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부터 목표가 없는 사람이 되기로 결정했다
“꿈이 없는 사람은 강해요.”
이 말은 아이유가(<- 요즘 종종 등장한다) 10주년 팬미팅 때 “저는 꿈이 없는게 고민에요. 어떻게 하면 꿈을 가질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답변한 말이다. 나는 이 말의 전제는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이유는 노래를 하며 살고 싶다는 꿈을 이루었고 가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달성한 사람이다. 그녀는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성취했기 때문에 그것들을 잃게 될까봐, 열정이 이해타산으로, 좋아했던 일이 그저 일로 변질되어 가는 자신을 아쉬워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잃을 것이 없으니 그만큼 강해진다는 것이 숨겨진 의미이다.
나는 선뜻 아이유의 명언(?)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서야 그 뜻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아 글을 적어본다.
우리는 ‘꿈’을 희망차고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는 무한 긍정적인 느낌으로 뭉뚱그려 묘사하곤 하는데, 우선 이 꿈이라는 단어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인지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 꿈의 하위 단어들인 목표, 목적, 소명 의식을 정의해 보겠다.
목표(goal)는 이루고 싶은 무엇이다. 이것은 계량화하기 유용하며 명확하다. 월 천 벌기, 인플루언서 되기, 정원이 딸린 집 짓고 살기, 매년 해외 여행 가기 같은 것들이 목표가 된다.
목적(objective)은 그것을 왜 이루고 싶은지 행동의 동기를 설명한다. 가족과 건강하고 안락한 삶 누리기,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 주기, 삶의 다양성 높이기 같은 것들이 목적이 된다. 나는 목적보다는 목적의식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곤 하는데, 그 길로 가는 방향을 현지점의 내가 의식하며 나아가고 있는지에 더 초점을 맞춘다.
만약 목적 의식이 생애 전반을 걸쳐 이루고 싶은 가치있는 일이라면 소명 의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소명은 나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이 아닌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사회의 발전을 돕는 수준의 것이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중요도를 따지면 소명 의식 > 목적 의식 > 목적 > 목표가 되겠다.
내가 처음으로 꿈을 공표한 나이는 8살 무렵으로 기억한다.
-엄마, 나는 미스코리아가 되서 400만원씩 엄마한테 줄게요.
당찬 포부를 가진 어린 아이였지만 키가 크지 않아 미스코리아의 꿈은 살며시 내려놓고 만화가에서 가수, 가수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꿈의 종횡무진을 달렸다. 최초로 꿈을 공표한 이후 단 한순간도 꿈이 없었던 적이 없었던 나는 꿈이 없다는 아이들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고 꿈이 있는 내가 더 근사해보이는 우월감을 즐기기도 했다. 나는 크면 무엇인가 반드시 이룰 것이라고 믿었다.
꿈은 나에게 희망이었다.
우리는 인생 전반에 걸쳐 희망의 길을 달린다. 더러는 희망을 간직하기 위해, 꿈을 꿈으로 남겨두기 위해 아무런 시도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뇌는 보상을 달성하지 않고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직접 달성한것과 같은 도파민 신호를 내보낸다고 한다. 그러니 꿈을 가지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쾌감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꿈은 대체로 현실 자각과 좌절, 비교, 열등감이라는 수식어와 따라붙었다.
만화가가 되고 싶어 그려댔던 만화는 6장짜리 단편을 제외하고 완결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나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들이 많아서 포기.
최연소 가수가 되기 위해 소속사에 보낼 데모 테잎을 만들고 아파트 복도에서 프로필 사진을 찍던 나는 그 해 13살 보아의 등장과 나의 춤 실력 자각으로 포기.
옷을 만드는 것이 삶의 이유였던 시절에도 썩 완성도가 높지는 않았던 나의 옷들, 이 경험은 내가 손재주에 썩 재능이 없음을 알게했고, 그것들은 꿈에서 추억이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비슷한 패턴은 마치 카르마처럼 반복되었다. 밴드 보컬, 피아노, 배드민턴, 보드게임, 블로그, 사진 작가, 영상 감독, 시나리오 작가, 플라워, 인테리어 디자이너, 홈 데코레이터, 미니멀리스트 등 ....
