내다, 목적을 달성하다, 성취하다 같은 목적 지향적인 단어보다는 A라는 이벤트를 통해 얻어지는 B라는 결과, 그 과정에 집중하는 단어처럼 느껴진다. 물론 탐스럽고 실한 열매를 맺고 싶은 열정과 기대가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그것이 아직 덜 익은 열매든, 이제 막 맺어진 열매든, 일단 맺어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시작과 맺음.
지금은 7개인 브런치에 글 100개를 맺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