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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기로 Sep 01. 2020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할까,
잘하는 것을 해야 할까?

그 지겨운 질문의 대답



약 4개월의 도전이었다. 최초에 목표했던 글 100개를 채웠고 매주 월요일마다 쓰던 mbti 16개 유형의 칼럼을 완결 지었다. 매일 아침 9시, 1시간 내지 2시간 동안 진행했던 단톡방 글쓰기 코칭도 약속했던 한 달을 채웠다.


이 일은 보람 있고 즐거운 일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뿌듯함과 자기 효능감이 시간을 돈으로 교환하지 않아도 행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어 주었다. 커리큘럼을 어떻게 고도화할지, 지금의 다음 단계에 무엇을 할지 하루 종일 “목적”과 “방향”을 설정하는데 골몰했다. 가능하다면 도전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나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생 최대치의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온갖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나는 할 수 있다는 암시를 걸어봐도 그때뿐, 의지와는 반대로 내 안의 에너지는 빠르게 고갈되고 있었다.


밥을 먹다가, 샤워를 하다가, 침대에 누울 때도 블로그라는 단어는 나의 일상 속에 깊이 침투해 잊을만하면 가슴속에 쿵하고 내리 앉았다. 이것은 썩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하고 싶었던 것이 해야 하는 의무로 전환되어감이. 목표점은 아직도 저만치 멀고 나는 단거리 경주를 뛰는 사람 마냥 헉헉거리며 내게 주어진 일을 겨우 해 낼 따름이었다.


퇴사를 했고, 블로그에 이런저런 나의 포부를 다졌고, 이웃들에게 분에 넘치는 응원을 받았다. 무엇인가 보여줘야 해, 올바른 길로 나아가야 해.


몇 만명도 아니고 고작 몇십 명을 의식하며 자기 검열을 하는 나를 보고 있자니 날 때부터 가진 이 성격은 역시 어쩔 수가 없구나, 허탈한 웃음이 쓴 맛이 되어 다시 또 쿵 하고 떨어졌다. 뇌는 생존을 위한 예측 기계라, 위험을 최대한 피하고 보상이 높아 보이는 일에 최적화되도록 설계되었다는데 내 예측 기계는 제대로 정상 작동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좋아하는 일이란 결국 남들보다 그 일을 조금 더 쉽게 잘 해낼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또 내가 가진 본성과 어메이징 한 강점을 무시하고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 부러운 것, 멋있어 보이는 것을 업으로 만들기 위해 이렇게나 애를 쓴 것이다. 왜 항상 해 보고 나서 이 일은 나에게 적합한 일이 아니었어 허무함과 씁쓸함으로 돌아서야 하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시작하기 전에 알 수도 있었을 텐데.


어쨌든 자연스럽지 않은 일을 업으로 삼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언젠가’는 가능할지언정 ‘지금은’ 아니다. 지금의 나는 생존해야 한다. 나라는 인간 하나쯤은 스스로 먹여 살려야 한다.






신이 나를 딱하게 보셨는지 예전에 일했던 회사에서 프로젝트 제의가 들어왔다. 말도 안 돼. 내가 퇴사한 것은 어떻게 아시고.

반가운 마음에 나 지금 퇴사 상태라고, 일은 얼마든지 주시라고 대환영한다고 온몸의 기쁨을 토해냈다.


현업 8년, 이제 9년 차. 전공 기간까지 따지면 10년 이상을 디자인만 팠다. 그 지겨운 것이 나를 구원했다. 그렇다, 내 본질은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좋아서 시작했던 일, 남들보다 조금 더 쉽게 해냈기에 변덕쟁이가 끝까지 밥벌이하며 살 수 있었던 일, 몰입하면서도 크게 힘들지 않았던 일, 그렇게 습관적으로 쉽게만 하던 일이 질려서 버둥거렸던 나였는데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바깥세상에 내던져지고 나니 깨닫게 된 것이다.


이쯤 되니 모두가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그 질문,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나 잘하는 일을 해야 하나가 화두로 던져진다.








일련의 경험들을 겪은 후 

“좋일 잘일”에 대해 내가 내린 답


1.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좋아서’ 하게 된 일이다. 

‘좋아서’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나에게 꾸준한 월급을 주는 안정감이 ‘좋아서’, 부모님의 바람을 들어드리는 것이 ‘좋아서’,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가지는 것이 ‘좋아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좋아서’, 혼자 일하는 게 ‘좋아서’, 그냥 좋아 보여서도 ‘좋아서’의 한 예가 된다. 결과가 예상보다 좋지 않다고 해서 스스로 내린 선택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나는 처음부터 그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자신을 속이는 것이 가장 쉬운 회피 방법이다. 나는 ‘좋아서’ 그 일을 시작했고 여기까지 왔다. 내 마음속에 무엇인가 와 닿았고 그것에 끌렸기 때문에 수 만 가지 중 일 중 하필이면 그 일을 선택한 것이다. 바로 위에 쓴 문단에서 나는 나 자신을 속였음을 목도했다. 나는 ‘좋아서’ 블로그를 시작했고 내가 할 수 있는 한계까지 테스트를 했다. 내가 잘하지 못할 것이 예상되는 일을 괜히 시작했다는 둥 뇌 회로를 조작할 필요는 없다. 나는 아마 과거로 돌아갔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사람이다.