물론 대체로 취미였지만 나는 뭐든 시작하면 경쟁 의식을 가지고 미친듯이 몰입하기 때문에 아마프로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그렇게 희망은 현실이 되었고 현실은 고통이 되었다. 그러니 꿈은 꿈으로 남겨두는 것이 가장 수지타산에 들어맞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자각하게 되는 것은 내 능력의 한계와 꿈의 괴리이다. 그렇게 꿈을 실현하면 할수록 현실 자각 타임, 즉 현타를 맞이하게 된다.
한 때 내가 사랑했던 것들에 열정이 사라졌음을 인정하는 과정은 오랜 권태로 헤어짐의 위기에 놓인 커플이 사랑이 식었음을 인정하고 이별을 고하는 것과 비슷하다. 가슴을 짓누르는 죄책감에서 가벼워지고 싶어서 처음처럼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거라고 애써 노력해보지만 열정이 예전같지 않음은 그저 '식었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이렇게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살다가는 나는 무엇을 해도 여기까지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나의 한계를 가두고 말겠지. 그리고 어떤 시도도 무의미하다고 자조하겠지. 작은 목표를 세워 달성하기, 꿈을 현실적인 범위로 낮추기 등 많은 것들을 시도해 보았지만 열정이 허무함으로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것은 내 오랜 감정 패턴이었다.
꿈을 현실로 들여오면서 잃어가는 희망에 대해 나는 어떻게 해야 허무함을 느끼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 시도 해 볼 수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좋은 점은 비록 희망은 잃어가되 나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 잘 하는 것, 어떤 일을 했을 때 가장 행복했고, 어느 정도 선까지 부담없이 해낼 수 있는지 등을 경험의 축적을 통해 알아간다. 자신에 대한 이해는 쓸모없는 일들을 줄이고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나는 아직 충분히 나이를 덜 먹어서인지 아직까지도 온갖 쓸데 없는 일들을 벌려놓고 있지만 그런 쓸데없는 일들이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그렇다면, 어쩌면 이것이 내 인생의 진정한 꿈이 아니었을까?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람, 그 자체가 되는 것. 해 보지 않았던 것, 내가 잘 모르는 것들을 내 세계에 끊임없이 소개하며 세상을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배움 그 자체가 즐거운 사람, 매일 매일 작은 것들을 성취하는 사람, 누군가 무엇을 시작하려고 할 때 용기를 주는 사람.
나의 지지부진한 현실이 사실은 나의 꿈으로 가는 무수한 점들을 찍고 있었다.
아래와 같이 나의 정체성을 5가지로 정의하였다
01. 나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
액션 [매일 1시간 책 읽기 > 책 속 와닿는 구절 + 생각 매일 블로그에 올리기 > 질문하고 답적기]
02. 나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사람
액션 [매일 1시간 글쓰기 > 브런치에 글 100개 쌓기 > 브런치 북 5권 만들기]
03. 새로운 도전, 다양한 경험을 즐기는 사람
액션 [창업 멤버로 일하기 > 내 사업하기 (온라인) > 내 사업하기 (오프라인)]
04. 재능을 나누고 기여하는 사람
액션 [블로그 포스팅 주 1회 > 유튜브 자기계발 & 디자인 강의 > 강사 활동]
05.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사람
액션 [오늘 하루만 잘 살기, 플래너 쓰기 > 자기탐구 & 생각 자주 메모 > 프로젝트 기간 설정 & 회고]
-이 프로젝트는 5년 프로젝트다. 나이 마흔을 목전에 두고 프로젝트 회고를 해 볼 수 있을 듯 하다. 예전과는 다른 종류의 희망이 하루라는 선물로 나와 함께 나아간다.
그래서 목표가 없는 사람은 강하다. 매일 나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사람은 어떤 외부적인 보상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묵묵히 해야 하는 일들을 실행할 수가 있다. 마치 밥 먹을 시간에 밥 먹고 잠 잘 시간에 잠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일상속에 녹여져 있는 꿈은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나는 이제 목표를 가지지 않기로 했다. 목표는 중간 점검할 수 있는 징검다리일 뿐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나 자산이, 오늘 하루가 나의 꿈이다. 그저 현재에 몰입하고 오늘 할 것들을 해 내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그래서 나는 플래너를 쓰고 매일을 기록한다. 이것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