2.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잘해서’ 하고 있는 것이다. 

‘잘해서’의 기준은 상대적이다. 언제나 내가 원하는 만큼 잘하지는 못 하겠지만 위로도 아래로도 까마득히 나보다 잘하거나 못 하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다. 그저 매일매일 조금 더 위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이면 된다. 나는 지금 정체되어 있다는 기분 때문에 잘하는 일을 잘한다고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잘해 왔기 때문에 그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다시 블로그를 예로 들면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고 주기적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단, 블로그 코칭이나 수익형 블로그 만들기 콘텐츠가 아니라 자기 계발 콘텐츠를 만든다. 이 일은 재밌다-! 어쩌면 계속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3. 나는 얼마든지 또 다른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다.

가슴이 뛰고 열정이 끓어오르는 일을 얼마든지,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실험이고 인생은 수많은 실험들로 채워져야 한다. 실험을 지속하든 완결 짓든 그것들이 내 곁에 와서 머물렀던 그 시간과 경험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기쁘게 맞아들이고 후회 없이 보내주어라. 성숙해진다는 것은 만남과 이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70%는 잘하는 일을 하고 나머지 30%는 언제나 실험하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세상을 호기심 넘치는 눈빛으로 바라보아야 실험하고 싶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좋아서 시작했고,

좋아서 시작한 일들 중 잘하는 일은 직업이 되었다.

업이 되어 수없이 반복하며 겪는 지지부진함, 지루함, 일상의 남루함은 내가 이 일을 정말 좋아하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그러나 지금 단지 지쳐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의 마음을 잘 읽어보자.


-인생을 다채롭게 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좋아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찾아야 한다.

그 일을 잘하게 되면 언젠가는 지루함의 터널이 반드시 올 것이다.


-지루함의 터널을 끝까지 걸어 나와 전문가가 될 것이냐, 터널 위를 뚫고 나와 다른 터널을 팔 것이냐.

나는 다양성을 추구하고 싶다. 최대한 많은 터널을 뚫어 그 터널들을 균형 있게 경험하고 융합하는 것이 내 인생의 방향이자 목표이다. 한 마디로 말해 인생의 목표가 크게 없다. 거창하게 계획 세우길 좋아하던 나의 목표는 ‘오늘 하루만 잘 살자’로 바뀌었다. 이는 큰 변화이고 내 인생에서 대전환점이다. 가치관이 ‘오늘’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변화하니 행복도가 눈부시게 증가하였다. 매일 아침을 선물 포장 뜯는 기분으로 시작한다.

 


내가 얼마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길 좋아하는지 보여주는 마인드맵. 여기에 쏟은 시간을 '실행'에 쏟았다면 조금 더 다른 결과를 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유도 가수가 직업이 되니 음악을 일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무슨 일이든 일이 되면 지루해진다. 같은 일을 반복하며 1센티만큼 나아지는 것이 전혀 지루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극소수의 행운아들은 지루함을 견뎌낸 보상으로 부와 명예를 획득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런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도 있다. 애초에 지루함을 버텨내는 보상이 ‘생존 그 자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보상 심리와 억울함, 비교, 허무함, 현타, 무기력 구간을 잘 극복할 수 있다. 이 지루함을 견뎌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인생실험집으로 그 허무함을 극복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는 취미를 붙이게 되었다.


글쓰기는 내가 좋아하는 일도, 잘하는 일도 아닌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자기 계발 덕후다. 좋아함을 넘어선 것이 사랑하는 일이라면 나는 자기 계발과 자아 탐구하는 것을 사랑한다. 아마 이 카테고리 안에 글쓰기가 있기 때문에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는데 쓰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글을 다 쓰고 느끼는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써 내려가는 글들은 기본적으로 ‘나를 위해서’지만 누군가의 하루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나도 다시 힘을 내 볼까?’하는 기분을 전할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 해야 하나요 잘하는 일 해야 하나요?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그리고 그 일을 잘하게 되면 또 다른 좋아하는 일을 찾아 잘할 수 있을지 실험해 보세요.






+추가. 아래는 '사는 보람이자 일 하는 이유'인 '이키가이 툴'이다. 국내에서는 드로우 앤드류 님의 채널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는데 나 또한 내가 지금 이 일을 왜 하는지, 왜 이런 기분을 느끼는지 가이드 삼을 수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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